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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즐거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그야말로 마법 그 자체이다. 읽기도 놓아버리기도 쉽지 않은 이 책은 과거의 인상 속의 자아와 현재의 자아 사이에서 기쁨-환희-을 가져다 주는 초시간적 자아에 대한 탐구서이며 그 탐구 과정을 따라가는 모든 독자들 각자에게 다른 기쁨을 안겨주는 놀라운 안내서이기도 하다. 프루스트는 사건과 인물을 직접 서술하지 않고 그에 대한 인상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그려냄으로써 그 기적의 여정에 독자들을 끌어들인다. 이 매력적인 작품을 다른 장르에서 탐내지 않았을리 없겠지만 이 작품의 고유한 특성 때문에 다른 장르로의 변용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이에 도전한 돈 키호테-스테판 외에-가 있었고 그 덕분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만화로 옮겨지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도전은 실패다. 원작 소설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에 대한 망설임이 만화 그 자체의 완성도를 크게 떨어뜨리고 말았다. 오히려 자신있게 원작을 변형시켰으면 좋았을걸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결점을 지적하자면 첫째, 우선 원작의 문장에 너무 의존한다. 원작의 문장을 거의 그대로 삽입하면서 만화의 장점을 잘 살리지 못했다. 우아하고 사랑스러운 그림에도 불구하고 그림이 문장의 들러리에 불과하다는 느낌, 즉 삽화에 불과하다는 이미지를 주는데 덕분에 그림과 글의 사이가 벌어져 어색하다. 둘째, 내용의 압축이 아닌 부분 발췌를 하다 보니 만화 그 자체의 연결성이 약하다. 지금까지 발간된 첫 세권은 '스완네 집쪽으로-콩브레' '활짝 핀 아가씨들의 그늘에서-고장의 이름: 고장-'의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1부 '스완네 집쪽으로' 중에서 '스완의 사랑' '고장의 이름: 이름' 2부 '활짝 핀 아가씨들의 그늘에서' 중, '스완 부인의 주변에서'가 그대로 잘려나가 버렸다. 이 소설의 특징 중 하나가 사소한 포석들 하나하나가 나중에 뜻하지 않은 곳에서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인데 아예 생략됨으로써 뒷권과의 연결성이 약해졌다. 실제로 원작을 읽지 않은 사람들이 이 만화를 보면 대부분 어리둥절해 한다. 원작을 읽은 사람이라면 왜 '내'가 발벡에 가게 되었는지 '나'와 질베르트는 어떤 관계였는지 알 수 있겠지만 읽지 않은 사람이라면 두 번째 권의 첫 문장 -'그로부터 이 년 후, 할머니와 함께 발벡으로 떠날 무렵 나는 질베르트를 거의 잊어버릴 수 있었다.'-을 그야말로 생뚱맞기 그지 없는 것으로 여길 게 당연하다.

그러나 이처럼 큰 두 가지 결점에도 불구하고 이 만화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는 것은 즐겁다. 마치 사진이 여행의 기억을 되살려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듯이, 프루스트를 따라 여행을 시작한 그 초기(1, 2부)의 아름다운 심상들을 다시 꺼내어 준다. 프티 마들렌 과자에서 과거를 연상하거나, 마르탱빌 종탑의 인상을 기록하거나, 세 그루 소나무의 말을 들었던 그 아름다운 장면들을 삽화에 지나지 않더라고 하더라도 그림과 함께 볼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유쾌한 경험이다. 현재까지 시도는 성공적이지 못했지만 그래도 계속 뒷권이 나오길 기대한다. 아직 기적의 장면들은 많이 남아있으니까.

by 고갯길개 | 2006/10/16 00:53 | 만화관련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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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mori at 2006/10/28 10:06
보고 싶었던 책이지만, 금전여유가 없어서 못봤던 책이죠. 이런 소감문으로라도 접하게 되어서 반갑네요.
Commented by 고갯길개 at 2006/11/02 01:41
mori// 개인적으로 뒷권을 보고 싶긴 한데 나오긴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Commented by 무한 at 2007/05/11 01:50
저도 금전적인 이유와 엄청난 권수로 인해 볼 엄두가 안났던 책입니다. 조만간 졸업작품이 끝나면 읽을예정입니다 ㅎㅎㅎ 다만 살수없기때문에 도서관에 가서....- _ -;;;
Commented by 대산초어 at 2007/05/11 11:33
무한// 저도 원작소설은 작은 이모한테 졸라서 받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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