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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게의 '늪'에 나타난 리얼리즘

만화의 성장 가능성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저도 댓글이 길어져서 트랙백으로 대신하겠습니다.

쓰게의 작품은 카뮈라기 보다는 카프카에 가깝습니다.
카뮈의 작품에서 부조리는 인간을 위대하게 만드는 그런 것이라면
카프카의 작품에서 부조리는 인간에게 던져진 본질적인 비극입니다.

'변신'의 고레고르 잠자는 세계의 부조리를 깨닫고
벌레라는 이방인으로 변하여 고독속으로 침잠하게 되고 맙니다.
세계가 부조리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인간은 세계와 분리되고 마는 것이지요.

쓰게는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적이 있습니다.
"나에게 있어 세상에 적응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어떻게 해야 이 세상에 불안을 느끼지 않고 적응할 수 있는지를 찾고 있습니다."
쓰게의 작품들을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힌트를 제공하고 있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쓰게 또한 이방인인 것이지요.
그리고 그 이방인에게는 고독의 십자가가 지워집니다.

'늪'은 이런 고독의 부조리한 이미지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늪'의 이미지는 침강 그리고 고독입니다.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여 고독에 빠진 작가와
형부의 집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소녀와
날개를 다쳐 늪에서 퍼덕이는 기러기와
새장에 틀어박힌 뱀은
'늪'의 이미지와 지독하게 공명합니다.

이 고독의 늪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소녀가 기러기를 통해서 보여주었듯이
죽는 것 뿐입니다.
사냥꾼이 소녀의 목을 조른 것은
소녀가 기러기의 목을 비트는 것과
겹쳐집니다.
'차라리 죽는 쪽이 행복하겠지'

그러나 사냥꾼은 소녀를 죽이지 못합니다.
아무리 인간의 삶이 고독속에서 발버둥치는 운명을 타고 났을지라도
살아갈 수 밖에 없기 때문이겠지요.
이제 삶은 아름답지 않고 늪에서 발버둥치는 것 같은
괴롭고 추한 것이 됩니다.
인생은 아름답고 행복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살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사는 것으로 전락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사냥꾼은 그 답답한 심정을
하늘로 향해 총을 쏨으로써 위안받으려 합니다.
이것은 작품에 얼마 없는-2번의-해방의 이미지입니다.
그러나 새장에서 벗어난 뱀이 겨울잠을 자러 들어가는 것처럼
결국 산탄은 다시 늪으로 처박히고 말겠지요.
어디에도 도망칠 곳은 없는 것입니다.

쓰게의 작품이 지독하면서 리얼하다는 것은
기만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넘어가는 여러가지가
사실은 아무 근거가 없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일상적이라고 멋대로 착각하기
때문에 일상적인 것이지
본질적으로 일상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전 쓰게의 작품을 지독한 리얼리즘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만화와 문학의 관계는 밀접하기도 하지만
독자적인 영역또한 많습니다.
헤르만 헤세의 '황야의 이리'와
마쯔모토 타이요의 '핑퐁'은 비슷한 주제를 다루지만
주는 느낌이 확연히 다릅니다.

물론 이것은 시각적 이미지와의 결합때문입니다.
시각적 이미지는 이해를 촉진시키지만
사람의 상상력을 제한한다는 단점을 가지지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각적 이미지가 내용과 결합했을때에
시너지 효과를 발산하는 경우가 있고
이것이 좋은 만화의 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데츠카 오사무의 '불새-봉황편'에서 아왕이 공의 원리를 깨닫는 장면의
전율은 헤세의 '싯달타'에서 얻을 수 있는 감동과는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아예 다른 것입니다.

물론 현재까지 만화는 문학에 많은 빚을 지고 있지요.
하지만 그것이 만화가 문학에 비해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는 만화에 기울어진(!) 저로서는 생각하지 않습니다:D

좋은 의견 잘 봤습니다.

by 블랙잭 | 2005/06/11 11:22 | 만화관련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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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fENRIR at 2005/06/11 22:12
어떤 칼이 좋으냐 보다 저는 그 칼로(어떤 칼이든) 무엇을 하느냐에 더 중점을 두고 싶습니다. 그리고 오늘 트랙백의 장점을 확실히 보고가는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블랙잭 at 2005/06/12 09:57
fENRIR// 확실히 장르보다는 그것을 가지고 무엇을 표현하는가가 가장 중요하겠지요.
저의 경우엔 도스토씨 때문에 바닥에 떨어졌다가 데츠카의 만화로 구원받았기에
만화를 편애합니다:D
Commented by daystand at 2005/06/13 09:29
역시 저보다 작품에 대해 깊은 이해를 갖고 계시는군요. 이것이 번역자와 불량 독자와의 넘을 수 없는 차이인가 봅니다. ;;

멋진 트랙백 감사드리고
그럼 계속 좋은 작품 소개 부탁드릴게요.
Commented by 블랙잭 at 2005/06/14 00:14
daystand// 사실은 저도 불량번역자이기에 앞에 항상 졸역을 붙입니다:D
확실히 옮기는 사이에 작품 구석구석을 자기도 모르게 보게 되니까 작품이해에 도움은 많이 되는것 같습니다. 그래도 갈길은 먼것 같습니다만...

모자라지만 열심히는 해보겠습니다: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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