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03월 04일
'몬스터'의 의미와 한계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 '개인적 체험'은 특유의 결말로 유명하다. 자신의 아이가 뇌헤르니아에 걸린 기형아라는 것을 알게 된 버드는 아이를 쇠약사시키도록 병원에 맡긴뒤에 퇴행을 거듭한다. 그러다가 결국 아이를 포기하지 못하고 현실도피를 접고 아이를 구하려고 병원으로 달려간다. 일단 여기서 일단락. 아리스테스크가 나온뒤에 아이는 뇌헤르니아가 아니었고 모든 것은 해피 엔딩이었다라고 마무리된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오에 겐자부로에게 이 아리스테스크 뒤에 나오는 내용을 삭제하자고 말했다. 그러나 오에 겐자부로는 단호히 거절했다. 물론 삭제하면 미학적으로 더 훌륭한 작품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작품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고 말이다. 이것을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 '몬스터'에 적용시킬 수 있지 않을까...

'몬스터'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들에게서 명백히 영향을 받았다. 우선 1) 악마적 초인, 2) 등장인물간의 상호 분신적 성격, 3) 비밀의 증폭과 갑작스런 대파국이라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대작 소설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1) 악마적 초인이야 예전에 포스팅한 요한 리베르트론에서 이야기했으니 넘어가고 3) 비밀의 증폭과 갑작스런 대파국이라는 것도 요한 리베르트론에서 이야기 했으니 패스. 남은 것은 2) 등장인물간의 상호분신적 성격이다. 이 요소가 '몬스터'의 의미와 한계를 결정한다.
등장인물들의 상호 분신적 성격이라는 것은 각각의 등장인물들이 서로 다른 인간의 부분을 상징한다는 점을 이야기한다.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예로 들자면 장남인 드미뜨리는 감성과 충동을 차남인 이반은 이성을 막내인 알료샤는 신성을 상징한다. 이것이 '몬스터'에도 적용이 되는데 여기에서 우라사와 나오키는 도스토예프스키적인 분류대신에 심리학적 분류를 선택했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등장인물들은 '이드' '에고' '슈퍼에고'를 상징하도록 설정되어졌다. 각각 요한, 덴마, 니나로 형상화되었다.
요한과 덴마의 대결구도로만 만화를 본다면 니나는 왜 있는지 왜 요한을 죽이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이렇게 본다면 니나가 왜 요한을 죽이려고 하는지 명확해진다. 그녀는 슈퍼에고이기에 이드인 요한을 말살하려고 하는 것이다. 흔히 성격이 애매하다고 지적받는 니나는 사실 가장 훌륭하게 형상화된 캐릭터다. 요한의 경우엔 전에 언급한 적이 있지만 결정적인 부분에서 우라사와의 수정을 받아 성격이 조금 애매해지긴 했으나 나름대로 훌륭하다. 그는 아마 '뱀파이어'의 마쿠베 로쿠로이후로 가장 훌륭하게 형상화된 악마적 초인일 것이다. 문제는 덴마다.
덴마가 이 작품의 주제를 완벽하게 희석시키고 있다. 덴마에게 주어진 에고라는 역할을 그는 거의 소화하지 못했다. 사실상 그는 니나와 요한의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했다. 그러나 우라사와는 그를 그렇게 그리지 않았다. 그는 명백히 니나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그 결과 그는 니나의 역할을 거의 대부분 빼앗았다. 그 반대급부로 부당하게도 니나는 무용하게까지 보이게 되는 것이다.
덴마의 설정은 대단히 의미심장하다. 그는 인간의 생사를 거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 이른바 뇌과의. 거기다가 그밖에 성공시킬 수 없는 수술이 많을 정도의 천재다. 원래대로였다면 자신의 오만함과 그에서 비롯된 허무와 휴머니즘사이에서 방황했어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기반으로 선도 악도 아닌 에고의 역할을 소화했어야 했으리라. 하지만 그는 휴머니즘 쪽으로만 기울어져 있다.
이것이 '몬스터'의 치명적인 단점으로 작용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아마 우라사와가 덴마를 에고로 제대로 형상화시켜 그렸다면 요한과의 마지막 대치에서의 임팩트는 지금의 몇십배가 되었을지 모른다. 아마 '몬스터'는 걸작으로 남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라사와는 그렇게 그리지 않았다. 그리지 못했다가 아니다. 그리지 않았다.
아마 우라사와는 이렇게 변명할지도 모른다. 오에 겐자부로처럼...
'그렇게 그리면 더 미학적이고 완전해지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를 그리고 싶지 않다고' 말이다.
아쉬움이 남지만 그의 선택을 지지한다.
-뱀발-
대충 이런 식으로 겐조 덴마론과 니나 폴트너론을 때웠습니다. 작년 12월부터 '몬스터'관련 글을 썼으니 거의 3개월 반이 걸린 꼴이군요.

'몬스터'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들에게서 명백히 영향을 받았다. 우선 1) 악마적 초인, 2) 등장인물간의 상호 분신적 성격, 3) 비밀의 증폭과 갑작스런 대파국이라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대작 소설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1) 악마적 초인이야 예전에 포스팅한 요한 리베르트론에서 이야기했으니 넘어가고 3) 비밀의 증폭과 갑작스런 대파국이라는 것도 요한 리베르트론에서 이야기 했으니 패스. 남은 것은 2) 등장인물간의 상호분신적 성격이다. 이 요소가 '몬스터'의 의미와 한계를 결정한다.
등장인물들의 상호 분신적 성격이라는 것은 각각의 등장인물들이 서로 다른 인간의 부분을 상징한다는 점을 이야기한다.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예로 들자면 장남인 드미뜨리는 감성과 충동을 차남인 이반은 이성을 막내인 알료샤는 신성을 상징한다. 이것이 '몬스터'에도 적용이 되는데 여기에서 우라사와 나오키는 도스토예프스키적인 분류대신에 심리학적 분류를 선택했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등장인물들은 '이드' '에고' '슈퍼에고'를 상징하도록 설정되어졌다. 각각 요한, 덴마, 니나로 형상화되었다.
요한과 덴마의 대결구도로만 만화를 본다면 니나는 왜 있는지 왜 요한을 죽이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이렇게 본다면 니나가 왜 요한을 죽이려고 하는지 명확해진다. 그녀는 슈퍼에고이기에 이드인 요한을 말살하려고 하는 것이다. 흔히 성격이 애매하다고 지적받는 니나는 사실 가장 훌륭하게 형상화된 캐릭터다. 요한의 경우엔 전에 언급한 적이 있지만 결정적인 부분에서 우라사와의 수정을 받아 성격이 조금 애매해지긴 했으나 나름대로 훌륭하다. 그는 아마 '뱀파이어'의 마쿠베 로쿠로이후로 가장 훌륭하게 형상화된 악마적 초인일 것이다. 문제는 덴마다.
덴마가 이 작품의 주제를 완벽하게 희석시키고 있다. 덴마에게 주어진 에고라는 역할을 그는 거의 소화하지 못했다. 사실상 그는 니나와 요한의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했다. 그러나 우라사와는 그를 그렇게 그리지 않았다. 그는 명백히 니나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그 결과 그는 니나의 역할을 거의 대부분 빼앗았다. 그 반대급부로 부당하게도 니나는 무용하게까지 보이게 되는 것이다.
덴마의 설정은 대단히 의미심장하다. 그는 인간의 생사를 거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 이른바 뇌과의. 거기다가 그밖에 성공시킬 수 없는 수술이 많을 정도의 천재다. 원래대로였다면 자신의 오만함과 그에서 비롯된 허무와 휴머니즘사이에서 방황했어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기반으로 선도 악도 아닌 에고의 역할을 소화했어야 했으리라. 하지만 그는 휴머니즘 쪽으로만 기울어져 있다.
이것이 '몬스터'의 치명적인 단점으로 작용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아마 우라사와가 덴마를 에고로 제대로 형상화시켜 그렸다면 요한과의 마지막 대치에서의 임팩트는 지금의 몇십배가 되었을지 모른다. 아마 '몬스터'는 걸작으로 남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라사와는 그렇게 그리지 않았다. 그리지 못했다가 아니다. 그리지 않았다.
아마 우라사와는 이렇게 변명할지도 모른다. 오에 겐자부로처럼...
'그렇게 그리면 더 미학적이고 완전해지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를 그리고 싶지 않다고' 말이다.
아쉬움이 남지만 그의 선택을 지지한다.
-뱀발-
대충 이런 식으로 겐조 덴마론과 니나 폴트너론을 때웠습니다. 작년 12월부터 '몬스터'관련 글을 썼으니 거의 3개월 반이 걸린 꼴이군요.
# by | 2005/03/04 21:50 | 만화관련 | 트랙백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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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잭님처럼..멋진 홈피는 언제 만들지...ㅠㅠ...
실은 그렇게 아쉬우니까 좋아하는 건지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