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로'의 평가와 재평가 만화관련

 현재 실사 영화화되면서 다시 주목을 모으고 있는 테즈카 오사무의 '도로로'는 원래 그다지 유명한 작품은 아니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비운의 걸작', '환상의 작품(아는 사람만 안다는 뜻으로)'이라는 묘한 수식어와 함께 소개되었고, 테즈카 몰 직후에 평론가들이 최고의 테즈카 작품을 20개 뽑을 때에도 '도로로'의 이름은 제외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끈질기게 살아남아 애니메이션화, 게임화, 소설화, 실사영화화의 미디어믹스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였고 '베르세르크'를 포함한 여러 작품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그야말로 놀라운 생명력이 아닐 수 없다.

 '도로로'는 이른바 테즈카 오사무 슬럼프기의 작품으로 평론가들의 평가는 그리 좋지 않았다. 물론 타의에 의한 것이지만 결말이 엉성하다는 점과 테즈카가 후기에 스스로 인정하였듯이 미즈키 시게루의 요괴만화에 많은 부분을 빚지고 있다는 점에서 후한 평을 얻어내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나마 '도로로'가 얻을 수 있었던 긍정적인 평가는 걸작 '블랙잭'의 전편으로 많은 모티브가 그대로 이어진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단일 작품으로서는 그다지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작품은 아니었던 셈이다.

 하지만 '도로로'는 재평가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이른바 전기 테즈카에서 후기 테즈카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작품이기에 테즈카의 변화과정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고 또한 양쪽의 매력을 어설프게나마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나츠메 후사노스케는 '테즈카 오사무의 모험'이라는 만화 표현사에 관한 책에서 '도로로'에게 따로 한 챕터를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다. 그는 이 챕터에서 테즈카가 어떻게 극화의 표현방법을 흡수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는데 이를 근거로 테즈카가 후기에 부활할 수 있었던 것은 극화의 수법을 흡수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이에 반해 우라사와 나오키 등은 극화의 수법을 도입한 건 사실이지만 테즈카가 재기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보다 기본적인 화력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뉴웨이브가 어떻게 발생하게 되는가에 대해서 근원적인 견해차를 낳게 되므로 이에 대해선 나중에 기회가 되면 따로 적도록 하겠다-

 미즈키 시게루는 테즈카와는 거의 반대의 길을 걸어왔다고 해도 좋을 작가이고 작품의 스타일도 테즈카의 그것과는 상반된다. 극단적으로 설명하자면 테즈카가 동이라면 미즈키는 정이라고 할 수 있다. 테즈카의 만화를 대표하는 키워드가 영화적인 기법이라면 미즈키를 대표하는 키워드는 풍경이다. 풍경을 자세하기 그림으로써 "세트"에 지나지 않았던 배경에 생명을 준 것이다. <게게게의 키타로>나 <갓파 산페이> 등의 작품을 보면 불필요할 정도로 배경이 자세하게 그려진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배경을 자세하게 그리는 기법'이 '도로로'에도 나타난다. 이런 장면이 전형적인 예로 이것을 보면 테즈카가 미즈키의 '게게게의 키타로'에게서 얻어온 것이 단지 요괴 소재 뿐만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거기에 이런 장면을 보면 미즈키의 전매 특허라고 할 수 있는 점묘기법도 실험적으로 받아들인 걸 알 수 있다.

 여기에 시라토 산페이의 영향도 군데군데 보이는데 나츠메 후사노스케가 지적했듯이 이런 장면을 통해 테즈카가 시라토 산페이의 유혈 표현을 흡수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원래 테즈카는 아동만화로 데뷔했고 활약했기 때문에 딱히 유혈 표현을 의식하지 않았고 덕분에 그리 잘 그리는 편은 아니었다. '신센구미'의 마지막 결투 장면을 봐도 피의 표현은 대단히 어색하다. 상대적으로 극화는 대상연령이 높았기 때문에 유혈 표현을 많이 연구하는 편이어서 피의 표현이 상대적으로 자연스러웠기에 테즈카는 이것을 흡수했다. 뿐만 아니라 효과적으로 부각된 것은 아니지만 계급 갈등이 드러나 있다는 것과 일부 요괴의 행패가 경제적인 착취(예를 들어 '금동자의 권'이나 '사발배의 권')라는 것도 시라토 산페이의 영향을 느끼게 한다.-여담이지만 만약 시라토 산페이가 '도로로'의 마지막 회를 그렸다면 햣키마루와 도로로의 이별이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사무라이인 햣키마루와 백성인 도로로가 헤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테니...-

 이렇게 나츠메 후사노스케는 '도로로'에 나타난 극화적 특성을 언급하면서 테즈카가 부활할 수 있었던 이유로 극화의 기법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것을 들고 있다. 하지만 '도로로'란 작품 자체에 대해선 그다지 호의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진 않다. 과도기적인 특성이 너무 전면에 드러나 통일성을 해치고 있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그런 과도기적인 특징이 '도로로'란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 되고 있으니 그야말로 아이러니컬하다. 전기 테즈카의 생명력과 후기 테즈카의 진지함이 어울려(그것이 비록 통일적이지는 못하더라도)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는 것이다.

 전기 테즈카의 매력이라고 한다면 캐릭터들에게 애니메이션적인 생명력이 충만한 것을 들 수 있다. '정글대제'나 '철완 아톰'을 봐도 알 수 있듯이 테즈카의 캐릭터에겐 어딘가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생명력이 있다. 이것은 테즈카의 뿌리가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있기 때문인데 항상 움직임을 전제로 하고 있는 듯한 활기가 캐릭터에게 가득차있다. 이런 특성은 아쉽게도 후기 테즈카로 넘어오면서 사라지게 되는데 극화적인 리얼한 세계에는 이런 캐릭터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블랙잭'에 등장하는 공전절후의 큐트 캐릭터 피노코에게도 이런 애니메이션적 생명력은 없다. 

 도로로는 애니메이션적 생명력이 충만한 테즈카 캐릭터 계보의 마지막에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에 비하여 햣키마루는 극화적 특성이 강해진 후기 테즈카 캐릭터의 선구적 위치에 서있다(햣키마루의 어두운 과거와 위악적 성격은 후에 블랙잭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보면 '도로로'란 작품은 테즈카의 애니메이션적(전기) 히어로와 극화적(후기) 히어로가 함께 콤비를 이루는 의미심장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두 명의 테즈카의 모험인 것이다. '도로로'의 이야기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은 햣키마루지만 작품을 연재하고 있던 당시의 테즈카에게 진정한 '테즈카적 히어로'는 '애니메이션적 생명력이 가득한' '남장여자'인 도로로였으리라. 작품의 제목을 '햣키마루'가 아니라 '도로로'라 붙힌 것이 테즈카의 마지막 고집이 아니었을까. 마지막 장면에서 도로로와 햣키마루가 헤어지는 것은 전기 테즈카와 후기 테즈카의 결별을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도로로'는 더 이상 '블랙잭'의 전작도,  '환상의 작품'도 아니다. 테즈카 작품 중 '가장 뛰어난' 작품군엔 들어가지 못할 수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임엔 틀림없다. '도로로'뿐만 아니라 다른 묻혀진 멋진 작품들도 발굴되기를 기대한다.

-오랜만에 같잖은 글 쓰려니까 글이 꼬이는군요.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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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dcdc 2007/07/10 18:18 # 답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도로로와 햣키마루에 대한 해석이 참 흥미진진하군요 +_+ [도로로]가 그렇게 매력적으로 읽혔던 것이 그 경계의 매력이 아니었나,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잠본이 2007/07/10 22:22 # 답글

    역시 좋은 작품은 그 진가를 알아보는 눈이 있어야 빛을 보는 법...
  • zoddd 2007/07/10 22:57 # 삭제 답글

    멋진 글이네요. 애매했던 것들이 명쾌히 정리되는 느낌입니다.
    더불어, 미즈키 시게루와의 비교는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하네요.
  • imjohnny 2007/07/10 23:20 # 답글

    와, 이런 글을 쓰실 수 있다니 대단하시네요 +_+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 대산초어 2007/07/11 00:24 # 답글

    dcdc// 그 경계적 매력이 양날의 검이었지 싶습니다. 지금 기준에서야 개성작이지만 당시엔 좀 혼란스런 작품이었겠지요.
    잠본이// 다행히 요즘 테즈카의 슬럼프기간에 나왔던 작품들이 재평가받고 있더군요. 심지어 '알라바스타'까지 파내는 물건너의 팬들을 보며 왠지 제 기분이 다 좋았습니다.
    zoddd// 저야 테즈카를 미즈키보다 더 좋아하긴 하지만 미즈키 작품의 그 안정감이랄까 그런 것도 참 좋더군요. 언제 봐도 부담이 없다고 할까...
    imjohnny// 졸역질만 하다가 오랜만에 글이라고 끄적댔는데 점 쩍팔리는 게 나와서 당황스럽네요. 귀엽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 狂爆亂舞 2007/07/11 01:41 # 삭제 답글

    우홋! 좋은 글입니다.
  • 아토무 2007/07/11 20:41 # 삭제 답글

    여러모로 도로로는 의미있는 작품...
    요즘 소년만화들의 뼈대가 되었다고 생각되어집니다...
  • 光合成 2007/07/12 11:47 # 답글

    오히려 불완전한 부분. 그 과도기적 부분이야 말로 사람들을 자극하는게 아닐까.
    "이런 식으로 이걸 이용하면..."식으로 말이지.
  • 대산초어 2007/07/13 00:03 # 답글

    狂爆亂舞// 다시 보니 완전 엉망이네요ㅠ.ㅠ 문장력이 없다보니 글이 좀만 길어져도 개판5분전이 됩니다.
    아토무// 묘하게 소년만화보다는 그 위의 연령층에 영향을 더 많이 끼친 것 같습니다.
    光合成// 아마도 그렇겠지. 빠진 부분이 많을수록 채워널 부분이 많아 보일테니...
  • 사노 2007/07/15 21:09 # 답글

    잘 읽었습니다. 어떤 평론가는 도로로가 블랙잭의 전신이라는 데 많은 점수를 줬지만 전 도로로도 도로로대로 좋아하거든요.

    그러고보니 간츠의 오쿠 히로야가 도로로 팬이더군요.
  • 대산초어 2007/07/15 22:43 # 답글

    사노// 저도 그 이야길 들은 적이 있어서 놀랐습니다. 묘하게 야시시한 작가들의 뿌리가 테즈카인 경우가 많아서 좀 복잡한 심경입니다...
  • 나그네 2008/07/19 12:11 # 삭제 답글

    저기 죄송하지만.... 이런장면 들에서 보니깐 도로로의 번역판이 있는것 같은데...

    어디서 볼 수 있는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어요ㅡㅜ
  • 대산초어 2008/07/20 13:55 #

    예전에 건드렸었는데 학산에서 정식 한국어판이 나와서 비공개로 돌렸습니다.
    정식 한국어판을 구입해서 보시면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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