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03월 24일
레종 데트르를 얻기위한 예술가의 몸부림 '무능인'
졸역 쓰게 요시하루 초기작 해설(1)
<쓰게 요시하루는 전위적인 만화와 사소설적인 예술가만화를 병립시키면서 놀라울 정도의 명성을 얻었다. 이른바 '만화를 보지 않는 사람도 그의 만화를 보면 예술이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극도의 대인공포증과 우울증은 이 작가의 만화에 이색적인 색채를 가미했고 비참한 시절 이야기의 적나라함은 극도의 리얼리즘을 부여했다. 그러기에 그의 만화는 다른 작가와는 완전히 다른 양상을 지닌다.
데츠카가 죽고난후 나온 전집은 총 권수가 400이었다. 그리고 그에 반해 쓰게의 전집은 8권에 불과하다. 그만큼 그는 과작, 소작의 작가였다. 이런 면이 또한 그에게 이색적인 색채를 부여하는 것 중 하나이리라. 우울증 발작으로 활동 중단이 잦았던 이 작가의 신조사 문고판 작품을 보고 난 그의 세계에 빠져버렸다. 신조사 문고판에는 그의 대표작으로 일컬어지는 '붉은 꽃', '나사식', '치코', '겐센 여관의 주인'이 들어있지 않기에 아쉽지만 대본소 시절부터 시작하여 그의 80년대를 망라하는 작품들 36편은 그의 세계를 엿보는 데엔 충분하리라 생각된다.
이번 쓰게의 신조사 문고판의 리뷰는 3번 정도로 1) 무능인, 2) 쓰게의 초기작에 관한 글 졸역, 3) 쓰게의 단편 3작품 '산책의 나날', '이상한 편지', '밖의 부풀음'의 졸역으로 구성하고자 한다.>
쓰게의 작품인 '무능인'은 총 6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있다. 그들 각각의 제목은 1화 돌을 팔다, 2화 무능인, 3화 조사(鳥師), 4화 돌을 찾으러 감, 5화 카메라를 팔다, 6화 증발이다. 주인공과 상황은 기본적으로 동일하며 주제도 거의 비슷하다.
1화 돌을 팔다
주인공은 처자가 딸린 전직 만화가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하여 만화가를 집어치우고 고물상, 카메라상을 해보지만 모두 실패한다. 마지막으로 그가 선택한 돈벌이는 돌(수석)을 파는 것이다. 책에서 얻은 얄팍한 지식으로 강가의 돌을 주워 그럴듯한 이름을 붙여 천막을 치고 판다. 물론 아무도 사지 않는다. 가계는 계속 궁핍해져 마누라는 3만엔을 받고 하루 종일 찌라시를 돌려 연명하며 경제적으로 무능한 주인공을 무시하게 된다. 결국 그는 당장 먹을 돈을 벌기 위하여 사람을 업고 강을 건네주며 100엔씩 받는다. 아이가 마중 나오고 그는 1200엔어치 동전을 들고 귀가하려 한다. 마중나온 아이가 묻는다. '아빠, 저 돌 누가 훔쳐가지 않을까?' 이에 대한 주인공의 대답이 걸작이다. '냅둬, 어차피 훔쳐 갈 사람없어.'
2화 무능인
그는 그래도 돌장사로 돈을 벌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수석 전문가의 도움을 얻어 수석 옥션에 자신이 모은 돌을 출품한다. 자리세 10000엔을 내고 싸구려 도시락 대접을 받으며 돈을 벌 기대에 부풀지만 동네 강가에서 주은 돌을 비싼 돈 주고 살 바보는 없었다. 그는 자리값도 못건진채 무거운 돌을 들고 가족과 함께 귀가한다. 화가난 아내는 돌을 던져 버린다. 그리고 주인공에게 '만화를 그리라'고 하소연한다. 그러나 주인공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3화 조사(鳥師)
어느날 주인공은 새장사를 하는 쿠라하라씨를 찾아간다. 쿠라하라씨는 그에게 조사(鳥師)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10년전 쿠라하라씨는 낚시를 하고 돌아오는 도중에 쓰레기통위에 걸터앉은 거대한 까마귀를 발견하고 놀란다. 자세히 보니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새를 다루는데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고 울음소리가 훌륭한 명조들을 쿠라하라씨에게 팔기 시작했다. 쿠라하라씨는 그 덕분에 쏠쏠하게 돈을 벌었다. 어느 비오는 날, 그 조사는 빈사의 상태로 백로를 팔려고 왔는데 쿠라하라씨는 그간의 은혜도 잊고서 큰새는 취급안한다며 매입하지 않는다. 조사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빗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던 어느날 수문위에 서있는 조사를 발견한 쿠라하라씨는 그가 왠지 새라고 생각되어 자신도 모르게 '날아라, 날아라'라고 외치고 만다. 그리고 조사는 수문에서 도약하여 날았다. 이 이야기를 들은 주인공은 그 수문위에 올라가서 그 흉내를 내려고 하나 아들이 마중나와 그만두고 집에 돌아간다.
4화 돌을 찾는 여행
우연히 자신의 만화가 시절의 팬 덕분에 30000엔을 손에 넣은 주인공은 그 돈으로 처자를 데리고 돌을 찾으러 1박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돌은 구할 수 없었고 무드없는 여관에서 하룻밤 자는 것이 여행의 전부가 된다. 여관에서 허무승을 만난 주인공 가족은 푼돈을 시주하고 허무승의 피리를 듣는다. 주인공은 허무승의 허무가 무슨 뜻인지 생각해보고 그것이 세상에 무용하다는 뜻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에게도 해당된다는 것을 알고 어쩔 줄 모른다.
5화 카메라를 팔다
이야기는 주인공이 만화가를 그만 둘 무렵으로 돌아간다. 예술 만화가란 직업에 미래가 없다고 생각한 주인공은 고물상 나카타씨를 만나 그에게 감화되어 만화가를 그만두고 고물 카메라를 수리해서 파는 일을 시작한다.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매우 미미하게도 카메라 붐이 일어났을 때엔 자신도 요도바시 카메라 같은 기업을 만들겠다고 큰소리치나 카메라붐이 꺼지자 바로 실업자가 된다.
6화 증발
수수께끼의 헌책방 주인 야마이는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는 스스로를 존재하지 않는 증발한 존재라고 말한다. 야마이는 원래 다른 지방에 자신의 생활이 있지만 잠시 이곳에 머무르는 그런 사람이다. 그는 남에게 이득을 주지도 않지만 폐를 끼치지도 않는다. 그런 그가 주인공에게 한 권의 책을 권한다. 그 책은 이츠키라는 한 방랑 하이쿠시인의 전기였다. 이 이츠키는 야마이와 마찬가지로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가는 인물이다. 젊었을 때엔 하이쿠로 환영받았지만 늙자 그를 환대하던 친구들도 문전박대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무도 원망하지 않는다. 그는 적선받은 옷도 거지에게 벗어주고 누더기를 입고 다닌다. 결국 그는 밭에 쓰러져 거름 투성이가 되어 죽어간다. 그런 그를 마을 사람들이 헛간으로 옮겨 그에게 사세의 구(죽을 때 마지막으로 쓰는 시)를 짓게 한다. 그 하이쿠는 이렇다. '어디에서든/학의 소리 들리네/ 안개인걸까' 주인공은 이 시를 대단히 맘에 들어하면서도 야마이와 이츠키를 바보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예술가는 삶에서 괴리된 이방인이 아닐까라는 주제는 토마스 만과 카프카가 즐겨 다루던 소재였다. 특히 토마스 만은 시민성과 예술성을 대비시켜 예술적 인간이 얼마나 현실적인 삶에 무력한지를 소설 '트리스탄', '어릿광대' 등에서 선연하게 보여주었다. 이 현실에 무력한 예술가를 이방인으로 묘사한 것은 카프카였다. 카프카의 소설에서 예술적 인간은 본질적으로 세계의 부조리를 알기에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이방인으로 전락한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를 기본으로 논의를 발전시켜 보면 예술적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 인간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이것을 바탕으로 이 작품을 이해해보자. 주인공은 예술적 인간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예술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마누라가 아무리 눈물로 하소연해도 그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그는 돈을 벌려고 한다. 이 돈을 번다는 행위는 시민적인 행위이고 그에게는 본질적으로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기에 그는 실패를 거듭하게 되는 것이다. 왜 그는 만화를 그리려 하지 않는 것일까? 이에 대한 해답은 2가지 이야기(3화와 6화)에 실마리가 있다.
3화와 6화는 각각 예술적 인간의 전형을 묘사하고 있다. 조사는 예술가의 비유다. 그가 새를 팔러 쿠라하라씨의 가게에 오는 것은 자신의 작품을 팔러 대본소나 출판사를 들락날락거리는 예술가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그는 백로로 상징되는 대작을 만들지만 쿠라하라는 그것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러나 조사는 그에 굴하지 않고 현실을 뛰어넘어 불멸의 존재가 된다. 이것은 난다는 행위로 상징된다. 그는 팔리지 않으나 예술에서 뛰어난 업적을 쌓은 예술가를 상징한다. 주인공이 조사의 흉내를 내보려하지만 아이 때문에 실패하는 것은 현실의 벽에 부딛힌 예술적 인간의 모습을 훌륭하게 보여준 것이다.
이츠키는 극단적인 예술적 인간의 전형이다. 그는 너무나도 예술적인 인간이기에 천성적인 이방인의 길을 걷는다. 상술했다시피 이방인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기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애초부터 현실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러기에 앞서 조사를 흉내내고자 했던 주인공은 그에게는 동감하지 못한다. 그는 존재하기를 원한다. 그에게는 처자식이 있고 그의 자아가 있다. 그러기에 그는 증발하기를 거부한다.
이러한 관점으로 볼 때에 왜 주인공이 만화를 그리지 않는가를 추리해본다면 다음의 결론을 얻을 수 있다. 그는 레종 데트르를 얻으려고 발버둥치는 예술적 인간이다. 예술을 계속 할 수록 그는 이방인이 되어가고 이방인이 된다는 것은 존재가 지워져간다는 것이다. 그는 그러한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만화를 그리지 않는 것이다. 예술가가 레종 데트르를 얻으려고 하는 모순이 그의 본질적인 자질이다. 이 모순이 그를 무능인으로 이끈다.
무능하다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존재하지 않는것과 마찬가지다. 그러기에 무능인은 이방인의 변형에 지나지 않는다. 주인공은 이방인이 되지 않으려 예술에서 도망치지만 그 결과 무능인이라는 다른 형태의 이방인이 된다. 이 아이러니함이 이 작품의 본질일 것이다.
그가 돌을 판다는 행위 또한 여러가지를 상징하는데 특히 수석상의 일과 예술가의 일이 공통되는 부분에 주목해보자. 그는 강가에서 돌을 주워다가 이름을 붙여 판다. 이것은 창작활동을 유머러스하게 연상시키는데 일상에서 소재를 집어다가 작품화하여 이름을 붙이는 것과 매치된다. 그는 예술적 인간이기에 예술적인 일밖에 고르지 못한다. 그러나 예술적인 일은 저자에게 자조스럽게도 전혀 현실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기에 돌장사는 주인공의 생활에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의 무능함은 천성이다. 그리고 이것에는 예술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저자의 자조가 섞여있다. 이것은 본질적인 문제이고 영원한 미결문제다. 그러기에 절망을 기조로 한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쓰게 요시하루는 전위적인 만화와 사소설적인 예술가만화를 병립시키면서 놀라울 정도의 명성을 얻었다. 이른바 '만화를 보지 않는 사람도 그의 만화를 보면 예술이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극도의 대인공포증과 우울증은 이 작가의 만화에 이색적인 색채를 가미했고 비참한 시절 이야기의 적나라함은 극도의 리얼리즘을 부여했다. 그러기에 그의 만화는 다른 작가와는 완전히 다른 양상을 지닌다. 데츠카가 죽고난후 나온 전집은 총 권수가 400이었다. 그리고 그에 반해 쓰게의 전집은 8권에 불과하다. 그만큼 그는 과작, 소작의 작가였다. 이런 면이 또한 그에게 이색적인 색채를 부여하는 것 중 하나이리라. 우울증 발작으로 활동 중단이 잦았던 이 작가의 신조사 문고판 작품을 보고 난 그의 세계에 빠져버렸다. 신조사 문고판에는 그의 대표작으로 일컬어지는 '붉은 꽃', '나사식', '치코', '겐센 여관의 주인'이 들어있지 않기에 아쉽지만 대본소 시절부터 시작하여 그의 80년대를 망라하는 작품들 36편은 그의 세계를 엿보는 데엔 충분하리라 생각된다.
이번 쓰게의 신조사 문고판의 리뷰는 3번 정도로 1) 무능인, 2) 쓰게의 초기작에 관한 글 졸역, 3) 쓰게의 단편 3작품 '산책의 나날', '이상한 편지', '밖의 부풀음'의 졸역으로 구성하고자 한다.>
쓰게의 작품인 '무능인'은 총 6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있다. 그들 각각의 제목은 1화 돌을 팔다, 2화 무능인, 3화 조사(鳥師), 4화 돌을 찾으러 감, 5화 카메라를 팔다, 6화 증발이다. 주인공과 상황은 기본적으로 동일하며 주제도 거의 비슷하다.
1화 돌을 팔다
주인공은 처자가 딸린 전직 만화가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하여 만화가를 집어치우고 고물상, 카메라상을 해보지만 모두 실패한다. 마지막으로 그가 선택한 돈벌이는 돌(수석)을 파는 것이다. 책에서 얻은 얄팍한 지식으로 강가의 돌을 주워 그럴듯한 이름을 붙여 천막을 치고 판다. 물론 아무도 사지 않는다. 가계는 계속 궁핍해져 마누라는 3만엔을 받고 하루 종일 찌라시를 돌려 연명하며 경제적으로 무능한 주인공을 무시하게 된다. 결국 그는 당장 먹을 돈을 벌기 위하여 사람을 업고 강을 건네주며 100엔씩 받는다. 아이가 마중 나오고 그는 1200엔어치 동전을 들고 귀가하려 한다. 마중나온 아이가 묻는다. '아빠, 저 돌 누가 훔쳐가지 않을까?' 이에 대한 주인공의 대답이 걸작이다. '냅둬, 어차피 훔쳐 갈 사람없어.'
2화 무능인
그는 그래도 돌장사로 돈을 벌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수석 전문가의 도움을 얻어 수석 옥션에 자신이 모은 돌을 출품한다. 자리세 10000엔을 내고 싸구려 도시락 대접을 받으며 돈을 벌 기대에 부풀지만 동네 강가에서 주은 돌을 비싼 돈 주고 살 바보는 없었다. 그는 자리값도 못건진채 무거운 돌을 들고 가족과 함께 귀가한다. 화가난 아내는 돌을 던져 버린다. 그리고 주인공에게 '만화를 그리라'고 하소연한다. 그러나 주인공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3화 조사(鳥師)
어느날 주인공은 새장사를 하는 쿠라하라씨를 찾아간다. 쿠라하라씨는 그에게 조사(鳥師)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10년전 쿠라하라씨는 낚시를 하고 돌아오는 도중에 쓰레기통위에 걸터앉은 거대한 까마귀를 발견하고 놀란다. 자세히 보니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새를 다루는데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고 울음소리가 훌륭한 명조들을 쿠라하라씨에게 팔기 시작했다. 쿠라하라씨는 그 덕분에 쏠쏠하게 돈을 벌었다. 어느 비오는 날, 그 조사는 빈사의 상태로 백로를 팔려고 왔는데 쿠라하라씨는 그간의 은혜도 잊고서 큰새는 취급안한다며 매입하지 않는다. 조사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빗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던 어느날 수문위에 서있는 조사를 발견한 쿠라하라씨는 그가 왠지 새라고 생각되어 자신도 모르게 '날아라, 날아라'라고 외치고 만다. 그리고 조사는 수문에서 도약하여 날았다. 이 이야기를 들은 주인공은 그 수문위에 올라가서 그 흉내를 내려고 하나 아들이 마중나와 그만두고 집에 돌아간다.
4화 돌을 찾는 여행
우연히 자신의 만화가 시절의 팬 덕분에 30000엔을 손에 넣은 주인공은 그 돈으로 처자를 데리고 돌을 찾으러 1박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돌은 구할 수 없었고 무드없는 여관에서 하룻밤 자는 것이 여행의 전부가 된다. 여관에서 허무승을 만난 주인공 가족은 푼돈을 시주하고 허무승의 피리를 듣는다. 주인공은 허무승의 허무가 무슨 뜻인지 생각해보고 그것이 세상에 무용하다는 뜻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에게도 해당된다는 것을 알고 어쩔 줄 모른다.
5화 카메라를 팔다
이야기는 주인공이 만화가를 그만 둘 무렵으로 돌아간다. 예술 만화가란 직업에 미래가 없다고 생각한 주인공은 고물상 나카타씨를 만나 그에게 감화되어 만화가를 그만두고 고물 카메라를 수리해서 파는 일을 시작한다.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매우 미미하게도 카메라 붐이 일어났을 때엔 자신도 요도바시 카메라 같은 기업을 만들겠다고 큰소리치나 카메라붐이 꺼지자 바로 실업자가 된다.
6화 증발
수수께끼의 헌책방 주인 야마이는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는 스스로를 존재하지 않는 증발한 존재라고 말한다. 야마이는 원래 다른 지방에 자신의 생활이 있지만 잠시 이곳에 머무르는 그런 사람이다. 그는 남에게 이득을 주지도 않지만 폐를 끼치지도 않는다. 그런 그가 주인공에게 한 권의 책을 권한다. 그 책은 이츠키라는 한 방랑 하이쿠시인의 전기였다. 이 이츠키는 야마이와 마찬가지로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가는 인물이다. 젊었을 때엔 하이쿠로 환영받았지만 늙자 그를 환대하던 친구들도 문전박대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무도 원망하지 않는다. 그는 적선받은 옷도 거지에게 벗어주고 누더기를 입고 다닌다. 결국 그는 밭에 쓰러져 거름 투성이가 되어 죽어간다. 그런 그를 마을 사람들이 헛간으로 옮겨 그에게 사세의 구(죽을 때 마지막으로 쓰는 시)를 짓게 한다. 그 하이쿠는 이렇다. '어디에서든/학의 소리 들리네/ 안개인걸까' 주인공은 이 시를 대단히 맘에 들어하면서도 야마이와 이츠키를 바보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예술가는 삶에서 괴리된 이방인이 아닐까라는 주제는 토마스 만과 카프카가 즐겨 다루던 소재였다. 특히 토마스 만은 시민성과 예술성을 대비시켜 예술적 인간이 얼마나 현실적인 삶에 무력한지를 소설 '트리스탄', '어릿광대' 등에서 선연하게 보여주었다. 이 현실에 무력한 예술가를 이방인으로 묘사한 것은 카프카였다. 카프카의 소설에서 예술적 인간은 본질적으로 세계의 부조리를 알기에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이방인으로 전락한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를 기본으로 논의를 발전시켜 보면 예술적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 인간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이것을 바탕으로 이 작품을 이해해보자. 주인공은 예술적 인간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예술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마누라가 아무리 눈물로 하소연해도 그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그는 돈을 벌려고 한다. 이 돈을 번다는 행위는 시민적인 행위이고 그에게는 본질적으로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기에 그는 실패를 거듭하게 되는 것이다. 왜 그는 만화를 그리려 하지 않는 것일까? 이에 대한 해답은 2가지 이야기(3화와 6화)에 실마리가 있다.
3화와 6화는 각각 예술적 인간의 전형을 묘사하고 있다. 조사는 예술가의 비유다. 그가 새를 팔러 쿠라하라씨의 가게에 오는 것은 자신의 작품을 팔러 대본소나 출판사를 들락날락거리는 예술가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그는 백로로 상징되는 대작을 만들지만 쿠라하라는 그것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러나 조사는 그에 굴하지 않고 현실을 뛰어넘어 불멸의 존재가 된다. 이것은 난다는 행위로 상징된다. 그는 팔리지 않으나 예술에서 뛰어난 업적을 쌓은 예술가를 상징한다. 주인공이 조사의 흉내를 내보려하지만 아이 때문에 실패하는 것은 현실의 벽에 부딛힌 예술적 인간의 모습을 훌륭하게 보여준 것이다.
이츠키는 극단적인 예술적 인간의 전형이다. 그는 너무나도 예술적인 인간이기에 천성적인 이방인의 길을 걷는다. 상술했다시피 이방인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기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애초부터 현실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러기에 앞서 조사를 흉내내고자 했던 주인공은 그에게는 동감하지 못한다. 그는 존재하기를 원한다. 그에게는 처자식이 있고 그의 자아가 있다. 그러기에 그는 증발하기를 거부한다.
이러한 관점으로 볼 때에 왜 주인공이 만화를 그리지 않는가를 추리해본다면 다음의 결론을 얻을 수 있다. 그는 레종 데트르를 얻으려고 발버둥치는 예술적 인간이다. 예술을 계속 할 수록 그는 이방인이 되어가고 이방인이 된다는 것은 존재가 지워져간다는 것이다. 그는 그러한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만화를 그리지 않는 것이다. 예술가가 레종 데트르를 얻으려고 하는 모순이 그의 본질적인 자질이다. 이 모순이 그를 무능인으로 이끈다.
무능하다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존재하지 않는것과 마찬가지다. 그러기에 무능인은 이방인의 변형에 지나지 않는다. 주인공은 이방인이 되지 않으려 예술에서 도망치지만 그 결과 무능인이라는 다른 형태의 이방인이 된다. 이 아이러니함이 이 작품의 본질일 것이다.
그가 돌을 판다는 행위 또한 여러가지를 상징하는데 특히 수석상의 일과 예술가의 일이 공통되는 부분에 주목해보자. 그는 강가에서 돌을 주워다가 이름을 붙여 판다. 이것은 창작활동을 유머러스하게 연상시키는데 일상에서 소재를 집어다가 작품화하여 이름을 붙이는 것과 매치된다. 그는 예술적 인간이기에 예술적인 일밖에 고르지 못한다. 그러나 예술적인 일은 저자에게 자조스럽게도 전혀 현실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기에 돌장사는 주인공의 생활에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의 무능함은 천성이다. 그리고 이것에는 예술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저자의 자조가 섞여있다. 이것은 본질적인 문제이고 영원한 미결문제다. 그러기에 절망을 기조로 한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 by | 2005/03/24 00:45 | 만화관련 | 트랙백(1) | 덧글(0)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제목 : 졸역 쓰게 요시하루 초기작 해설(1)
레종 데트르를 얻기위한 예술가의 몸부림 '무능인' 저자, 쓰게 요시하루는 1937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패전시에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가츠시카에서의 갈수록 심해지는 공습과 나가노로의 학생 소개를 체험했지만 선열한 잔상으로서 뇌내에 각인되지는 않았던 듯하다. 따라서 오늘의 쓰게 요시하루에게 있어서 원점이라고 할 만한 것은 패전후의 상황이라 봐도 좋을 것이다. 단지 이 경우의 상황이란 생활환경, 또는 가정환경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은 패전 다음해 1946년에서 1947년까지의 시간으로 한정해도 좋을지도 모르겠다.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