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04월 17일
극한의 비극 '제로'
극한의 세계는 광기의 세계다. 미치지(狂) 않으면 미치지(及) 않는다는 이야기는 의도는 다르지만 이것을 잘 나타낸다. 극한의 세계는 비정상적인 몰입을 강요하는 세계다. 그 세계에는 균형이 없다. 균형의 붕괴는 유머가 없음을 의미하며 그것은 필연적으로 광기의 도래를 부른다. 그러기에 극한은 지옥에 다름아니다. 제로의 최강의 복서 고시마 미야비 또한 이런 지옥에서 사는 수라다. 그는 단 한번도 패하지 않았고 한 번도 상대의 앞에 무릎을 꿇은 적이 없다. 그래서 그의 별명은 '제로'다. 그는 전설 그 자체다. 그런 그도 30이 다가오게 되었고 슬슬 은퇴를 생각할 때가 되었다. 그러한 가운데에 그는 토라비스 발이라는 멕시코 복서에게 흥미를 갖게 된다. 그래서 아는 기자를 시켜서 그의 정보를 수집하게 한다.
같은 체육관 후배인 다카다 아키오는 그의 계승자가 되기 위해 그에게 도전하지만 1라운드도 버티지 못하고 나가 떨어진다. 다카다의 트레이너 김씨는 고시마의 강함의 뒷면을 알아챈다. '그는 즐기지 않는다.' 김씨는 다카다에게 그렇게 -미야비처럼-되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러나 다카다는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멕시코에서 기자가 가져온 토라비스의 테이프를 본 미야비는 토라비스와 싸우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는 자신의 젊은 시절과 똑같은 토라비스의 모습을 보며 미소짓는다. 그는 자신의 후계자로 토라비스를 선택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모든것을 토라비스에게 물려줄 것을 결의한다.

(C) Matsumoto Taiyou/ Shogakukan
드디어 결전의 날, 토라비스는 고시마 미야비를 압도한다. 고시마 미야비 즉 제로는 연타를 얻어 맞고 다운을 당하며 피를 흘린다. 토라비스는 경기를 압도하면서도 고시마의 페이스에 말려든다. 더욱 강하게 더욱 높이 극한으로... 고시마는 그를 극한의 세계로 데려가려 한다. 토라비스는 끌려가다가 결국 벽을 넘지 못하고 극한의 세계에 도달하지 못한다. 그 벽의 이름은 광기다. '더 이상은 따라 갈 수 없어.' 토라비스는 결국 고시마의 광기에 압도당하며 제로의 광기어린 주먹에 쓰러진다. 경기가 종료한뒤 포효하는 고시마의 괴성이 달밤에 울려퍼진다.
마쯔모토 타이요는 이 작품 '제로'에서 목적이 없는 힘의 공허함을, 즐길 줄 모르는 재능의 비극성을 그리고 밸런스를 잃어버린 자의 광기를 그리고 있다. 고시마 미야비는 지킬 대상이 없으면서 최강이며, 복싱을 즐길 줄 모르면서 무적이고, 너무 강하기에 밸런스를 잡지 못한다. 그의 주치의인 아다치 박사는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는 너무 강해. 링에 올라가지 마.' 박사는 고시마의 밸런스가 붕괴되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것이 어떤 결과를 부를지도.고시마의 트레이너인 아라키는 고시마가 밸런스를 잃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리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알면서도 그에게 복싱을 시킨다. '링위에서 밖에 발휘할 수 없는 재능'이 너무 아까웠기 때문이리라. 아라키는 고시마에게 '부숴지지 않는 장난감'을 구해주겠다고 말해 그를 부추긴다. 부숴지지 않는 장난감을 갈망하는 고시마는 질 수 있는 꽃을 부러워한다. 그는 자신의 내면에 커다란 딜레마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극한의 세계를 갈망하지만 그 한편으로 그것을 두려워하는 그런 딜레마를... 결국 그는 딜레마를 극복하지 못하고 광기의 세계로 향한다.
그는 밸런스를 잃어버리고 말그대로 폭주한다. 그는 넘어서는 안될 벽을 넘어버린다. 그러기에 광기와 무적의 강함을 얻은 것이다. 이제 그의 별명 제로는 비극적 이름이 된다. 0은 모든 수를 집어삼키지만-곱하면 모두 0이 된다- 사실 스스로는 아무 것도 아니다. 고시마는 결국 0이었던 것이다. 극한에 도달한자의 공허, 제로는 그러한 의미였다.
졸역 '마쯔모토 타이요론'
# by | 2005/04/17 21:47 | 만화관련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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