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09월 21일
모치즈키의 선문답 '상어살갗남자와 복숭아엉덩이여자'

모치즈키 미네타로의 장난기는 항상 세계에 대한 반항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카프카에게 있어서 부조리하고 거역할 수 없는 계약 상대자였던 세계는 모치즈키에게는 고무찰흙처럼 주체의 맘대로 모습을 바꾸는 장난감에 지나지 않는다. 세계는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인식의 틀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반항스런 장난기는 그의 작품을 고평가받게 만들기도 했지만 반대로 저평가받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항상 철이 없는 소년의 이미지를 동반했기 때문이리라. 사실은 철이 없는게 아니라 철을 거부하는 쪽에 가깝긴 하지만...


이러한 장난기는 이 작품 '상어살갗남자와 복숭아엉덩이여자'의 결말에도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긴박하게 돌아가다 교착상태에 빠진 이야기는 모치즈키의 어처구니 없는 개입으로 종료된다. 뭐 이런 결말이 다 있담?하고 화를 낼 수도 있겠지만 우린 여기에서 모치즈키 특유의 권력에 대한 반항을 읽을 수 있다. 위의 선문답을 보라. 이 작품과 대단히 유사하지 않은가. 이 작품자체가 모치즈키식 선문답이었던 것이다.
위의 선문답은 서사가 어떻게 권력을 획득해서 사람들을 인식의 틀에서 옭아매는 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향엄이 간단한 이야기를 들려준 것 만으로 사람들은 그 서사의 틀에서만 답을 구하려고 한다. 허구가 사람들에게 권력을 발휘하는 순간인 것이다. 마지막에 상좌는 이야기의 밖에서 답을 구한다. 그가 서사의 권력에 얽매이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순간 향엄은 대소한다.


모치즈키도 이것을 이 작품에서 보여준다. 이야기가 교착상태로 흘렀을때에 사람들은 앞으로 이야기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이야기 안에서만 생각하려고 한다. 모치즈키는 이것을 철저히 깨부순다. 그는 자신이 만든 이야기가 권력을 가지게 되는 것조차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모치즈키의 만화들이 대체적으로 열린 결말로 끝나는 것은 아마 이런 그의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여겨진다. 시라토 산페이의 '카무이 전'의 선전문구가 '카무이는 생애동안 당신을 자극할 것이다'였다. 모치즈키 또한 항상 독자를 자극한다. '원래 없는 것'에 얽매이지 않고 항상 자유로워 지도록 말이다.
# by | 2005/09/21 22:18 | 만화관련 | 트랙백 | 덧글(2)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