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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치즈키의 선문답 '상어살갗남자와 복숭아엉덩이여자'

채지충 /禪2 /대현출판사

모치즈키 미네타로의 장난기는 항상 세계에 대한 반항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카프카에게 있어서 부조리하고 거역할 수 없는 계약 상대자였던 세계는 모치즈키에게는 고무찰흙처럼 주체의 맘대로 모습을 바꾸는 장난감에 지나지 않는다. 세계는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인식의 틀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반항스런 장난기는 그의 작품을 고평가받게 만들기도 했지만 반대로 저평가받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항상 철이 없는 소년의 이미지를 동반했기 때문이리라. 사실은 철이 없는게 아니라 철을 거부하는 쪽에 가깝긴 하지만...

이러한 장난기는 이 작품 '상어살갗남자와 복숭아엉덩이여자'의 결말에도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긴박하게 돌아가다 교착상태에 빠진 이야기는 모치즈키의 어처구니 없는 개입으로 종료된다. 뭐 이런 결말이 다 있담?하고 화를 낼 수도 있겠지만 우린 여기에서 모치즈키 특유의 권력에 대한 반항을 읽을 수 있다. 위의 선문답을 보라. 이 작품과 대단히 유사하지 않은가. 이 작품자체가 모치즈키식 선문답이었던 것이다.
위의 선문답은 서사가 어떻게 권력을 획득해서 사람들을 인식의 틀에서 옭아매는 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향엄이 간단한 이야기를 들려준 것 만으로 사람들은 그 서사의 틀에서만 답을 구하려고 한다. 허구가 사람들에게 권력을 발휘하는 순간인 것이다. 마지막에 상좌는 이야기의 밖에서 답을 구한다. 그가 서사의 권력에 얽매이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순간 향엄은 대소한다.


모치즈키도 이것을 이 작품에서 보여준다. 이야기가 교착상태로 흘렀을때에 사람들은 앞으로 이야기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이야기 안에서만 생각하려고 한다. 모치즈키는 이것을 철저히 깨부순다. 그는 자신이 만든 이야기가 권력을 가지게 되는 것조차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모치즈키의 만화들이 대체적으로 열린 결말로 끝나는 것은 아마 이런 그의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여겨진다. 시라토 산페이의 '카무이 전'의 선전문구가 '카무이는 생애동안 당신을 자극할 것이다'였다. 모치즈키 또한 항상 독자를 자극한다. '원래 없는 것'에 얽매이지 않고 항상 자유로워 지도록 말이다.

by 블랙잭 | 2005/09/21 22:18 | 만화관련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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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산마로 at 2005/09/23 22:20
서사의 규칙 따르기는 감상자 스스로 동의한 것일 겝니다. 그것을 서사를 통한 작가의 권력이라고 보는 것은 비약이라고 봅니다. 도리어 암묵적인 규칙을 일방적으로 깨는 작가 쪽이 권력을 무제한 행사하는 것이 아닐지요. 선사가 제자에게 절대 권력자이듯이요.(안타깝게도 이는 사실입니다) 장난기에서 어떤 메시지를 무리하게 읽어낼 필요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Commented by 블랙잭 at 2005/09/23 22:46
산마로// 제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권력은 작자와 독자 사이에서 발생하는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서사를 암묵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이야기 자체가 독자에게 가지게 되는 권력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데츠카 오사무의 만화에는 중요한 몰입의 순간에 표주박 인형이 등장해서 서사에서 독자를 분리시키곤 하지요. 이 결말은 그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서사의 권력에 스스로 백기를 들고 그 세계를 즐기는 것도 좋겠지만 그 세계에서 한발짝 떨어져 비판적 혹은 반항적 거리를 확보하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있는 일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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