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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역 쓰게 요시하루 초기작 해설(3)-完

레종 데트르를 얻기위한 예술가의 몸부림 '무능인'
졸역 쓰게 요시하루 초기작 해설(1)

고도경제성장과는 인연이 없었던 젊은이들에게 있어 대본소는 알맞은 모임장소였다. 그들은 잔업이 끝나면 대본소로 달려갔다. '그림자' '거리' '미로' '인풍'그리고 '닌자무예장'을 5권 10권 빌려서 허리품에 끼고 하숙으로 달려갔다. 그 즈음 제본공장과 인쇄공장이 밀집했던 신주쿠구내 대본소에 들려보면 "저 애들 괜찮을까? 이런 더러운 만화만 읽고말야, 장래가 걱정돼."라고 주인아주머니는 탄식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당시 대본만화는 악서추방운동의 1차목표였다.

쓰게 요시하루의 작품이 젊은이들에게 어떻게 전달되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쓰게 요시하루와 젊은이들의 위상이란게 그다지 떨어져 있지는 않은것 같다.

고도성장에 따른 TV보급, 소년 주간지의 폭발적인 판매는 대본소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고 운명이 다하려 하고 있었다. 대본만화계는 스타일과 품목을 바꾸어 연명하려 했다. 본서에 수록된 '쥐'나 '우현의 창'은 그것을 잘 보여준다. 호시 신이치와 마쓰 사쿄등의 'SF붐'에 편승한 기획이었다. 저자에게 있어서 SF는 거의 관심밖이었지만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선 대본소의 주문을 따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대본만화의 종식기에 월간 만화지 '가로'가 탄생했다. 이 잡지는 시라토 산페이의 메세지대로 기성 만화에 속박받지 않는 참신한 작풍을 추구했다. 저자를 이 잡지에 맞이하려 했던 것은 시라토의 강한 요망이었던 것 같다. 시라토는 전에 '귀신 굴뚝'에 커다란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가로'지상의 "연락바란다"라는 문의인에 의해 저자는 대본만화를 떠나 시라토가 희구했던 "자신의 작품"에 손을 대게 된다. '수박술' '운명' '이상한 그림' 은 그 후 '' '이씨일가' '붉은 꽃' 에서 '나사식'에 걸친 자기표출의 서장을 의미했다. 거기엔 저자다운 리리시즘과 존재론은 아직 모습을 갖추지 않았지만 '귀신 굴뚝'과 '어느 하룻밤', 또는 '통야' '도롱뇽'에 이어진 극성이 보일듯 말듯 했다. 뿐만아니라 '가로'에 동시기에 발표된 '수갑' '개미지옥'은 59-60년에 대본 만화로서 발표된 것을 전면적으로 다시 그린 것이다.

저자는 ''부터 시작하여 '야나기야 주인'까지 햇수로 5년동안 '가로'지상에 명작, 걸작을 차례차례 발표했다. 그것은 진실로 쓰게 요시하루 세계의 전면전개였고 만화계뿐만아니라 모든 표현분야에서 주목을 받았다. 그 뒤로 2년 가까운 휴필기를 두고 1972년부터 '가로'를 떠나 새로운 창작활동에 들어갔다.

본서에 수록된 '그리운 사람' '가레노 여관' '아이즈의 낚시집'은 일반상업지에 연재되었다.

'가로'는 대학생에게 읽히는 잡지라고 알려져있지만 마이너한 존재임에 틀림없었다. 그러기에 저자는 어떤 제한도 받지 않고 스스로의 상념을 정착시킬 수 있었다. 간섭없고, 페이지수 자유라는 조건은 저자의 성격에 안성맞춤이었다. 마이 페이스로 창작에 매진했다. 그 자세는 일반 상업지에 옮겨가서도 변함이 없었다. 평균 1년에 3,4개 작품이 저자의 표준이었다. 번거로움을 피하는 기분은 의연하게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이 쓰게식 라이프 스타일인걸까. 전에 저자는 나의 질문에 대해 창작의욕이라는 것은 없다고 잘라 말한 적이 있다. '나는 돈이 남아있으면 그리지 않는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돈이 남아있으면'이란 말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커다란 착각이다. 저자에게 있어서 광고출연 에피소드에서도 알 수 있듯이 큰돈은 거의 의미가 없다. 따라 '돈이 남아 있으면'이란 것은 '생활이 가능하면'정도의 의미다.

"쓰게 요시하루는 안개를 먹고 사는 게 아닌가?"하는 농담을 주고 받은 적이 있지만 그런 "쓰게 요시하루 전설"이 진실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것도 거짓말이 아니다. 쓰게 요시하루식 라이프 스타일을 근저에서 지탱해주는 것은 무엇일까하고 이상하게 생각하는 일이 있다. 전후의 소년기 체험이 그 핵이 되어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타고난 자질이 그런 것일까.

오늘날 같은 복잡한 사회에서는 사람과 사람의 의사소통이 몹시 어렵다. 그것을 저자도 충분히 알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 위에 저자는 모든 형태에서의 관계성을 폐기한다. 그것은 마치 세상을 떠난 성자의 모습에 닮지 않은 것도 아니다. 쓰게 요시하루에게 있어 고립이란것은 그러한 이미지로서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 마지막으로 저자의 주조음의 근변을 건드려 두고 싶다. 작품의 주인공의 다수는 하층 사람들이며 사회에서 떨어진 사람들이다. 그러나 저자는 그것을 소리높여 호소하거나 하지 않는다. '무능인'을 그리던 무렵이라고 기억하는데 관심있는 소설가로서 가와사키 죠타로, 미야지마 스케오, 하야마 요시키, 미야치 가로쿠의 이름을 들었던 적이 있다. 일반적으로 그다지 이름이 알려진 작가는 아니었다. 다이쇼시절에서 쇼와초기 까지 작품을 발표했던 작가들이다. 가와사키, 미야지마가 아나키즘, 하야마가 맑시즘, 미야치가 니힐리즘 이렇게 각자 경향을 달리하지만 얼추 프롤레타리아문학으로 보여진다. 다만 그들의 소설은 통상의 그것과는 이질적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의 조용한 생활을 조용히 묘사한 작품들이었다. 그들도 국가의 탄압에 굴복하여 전향했다. 전향자 사이에는 국가주의자가 되거나 체제옹호자가 되어 연명한 자도 있지만 그들은 저항도 못하고 역사의 무대에서 내려왔다. 속세를 떠나 개인적인 삶을 추구했다. 가와사키는 사소설가가 되었고 미야지마는 불교도가 되었다. 미야치는 계속 가난했다. 예전 독자들도 그들을 돌아보지 않았다. 작가로서 각광을 받는 일도, 재평가받는 일도 없었다. 그 부분에 저자는 공감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헤이세이 11년 3월 편집자)

겨우 끝났군요. 문고판 세로쓰기를 너무 얕보았습니다.
다음엔 아마도 쓰게 단편 3작품을 번역해서 올리게 될 것 같습니다만
스캐너도 디카도 없어서 구질구질한 폰카사진으로 올리게 될 것 같습니다.
이 점 양해를...

by 블랙잭 | 2005/03/27 13:04 | 만화관련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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