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0월 05일
장화신은 고양이와 추억
편의상 반말체로...
대학 등록금을 벌고자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지도 반년이 되어 가는데 짜디 짠 시급과 박한 휴가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계속하고 있는 것은 몇 가지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을 관찰하기에 좋고, 서비스업이라 고맙다는 말을 많이 듣기에 기분 좋은 것도 있지만 역시 책을 다룬다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인데 좋아하는 화가의 화집을 틈날때마다 볼 수 있다거나 새로 들어온 책을 가장 먼저 약간 싸게 구할 수 있다거나,- 반동으로 지출 중에 책값의 비중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는 것은 불행이겠지만- 그리고 책이 회상의 매개체가 됨으로써 나에게 기쁨을 가져다 주는 경우도 있다.
한 4년 정도 전의 이야기인데 내가 굉장히 잘 따르던 사람이 있었다. 나보다 네 살 연상이었고 쾌활하면서도 다정다감한 사람이었다. 그와 나는 죽이 잘 맞았는데-사실 그가 많이 맞추어 준 것이었지만-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책을 빌려주는 괴벽을 지녔던 나는 그에게도 책을 한 권 권했다. 그 책은 단턴의 '고양이 대학살'이었는데 원래 전공 강의때문에 산 책으로 난 그 책을 좋아했기 때문에 그에게 빌려 주었다. 그런데 그는 그 책의 내용보다도 거기에 실린 삽화들을 마음에 들어했었고 나에게 그 그림을 구할 수 없냐고 물어보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 그림들을 당시의 난 구할 수 없었는데 그에게 그 사실을 말하자 그의 표정이 낙담으로 일그러졌던 것을 아직도 기억한다-기억한다? 이제 떠올랐다가 맞는 말이겠지-. 그리고 이별의 때가 와서 그는 고향으로 내려갔고 두 번 다시 연락이 되지 않았다. 난 언제나 그러했듯이 배은망덕하게도 그를 깡그리 잊어버렸다.
만남이라는 것에는 두 가지의 요소가 필요한데 첫 번째는 물리적인 거리의 단축-즉 한 공간에 있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우리의 주의력이다. 전자는 우연이라는 이름의 변덕스럽고 짖궃은 장난꾸러기 신의 조화로 충족되는 경우가 있지만 후자는 전적으로 우리 자신에게 달린 것으로, 이것이 없다면 우리는 한 사람을 고작 지척에 둘 지라도 그 사람과 만나지 못한다. 이 주의력이 작용하여 어떤 사람의 형상을 우리의 마음 안에 만들어내어 스쳐가는 다른 사람들과 구별하게 하는데, 이것이 처음에는 마치 바위처럼 거대하다가도 시간과 사건의 풍화작용을 거쳐 점점 깎여 돌맹이처럼 작아졌다가 마침내는 모래처럼 가는 알갱이가 되어버려 느끼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가장 고운 입자가 되었다고 해도 결코 사라지지는 않고 신비스런 연상과정을 통해서 다시 그것이 남아 있음을 불현듯 알게 되는데, 마치 마르셀이 '체신부장관'이라는 말에서 질베르트를 떠올렸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어떤 노래, 장면, 악세서리 등 매우 사소한 것에서 추억이 기적적으로 소생하는 것을 느끼고 그것에 가슴아파하거나 기뻐하거나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한 일이 나에게도 일어났는데 도버 출판사에서 나온 귀스타브 도레의 화집들이 내가 일하는 서점에 들어왔다. 그 책 중 한 권의 표지그림으로 단턴의 '고양이 대학살'에 실린 장화신은 고양이가 선택되어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난 잊고 있었던 그 사람이 그 그림을 좋아했던 것을 떠올렸고, 그와 동시에 꼬리를 물고 그 사람에 대한 추억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난 그 기쁨에 가슴이 죄어들어 거의 눈물을 흘릴 것처럼 되었는데, 아마 타인의 이목이 없었다면 그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을지도 모른다. 난 그 책을 사서 서가 한 편에 꽂아두었다. 다시 그를 만난다면 그 책을 보여주리라 생각하면서.
대학 등록금을 벌고자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지도 반년이 되어 가는데 짜디 짠 시급과 박한 휴가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계속하고 있는 것은 몇 가지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을 관찰하기에 좋고, 서비스업이라 고맙다는 말을 많이 듣기에 기분 좋은 것도 있지만 역시 책을 다룬다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인데 좋아하는 화가의 화집을 틈날때마다 볼 수 있다거나 새로 들어온 책을 가장 먼저 약간 싸게 구할 수 있다거나,- 반동으로 지출 중에 책값의 비중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는 것은 불행이겠지만- 그리고 책이 회상의 매개체가 됨으로써 나에게 기쁨을 가져다 주는 경우도 있다.
한 4년 정도 전의 이야기인데 내가 굉장히 잘 따르던 사람이 있었다. 나보다 네 살 연상이었고 쾌활하면서도 다정다감한 사람이었다. 그와 나는 죽이 잘 맞았는데-사실 그가 많이 맞추어 준 것이었지만-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책을 빌려주는 괴벽을 지녔던 나는 그에게도 책을 한 권 권했다. 그 책은 단턴의 '고양이 대학살'이었는데 원래 전공 강의때문에 산 책으로 난 그 책을 좋아했기 때문에 그에게 빌려 주었다. 그런데 그는 그 책의 내용보다도 거기에 실린 삽화들을 마음에 들어했었고 나에게 그 그림을 구할 수 없냐고 물어보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 그림들을 당시의 난 구할 수 없었는데 그에게 그 사실을 말하자 그의 표정이 낙담으로 일그러졌던 것을 아직도 기억한다-기억한다? 이제 떠올랐다가 맞는 말이겠지-. 그리고 이별의 때가 와서 그는 고향으로 내려갔고 두 번 다시 연락이 되지 않았다. 난 언제나 그러했듯이 배은망덕하게도 그를 깡그리 잊어버렸다.
만남이라는 것에는 두 가지의 요소가 필요한데 첫 번째는 물리적인 거리의 단축-즉 한 공간에 있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우리의 주의력이다. 전자는 우연이라는 이름의 변덕스럽고 짖궃은 장난꾸러기 신의 조화로 충족되는 경우가 있지만 후자는 전적으로 우리 자신에게 달린 것으로, 이것이 없다면 우리는 한 사람을 고작 지척에 둘 지라도 그 사람과 만나지 못한다. 이 주의력이 작용하여 어떤 사람의 형상을 우리의 마음 안에 만들어내어 스쳐가는 다른 사람들과 구별하게 하는데, 이것이 처음에는 마치 바위처럼 거대하다가도 시간과 사건의 풍화작용을 거쳐 점점 깎여 돌맹이처럼 작아졌다가 마침내는 모래처럼 가는 알갱이가 되어버려 느끼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가장 고운 입자가 되었다고 해도 결코 사라지지는 않고 신비스런 연상과정을 통해서 다시 그것이 남아 있음을 불현듯 알게 되는데, 마치 마르셀이 '체신부장관'이라는 말에서 질베르트를 떠올렸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어떤 노래, 장면, 악세서리 등 매우 사소한 것에서 추억이 기적적으로 소생하는 것을 느끼고 그것에 가슴아파하거나 기뻐하거나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한 일이 나에게도 일어났는데 도버 출판사에서 나온 귀스타브 도레의 화집들이 내가 일하는 서점에 들어왔다. 그 책 중 한 권의 표지그림으로 단턴의 '고양이 대학살'에 실린 장화신은 고양이가 선택되어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난 잊고 있었던 그 사람이 그 그림을 좋아했던 것을 떠올렸고, 그와 동시에 꼬리를 물고 그 사람에 대한 추억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난 그 기쁨에 가슴이 죄어들어 거의 눈물을 흘릴 것처럼 되었는데, 아마 타인의 이목이 없었다면 그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을지도 모른다. 난 그 책을 사서 서가 한 편에 꽂아두었다. 다시 그를 만난다면 그 책을 보여주리라 생각하면서.
# by | 2006/10/05 13:55 | 기타등등 | 트랙백 | 덧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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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추석 보내세요.^^
잠본이// 그야말로 신비입니다^^.
샤르// 즐거운 추석 되시기를(늦었지만...)
그리고 늦었지만 추석 잘 보내셨기를 바랍니다.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꼭 연락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