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9월 28일
이곳에서 일어나는 단 한 가지 일 '쉬이이잇!'
내가 만화가 제이슨을 알게 된 것은 너버나의 한 노래를 연상시키는 제목을 지녔던 '헤이 웨잇'을 우연히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 작품은 돌이킬 수 없는 어떤 것들에 대한 씁쓸함,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지만 되찾을 수 없기 때문에 포기해야만 하는 그 서글픔을 마치 장난이라도 치듯-혹은 그것을 우화형식이라고 표현하지만- 앙상하고 기괴한 동물 캐릭터로 그려낸 만화였다. 난 그 만화에 충격을 받았는데 그 충격은 내 감정을 뒤흔들기보다는 한없이 침잠하게 만드는 그런 성질이었다. 한없이 침울했던 그 작품에 깊은 인상을 받은 뒤, 우연히 서점 구석에서 제이슨의 이 작품 '쉬이이잇!'을 발견했을때의 기쁨이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 '쉬이이잇!'은 도시 생활의 단면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다. 각 이야기의 주인공이 처해진 상황은 각자 다르지만 일관적으로 새의 외형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 주인공들이 뜨내기임을 또는 날기를 갈망하는 성질을 가졌음을 은연중에 암시해 배경인 도시라는 공간의 이미지를 강화시키는 작용을 한다. 이 갑갑한 회색의 도시에서 주인공인 새는 연인을 만나거나 잃고, 결혼하거나 이혼하고, 살아거가나 죽는다. 그동안 그는 언제나 혼자-혹은 그의 분신인 해골 모습을 한 고독과 함께-인데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동일한 삶을 살아간다. 이런 다른 이야기들이 거시적으로 같은 내용인 옴니버스 형식은 셔우드 앤더슨의 소설 '와인즈버그, 오하이오'를 연상시키는데 난 이 소설과 이 만화를 도저히 떼어서 볼 수 없었다. '와인즈버그, 오하이오'의 괴짜들이 사실 우리들임을 알게 되는 순간의 그 느낌을 이 만화는 침묵 속에서 의인화된 동물들의 삶을 통해서 가져다 준다.
TV나 신문, 혹은 다른 미디어나 사람들의 대화에서 우리는 우리가 사는 이곳-칠흑 속에서조차 그림자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여기-에서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것처럼 느끼거나 혹은 기만하면서 살아가지만 사실은 한 종류의 일 밖에 일어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혼자 살다가 혼자 죽는다. 와인즈버그와 기괴한 새가 사는 곳에서 그러했듯이.
# by | 2006/09/28 20:04 | 만화관련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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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않고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흠...// 글쎄요, 아직은 나온게 없지만 앞으론 또 모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