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07월 17일
영원한 현재 '섹스'
나에게 있어 카미조 아츠시는 그림광일 뿐이었다. 이시카와 쥰이 쓴 '만화의 시간'을 보면 그의 그림에 대한 집착이 얼마나 지독한지를 알 수 있다. 그는 만화 '섹스'가 단행본화될때마다 다시 그리곤 했다고 하니... 3권이후로 단행본이 발매안된 것도 이해가 간다. 현재는 결국 완결이 되었지만...역시 이 만화 '섹스'의 그림은 훌륭하다. 그런데 뭐 어쩌라고? 내용은 개연성이 없고 죽었던 사람들은 밥먹듯이 살아나며 스토리엔 몰입의 여지조차 없다. 어찌보면 7권짜리 일러스트집이나 그림책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만화의 감상 포인트는 색다른 곳에 있다. 영원한 현재의 묘사다.
우리는 삶을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누어서 생각하는 버릇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 삶이란 현재의 끝없는 계속이고 미래나 과거는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붓다가 설파한 내용중에서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붓다가 제자들에게 물었다. 삶의 길이는 어느 정도인가? 제자들은 각기 다른 대답을 했다. 붓다는 그 모든 대답을 미소지으며 부인한뒤 이렇게 말했다. '삶의 길이는 한 번 호흡하는 순간이다.'
카미조 아츠시의 만화의 캐릭터는 쿨하다. 이 쿨함은 개똥철학이나 폼잡는데서 튀어나온 것이 아닌 그들의 라이프스타일 자체에서 비롯된다. 후지이 토이든 시바 렌지든 이 섹스의 3인방이든 그들에게는 미래나 과거가 없다. 그들은 현재만을 살고 있다. 과거나 미래는 그들이 알 바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있어서 현재란 모든 것이자 바로 영원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섹스'는 이 현재를 영원인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하여 배경의 이미지를 통일시키는 방법을 사용했다. 모든 이미지는 여름으로 통일된다. 이구아나, 태양, 오키나와, 파란 지붕의 집, 바다... 이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여름안에서 캐릭터들은 현재를 만끽한다. 그들은 여름만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제서야 카미조 아츠시의 그림에 대한 집착또한 이해를 할 수 있었다. 만화에서 그림은 순간의 표현이며 그 표현이 기록됨으로써 영원성을 획득하게 된다. '순간과 영원이 동일해질때' 그것이야말로 카미조가 진정으로 그리고 싶어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은 소재성 포스트를 쓰려고 했습니다만 기술적인 문제때문에 좌절OTL...
이 '섹스'는 '카우보이 비밥'하고 꽤나 비슷합니다.
'섹스'의 연재가 92년에 끝났고 '비밥'의 방영이 95년이니 아마도 '섹스'가 영향을 준게 아닌가 생각되는데
주인공은 총, 라이벌은 칼 둘은 동료였으나 주인공이 떠나면서 깨졌다.
유키와 히가, 스파이크와 비셔스
머리스타일도 비슷합니다..
주인공은 뻣친 머리, 라이벌은 장발...

여주인공은 도박에 능하다.
사이토 카호와 페이 발렌타인..
옷차림이 화끈하다는 것도 공통점.
주인공에겐 같은 조직이었던 과거의 연인이 있다.
유키에게는 자신과 같은 이름(사실은 연인에게서 따온 것이지요)의 유키가
스파이크에게는 쥴리아가 있지요.
주인공의 눈에는 결함이 있다.
유키는 색맹입니다. 스파이크는 한 쪽 눈이 의안이지요.
곰곰히 보면 '섹스'의 인물들을 다운 그레이드 시킨게 '비밥'의 인물들이 아닌가 합니다.
# by | 2005/07/17 22:22 | 만화관련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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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이는 지금봐도 흑백의 화면빨은 여전히 압도적이더군요. 문제는 제가 가진 서울문화사판 단행본의 변색이 심해 흑백의 카리스마가 아니라 흑황의 카리스마가 되어 버렸지만 말입니다.(이래서 카미조 아츠시의 작품은 백상지로 발행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