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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역 쓰게 요시하루 초기작 해설(1)

레종 데트르를 얻기위한 예술가의 몸부림 '무능인'
졸역 쓰게 요시하루 초기작 해설(2)

저자, 쓰게 요시하루는 1937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패전시에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가츠시카에서의 갈수록 심해지는 공습과 나가노로의 학생 소개를 체험했지만 선열한 잔상으로서 뇌내에 각인되지는 않았던 듯하다. 따라서 오늘의 쓰게 요시하루에게 있어서 원점이라고 할 만한 것은 패전후의 상황이라 봐도 좋을 것이다. 단지 이 경우의 상황이란 생활환경, 또는 가정환경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은 패전 다음해 1946년에서 1947년까지의 시간으로 한정해도 좋을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1942년에 친아버지를 잃었다. 전후 저자를 포함한 남자 3형제가 모친의 품안에 남겨졌지만 곧이어 어머니는 재혼하고 여동생 둘이 태어났다. 양아버지와 할아버지를 더한 8명의 가족이었다. 가계를 지탱하기 위해 모친과 장남, 그리고 차남인 저자는 가츠시카 다츠이시역앞 암시장에서 몇가지 장사에 손을 댔다.

1950년 저자는 소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근처의 도금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의무교육이었을 중학교육을 방기한것은 단지 수입을 얻기 위해서만이 아니었으리란 생각이 든다. 이 시절에 관한 것은 '야모리' '바다로' '오오바 전기 도금 공업소'등 사소설적색채 짙은 작품에 묘사되지만 작품에서도 엿볼수 있듯이 저자는 그 때에 이미 고립을 향하여 출발한다.

저자는 틈틈이 스스로를 대인공포증 적면공포증의 경향이 있다고 에세이 등에서 밝히고 있다. 사춘기를 다룬 '요시오의 청춘'에도 그런 측면이 그려졌다. 아마 거기에 거짓은 없을 것이다. 아니 가족 속에 있어도 '불편함'이 느껴졌을 지도 모른다. 도금공장에 나간 것도 가족에게서 떨어지려는 심리가 작용한게 아닐까 생각된다. 그것은 쓰게 요시하루라는 인간의 자질, 성격, 감성이라는 것에 연결되는 것이 아닐까.

13세부터 17세까지 5년간을 도금공으로 지냈다. 그저 묵묵히 일했던 듯하다. "전후민주주의"의 이념도 그 여파도 저자에게는 스치지도 않았다. 정확히 한국전쟁과 겹쳐지는 시기였다. 도금 공장에서도 탄두의 연마에 손을 댄 적도 있다. 그러나 저자는 한국전쟁이 진전되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신문을 읽지 않았다던가, 정치에 관심이 없다던가, 사회에 눈을 돌리지 않았다던가한 것이 아니다. 확실히 그런 의미에서는 무지했을지도 모른다. 시대가 시대니만큼 어쩔 수 없이 겹쳐만가는 사회적 정치적 사건들이 그의 귀에 들어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저자에게는 모든 일들이 쓰잘데기 없었으리라. 14,5세의 소년이었기에 그런 것이 아니다. 묵묵히 일하는 소년에게 타자의 생사는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어쩌면 가족의 생사도 그리고 자신의 생사도 문제거리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 증거로 저자는 당시를 회상한 에세이랑 먼저 거론한 사소설적인 작품에서 결코 피해의식을 드러내지 않았다. 도금공의 입장을 자랑하지 않지만 비하도 하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사실에 비추어가며 담담히 써내려갔다. 비극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사양한다란 것이기도 하다.

당시에 대하여 저자에게 집요하게 되물어도 좋겠다. "아 정말로 아무 생각 없었어요. 그것 뿐 입니다."라고 틀림없이 대답할 것이다. 그것은 겸손도 도회도 아니다. 가족의 품에 돌아가는 것이 두려워서 아침부터 밤까지 유산액 앞에서 필사적으로 도금작업에 매진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을테니.

그때부터 2년 정도 된 15세때에 뉴욕행 화물선에 숨어 들어가 밀항을 계획한 적이 있었다. 결국은 해상보안청에 보호를 받으며 혹독하게 설교를 듣는 꼴이 되지만 "바다로의 동경"이라는 동기의 뒤에 저자의 내폐적인 표현을 엿볼수 있다. 도금공장에서 쉬지 않고 일하던 태도, 그리고 결국에는 밀항을 꾸미는 행위, 그것들은 작가로의 길을 암시하고 있었던 것처럼 생각됨을 어쩔 수 없다.

밀항이 좌절되고 한때 국수집 배달을 거들지만 다시 도금공으로 복귀한다. 하지만 그 한편으로 만화가가 될 결심을 품고 소년잡지에 소품을 계속 투고하게 된다. 그리고 드디어 투고작이 채용된것이 17세때였다.

안정된 수입을 바라는 모친의 반대를 뿌리치고 도금공을 그만두고 만화가로서 출발한다. 자신이 그린 단행본 '백면야차'가 간행된것은 1955년, 저자가 18세때였다. 이후 꾸준히 단행본이 간행되어 소년지에서도 작품의뢰가 들어와 경제적으로는 도금공 이상의 수입을 올린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만화 단행본이란 기본적으로 대본소지향으로 출판되었다. 현재 대본점의 수는 미미하지만 40년대에서 50년대에 걸쳐선 전성기라고 일컬어지며 그 수는 전국 2만에서 3만이라고 보여진다. 그것은 또 전후의 생활사정을 직설적으로 전해준다. 대다수의 서민에게 있어선 책을 산다는 행위는 그다지 흔한 것으로 비춰지지 않는 시절이었다. 대본소에 가면 신간 1권 값으로 5,6권이나 빌릴 수 있었다. 그런 대본소는 마을에 한 곳 씩은 존재했다. 뒷골목에서 심심풀이처럼 노부부가 시간때우기 식으로 영업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저자가 그린 단행본은 B6판 하드커버, 128페이지로 정해져 있었다. 내용은 시대물, 탐정물이 주류를 차지했다. 그것은 당시 월간 소년지의 내용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한마디로 대본소 지향 만화도 독자대상을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상정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발행부수가 5천에서 만부라는 점에서 대본소의 흥성을 짐작할 수 있으리라. 저자의 회상에 의하면 한권당 원고료는 당시의 샐러리맨 월급의 2-3배였다고 한다.

어쨌든 50년대는 '내면 팔린다'란 것이 대본만화의 상황이었다. 그러기에 페이지수 이외의 제한은 없고 작가들은 극도로 자유로운 기분으로 그릴 수 있었다. 의사소통을 필요로 하는 집단 생활에 익숙하지 못한 저자에게 있어 만화가란 직업은 더할 나위 없었다.

-의외로 분량이 많아 이것도 3번에 걸쳐 올려야겠습니다.

by 블랙잭 | 2005/03/24 22:12 | 만화관련 | 트랙백(1)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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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졸역 쓰게 요시하루 초기작 해설(2)
졸역 쓰게 요시하루 초기작 해설(1) 하지만 순풍에 돛단듯한 생활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만화가가 되고 2년이 지나자 대본만화에 희미하지만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저자는 큰 잡지사의 의뢰에 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소년지는 스토리에 참견을 했다. 어떨 때엔 타이틀을 미리 정해놓고 그에 따라 스토리를 만들도록 강요했다. 프로만화가를 지원하는 젊은이들에게 출판사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은 상식이었지만 저자는 그때 현장에서 도망쳤다. 작가로서의 의식이 높아서가 아니다. 단지 타자와의 흥정이 싫었기 때문임에 틀......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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