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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서 깨어나기 위한 댓가 '카우보이 비밥'

얼마전에 어떤 여학생이 스탕달의 소설 '적과 흑'에 대해 발표를 한 것을 들었는데 그 여학생은 왜 쥘리앙이 쓰잘데 없이 높은 곳만을 바라보는 지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다. 결국 그는 의미없이 자신만의 영달을 위하여 상승의지를 불태운 것이 아니냐고 말이다. 이 말을 듣고 난 그 학생이 이 소설을 그렇게 읽는다는 데에서 위화감을 느꼈다. 그녀는 왜 쥘리앙이 그렇게 출세에 목숨을 거는 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가부장제에서 남자는 성취지향적으로 키워지며 그 성취에 대하여 보상 또는 인정받음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간다. 그리고 그러한 가운데에서 자신의 성취와 자신의 존재를 동일시하게 된다. 쥘리앙이 목숨을 걸고 출세를 하려고 했던것도 이렇게 보면 당연하다. 그는 출세가 목적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증명받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성취라는 것은 현재가 아니라 대부분 과거로서 존재한다. 그러기에 남자는 과거에 집착하게 된다-주먹이 운다에서 강태식(최민식분)이 은메달에 그토록 집착하는 것을 떠올리자- . 조금 심하게 말하자면 남자에게 있어서 과거는 모든 것이다. 물론 이런 식으로 스테레오 타입화하는 것은 옳지 않지만 이른바 남자물을 분석하는 데엔 좋은 틀이 된다.

카우보이 비밥에서 스파이크 스피겔은 삶에서 한발짝 떨어진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삶을 껍데기라고 생각하며 그에게 있어 과거를 상징하는 쥴리아에게 극도로 집착한다. 그는 현재의 삶을 살지 않는다. 단지 꿈을 꿀 뿐이다. 아니 꿈이라고 스스로를 속이고 있을 뿐이다. 그는 처음에 자신의 다른 한쪽 눈이 무엇을 바라보는지 이야기를 흐린다. 그는 본편동안 '한쪽눈으로 과거를 한쪽눈으로는' 아마도 꿈을 꾸고 있었으리라.

우리는 스파이크가 조직의 추격에서 도피하는 중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에게 있어 현실은 조직이며 그것을 도피하여 비밥호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그가 현실에서 도피하여 꿈속을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밥호는 그 승무원들이 현실에서 도피해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훌륭한 벙커다. 이 비밥호에서 스파이크 뿐만 아니라 페이는 과거를 잊고 살아가며 에드는 별 생각없이 살아갈 수 있었다. 나중에 그들이 뿔뿔히 흩어지는 것은 그들이 현실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그 현실이란게 '좋을 건 하나도 없지만'말이다.

스파이크는 드디어 쥴리아와 만나게 되며 함께 도망칠 것을 결의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만만치 않은 법, 쥴리아는 엑스트라의 총에 맞아 쓰러지고 만다. 그녀의 유언은 '이것은 꿈이지?' 스파이크는 드디어 꿈에서 깨어난다. '아아 악몽이야' 쥴리아가 없어짐으로써 스파이크는 과거를 잃었고 존재마저도 잃고 말았다. 그런데 쥴리아가 자신의 전부라고 했지만 그녀가 죽어도 그는 살아있다. 결국 그가 그녀를 자신의 과거와 동일시한 것은 제멋대로 꾼 악몽이었던 것이다.

이제 그는 꿈에서 완전히 깨어나-한쪽눈으로 과거를 한쪽눈으로 현재를 본다- 자신의 현재와 마주치기를 원한다. 그는 페이에게 말한다. '죽으러 가는게 아냐. 살아있는 지 확인하러 가는거야.' 그가 비셔스를 만나러 가는 것은 쥴리아의 복수를 위해서가 아니다. 드이어 그는 진정으로 도피를 접었다. 그는 자신의 의지로 비셔스와 결판을 내러간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있음을 확인한뒤에 죽는다. 그는 꿈에서 깨어나 스스로 현실과 결판을 내려했다. 그래서 그는 전사로 승화된다.

by 블랙잭 | 2005/04/20 15:11 | 만화관련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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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앨리 at 2005/04/20 16:14
우왓! 좋아요 스파이크군! 그 염세적인 눈빛! 몇년전에는 저 씨디모은다고 돈 많이 깼습니다... 그냥 즐기고만말걸 왜그리 사치를 했나 우울해지는 기억이지만, 그래도 그 알맹이는 최고였답니다!!
Commented by 블랙잭 at 2005/04/20 16:34
몇달전에 어슬렁 거리다가 dvd박스를 발견했었는데 -그때 58000원이었죠.- 사가지고 돌아오면서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도 자주 꺼내 봅니다.
Commented by kritiker at 2005/04/20 19:20
비밥 보급판이 나오자마자 없는 술값 딸딸 털어 상점으로 달려가던 친구가 기억나요. 비밥을 좋아하던 친구였는데, 그래서 저도 없는 돈 털어서 x만원짜리 화보집을 사 줬었죠; 그 친구가 몇 년 후에도 비밥을 잊지 않고 사는 걸 보니 괜히 제가 더 기쁘더라구요^^; (전 이제 그 친구에게 빌려 봐야 할...)
Commented by 블랙잭 at 2005/04/20 19:37
비밥으로 두터워진 우정이라... 미담이군요: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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