2005년 02월 28일
'인간교차점'에 드러난 명랑성
인간교차점은 리얼리즘 작품으로 오해받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이 작품은 결정적인 부분에서 의도적으로 리얼리즘을 회피하고 있다. 진정으로 리얼리즘이 된다면 인간의 모든 관계는 기만이고 주위의 환경은 부조리하며 타인과의 소통은 불가능하다고 그렸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그리고자 하는 것은 프란츠 카프카가 아니다. 이것을 감상적이라 비판할 수도 있을 것이다.인간교차점의 배경은 일관적으로 현대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주인공도 없는 옴니버스식 만화에서는 그다지 흔한 일은 아닌데 이것도 이 작품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것도 작가의 의도라면 의도겠지만 현대사회의 비극이라는 것에 사람들이 주목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이 현대사회란 것은 무슨 사회인가하면 자본주의가 삶의 기본원리가 되어가면서 소시민적 가치가 모든 것을 장악한 사회를 가리킨다. 사람들의 삶의 목적은 '권력, 명예, 돈'같은 세속적 가치로 탈바꿈했다. 또한 '효율적인 생산'을 위하여 시스템이 인간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이 시스템에 적응하는가 안하는가가 인간의 가치를 좌우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시스템에 적응하기 위하여 지금까지 안고 있던 것들을 버렸다. 근데 이 '버린 것'들이 사람들이 '지금 목표로 하는 것'보다 가치가 없는 것일까?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가치있다 없다는 무엇으로 판별해야 할까. 그것은 아마도 '행복'일 것이다. 어떤 것이 인간의 삶을 더욱 행복하게 만들어줄수 있는가가 가치의 기준일 것이다. 이 작품에서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공허함만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결코 행복하지 않다.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한 사람들을 보고 미쳐버린 엘리트 샐러리맨, 첫사랑을 포기하고 사업에 성공하지만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사업가, 화가로서 성공했지만 아들의 애정을 잃어버려 필사적으로 외로움을 감추고 사는 노인... 모두 이런 식이다.
반면에 인생의 경쟁에서 한 발짝 물러선 사람들은 행복하다. 인기만화가였지만 찻집마스터를 하고 있는 만화가, 연구소를 박차고 동네병원에서 일하는 의사, 분수를 알고 배사공에 안주하는 노인 등등. 이들은 서두르지 않기에 인생을 만끽하고 행복할 수 있다.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의 직간접 비교를 통해 노골적으로 주제를 구현해내고 있다. "행복을 희생하고 성공하느니 차라리 낙오자가 되겠다"라는 주제말이다.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이 이분법적 구조의 이야기들은 지금 듣자면 하나도 특이할 바 없기에 무의미하고 공허하게 느껴지리라 생각된다. 오히려 대단히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겠는가? 너무 낭만적이어서 말이다. 도대체 이런 작품이 왜 걸작이라고 칭송을 받는 건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작품을 걸작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바로 명랑성이다. 삶을 긍정적으로 보는 방법은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부정적인 것을 보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부정을 긍정으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이 부정을 긍정으로 승화시키는 힘이 명랑성이다. 이 명랑성을 명확하게 보여주었기에 이 작품은 싸구려 신파 옴니버스가 아닌 걸작 '인간교차점'이 되는 것이다. 이 명랑성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이야기가 바로 '얼음사과'다. 이 이야기에서 주인공은 크리스마스에 산타분장을 하고 선전 아르바이트를 하는 남자다. 그는 자신이 지킬 수 없는 약속과 거짓말을 해서 연인을 죽인 적이 있다. 그래서 그는 지킬 수 없는 약속과 거짓말을 증오한다. 그러다가 어느 검거된 은행강도와 조우하고 은행강도에게 부탁을 받게 된다. 은행강도의 아이에게 돈을 건네주겠다고 말이다. 은행강도의 아이는 돈이 없어서 친척집에서 맡지 않으려 하고 있었다. 만약 돈이 없다면 아이는 사고무친의 신세가 된다. 그래서 주인공은 돈을 대신 아이에게 건네준다. 아이를 설득시키기 위하여 가슴아픈 거짓말을 하며... 다가오는 경찰의 사이렌을 들으며 그가 한 독백은 '조금의 아주 조금의 다정함이 있다면 슬픔을 힘으로 바꾸어 살아갈 수 있다.'였다.
여기에서 그리는 인생은 아름답지 않다. 인생은 기본적으로 고독하고 괴롭고 힘들다. 어느 노인의 말마따나 '질질질질 끌고 가는 보기 흉하기 짝이 없는' 그런 것이다. 거짓이 판치고 노력은 보상받지 못하고 오해만 늘어간다. 누구의 노래가사처럼 '희망의 수만큼 실망은 늘고 만남의 수만큼 이별은 는다.' 이것을 바꾸는 열쇠는 단 하나다. 흔해빠진 레퍼토리지만 '애정'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사랑함으로써 명랑성의 경지를 터득한다. 물론 그 사랑의 대상은 각자 다르다. 자신의 과거일수도, 자신의 현재일수도, 사랑하는 사람일수도 그리고 삶 그 자체일 수도 있다. 대상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사랑하고 있는가 아닌가다. 사람이 사랑을 하고 있으면 비극도 기쁜 기분으로 연기할 수 있다. 이 행복이라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인간의 사랑의 기적이리라.
마치 '여름 향기가 나는 겨울 수박'처럼 말이다.
# by | 2005/02/28 01:54 | 만화관련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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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아직도 걸작이라는 견해에는 동의하지 못하겠습니다. 감동적이어야 하는 장면에서 '이럴 리가 없잖아!'라면서 눈물과 함께 분노하게 된다고 해야 할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속이 좁은 탓이었군요. 반성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