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간만에 올리는군요.
이번 분량은 거의 '노란 책'의 해설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61인가 74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오토모 ‘노란 책’은 양 페이지, 혹은 3-4 페이지를 원 신 느낌으로 에피소드를 만든 뒤에 그걸 이어서 만든 것 같은 느낌인데, 실제론 어때?
타카노 페이지 끝에서 딱 구별을 짓고, 그 다음에 다른 이야기를 그리는 식으로 했지요. 특히 전반에 그렇게 했어요. 왼 페이지 맨 왼쪽 컷에 칸이 겹치게 그려놓았는데요, 이건 소설책의 단락 같은 느낌을 내고 싶어서 그랬지요. 소설은 3 줄 정도마다 여백이 있잖아요. 그런 느낌.
오토모 예전에 ‘양철북’이란 영화를 봤을 때, 단락이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고, 이렇게 찍을 수도 있구나 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나네.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는 게 아니라 예를 들어 어머니가 뱀장어를 먹는 신 같은 짧은 신을 이어붙여서 하나의 시퀀스를 만들고 그걸 쌓아가면서 만들어가는 느낌. 직선적인 흐름이 아니라 여러 방향에서 찍은 것들을 병렬적으로 놓아가며 전체적인 주위의 상황을 그려가는 거지. 주인공을 찍고 있나 싶으면 그걸 보고 있는 다른 소년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고, 그걸 보면서 언젠가는 나도 저렇게 찍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그거랑 비슷한 느낌이 들어.
타카노 아하, 그렇군요. 저도 봤어요, ‘양철북’. 확실히, 독자들이 이 분위기에 익숙해지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해서 스토리 진행이 느려도 상관없다, 기승전결이라고 치면 기가 참 길구나하고 생각했지요.
오토모 그거랑 갑자기 자신의 공상세계가 난입해 들어오는 부분이 있잖아? 그래서 구성이 상당히 복잡하지. 익숙해지는 데 어떤 독자든 시간이 조금 걸릴 거라고 생각해.
타카노 그 공상에 들어가는 부분을 잘 그릴 수 있다면 성공이겠다 싶었지요(웃음). 어쨌든 수수한 생활이 수수한 채로 이어지고 있다는 걸 20 페이지 그리고 나서가 아니면 티보가의 자크를 등장시킬 수 없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렸어요. 까딱했다간 호러물이 되겠구나 하면서.
오토모 이건 정말 대단히 스펙터클해. 이런 수수한 이야긴데(웃음).
타카노 그래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기쁘네요.
오토모 그렇고 말고(웃음). 읽는 사람에게 어느 정도 보는 법을 강요한다고 할까, “이런 식으로 봐줘요!”하는 식으로 그려져 있으니.

타카노 그리고 또 고생했던 게, 눈길 신이었어요. 눈 속을 혼자 행진하는 장면인데 눈보라를 제대로 그릴 수 있을지 없을지, 그걸 제대로 그릴 수 없다면 몽땅 꽝인데 하고 생각했지요. 하늘을 먹으로 검게 칠할까 스크린 톤 74번을 쓸까 고민해서, 그게 걱정거리였죠.
오토모 그 눈길 신은 참 신기한 좋은 신이었어.
타카노 센다이엔 눈이 내리나요?
오토모 내리지.
타카노 눈이 내리면 밤이 환하잖아요. 그래서 그 2 페이지는 일찍 완성시켰어요. 이 페이지의 명암을 기준으로 다른 페이지의 명암을 결정하면 되는 거지요. 거기와 비교해서 집안의 밝기도 61번으로 할까, 74번으로 할까 결정했어요. 항상 61이랑 74밖에 생각 안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웃음).
오토모 난 요즘 스크린 톤을 안 쓰니까 74번이 뭔지 모르겠어(웃음). 이 44 페이지 대단한데?

타카노 그 신은 좀 치사했죠. 대놓고 칭찬해달라고 그린 것 같아서(웃음).
오토모 이런 시선 전환이 정말 스펙타클해. 잘 생각해서 보지 않으면 이해가 잘 안가고(웃음). 오른쪽 아래 컷의 주인공이 확 다가온 다음에 창문에 반사된 구도로 이어가고 있잖아? 정말 눈속임 같은 움직임이 많다니까.
타카노 이걸 그린 뒤에 쿠로다 이오의 만화를 읽었는데, 한 컷을 보면 잘 이해가 안 가는데 세 컷을 이어서 보면 의미를 알 수 있게 되어 있어서 이렇게 그릴 수도 있구나 하고 생각했지요. 어떤 컷이든 솔로 먹칠한 것처럼 보이는데, 더해서 보면 “아, 까마귀가 날고 있구나” 하고 알게 되어있어요. 잡지 사이즈란 게 있잖아요? 가로 18 센티. 그거 의미가 있는 거예요. 인간의 눈은 폭 18 센티, 만화 3컷 분을 한꺼번에 시계에 넣고 읽어가는 거예요, 분명.
오토모 항상 생각하는데 앵글이 참신해(웃음). 엄청 심하게 변화하지. 오즈 야스지로는 로우 앵글 하나인데 말이야. 타카노의 앵글은 카메라가 이쪽저쪽 왔다갔다하니. 대체 어떻게 그런 신기한 앵글이 나오는지 한 번 물어보려고 했었는데, 예를 들어 32페이지는 어떻게 이렇게 된 거야?

타카노 네? 평범하잖아요(웃음).
오토모 신기해(웃음). 5컷째의 아무 얼굴도 잡지 않은 앵글 같은 거.
타카노 딱히 놀랄만한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거기 그릴 때엔 별로 고생하지도 않아서 기억도 안나요.
오토모 아냐, 역시 얼굴이 없고, 표정을 알 수 없는데 대사만 있어서 뭔가가 움직인다는 것은 신기한 거야.
타카노 이 컷은 다다미를 그리고 싶어서 그린 컷이에요. 볕에 그을린 다다미요. 이번 작품에선 인물보다 정물을 그리고 싶었는지도 몰라요. 지린내가 나는 요 같은 거.
오토모 그리고 38 페이지도 대단해.

타카노 그건 좀 어색하죠. 잠옷에 가려서 어머니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컷 말이죠? 이 컷에선 잠옷의 화려한 꽃무늬를 봐줬으면 했어요.
오토모 그래서 면적을 차지하고 있었군(웃음).
타카노 그렇게 신기한가요(웃음)? 이번 작품에선 처음부터 끝까지 의식적으로 인물의 얼굴은 가능한한 명확하게 그리지 않으려고 했어요. 얼굴을 귀엽게 그리면 독자는 거기에 정신이 팔려서 다른 곳을 보지 않게 되니까, 눈이랑 코만 달렸으면 됐지, 심하게 말하면 뒤통수에 톤만 붙여도 되겠다 싶을 정도였어요. 그렇게 해야 독자가 팔다리의 움직임을 의식하게 될 거라 생각했거든요.
오토모 그것도 이상한 게, 원래 만화는 귀여운 여자랑 멋진 남자의 얼굴을 그릴 수 있으면 그것만으로 페이지를 때울 수가 있거든. 그런 걸 전혀 그리지 않고 오히려 거꾸로 가려고 하고 있는데 그건 정말 보통 일이 아니지(웃음). 읽다 보면 어느 곳도 대충 그리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어.
타카노 요즘엔 다 얼굴을 예쁘게 그리니까요.
오토모 나도 그게 재미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타카노 그리고 검정과 하양이 있으면 사람은 검정 쪽에 주의를 기울이잖아요. 스스로 해설하는 꼴인데(웃음), 30 페이지 상단 3컷은 꽤 공을 들였어요. 자크가 나와서 현실에서 멀어지는 신이지요. 우선 첫 번째 컷에서 시선이 가는 곳은 앞치마 사과무늬 검은 부분이지요. 다음 두 번째 컷에선 식당 입구의 검은 천에 시선이 가고, 세 번째도 마찬가지예요. 그러니까 두 번째 컷에서 천에 눈이 들어왔을 때, 좀 있다 이게 움직입니다, 여기로 누군가가 들어올 겁니다, 하고 신호가 가는 것이죠. 거기다 인물의 높이를 바꿔줌으로써 둥실 지면이 뜨는 어지러운 느낌이 나죠.
오토모 계산해서 시선을 유도하고 있는 거군(웃음). 그렇군.
타카노 한 가지만 더 말하자면 첫 번째 컷에선 원근법을 일그러뜨렸어요. 왼쪽 자크가 앉아있는 책상하고 오른쪽 안쪽의 다다미 방, 초점이 두 군데 있지요.
오토모 다른 세계를 암시하는 거군.
타카노 그래요. 한 가운데의 미치코가 서있는 곳을 경계로 왼쪽과 오른쪽이 다른 세계인 거죠.
오토모 그렇군…… 역시 어려워(웃음). 분명 나도 만화를 그리면서 자기 안에서 납득시키기 위해서 자기 나름대로 뭔가를 정하고 그러긴 하지만. 이 신은 주인공이 얼른 저쪽으로 가고 싶어서 그것이 저쪽에서 부르러 온 것처럼 느껴지는 걸 그린 거로군. 이 ‘루미’는, 원래 이런 아이가 있었어?
타카노 없었어요. 동생은 있었지만. 터틀넥도 없었지요(웃음).-역주 ‘노란 책’의 4장에 나오는 터틀넥을 한 남자를 말함-
오토모 터틀넥은 좀 붕 뜬 느낌이었지(웃음).
타카노 역시 그랬나요? 스스론 잘 그렸다고 생각했는데(웃음). 역시 남자는 못 그리겠어요. 이건 관찰을 많이 한다고 될 게 아니라니까요. 뭐랄까, 근육이 가르쳐 주지 않는다고 할까요? 예전에 오토모 씨가 자신이 사인한 책에 자기 뒷모습을 그리는 걸 보고 제가 ‘잘 그리시네요’라고 했더니 ‘응, 본 적 없는데도 알 수 있다니까’ 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죠. 그림이란 건 오른팔로 그리는 게 아니지요. 눈으로 그리는 것도 아니지요. 전신의 근육으로 그리는 것이겠죠.
오토모 이 조끼 무늬 같은 건 잘도 기억하고 있군. 이런 건 실제로 입었기 때문에?
타카노 입었죠.
오토모 분명 예전에는 수편기로 뭔가를 짜고 그랬지.
타카노 하루카와 마스미가 수편기를 다루는 영화가 있었지요?
오토모 ‘붉은 살의’(이마무라 쇼헤이).
타카노 이번 작품에서 수편기를 그리기에 그 영화를 다시 한 번 봤어요. 디테일을 까먹었거든요.
오토모 타카노는 수편기로 뭘 짜고 그러지 않았어?
타카노 전 안 했지만 어머니가 했고, 숙모가 열심히 일감을 날라주고 그랬어요. 그리고 이 만화를 그리기 위해서 봤던 게 가와시마 유조의 ‘난렴’이었어요.
오토모 그건 또 왜(웃음)?
타카노 스토리랑 별 상관없는 정말 사소한 신인데 15살 정도 되는 소년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 램프를 닦는 에피소드가 있어요. 저도 램프를 닦아본 적은 없지만 왠지 모르게 그 느낌을 알 것 같더라구요. 램프의 기름 냄새, 불의 냄새, 그런 걸 한 적도 없는데 알겠는 거예요. 그래서 호리고타츠-역주: 방바닥을 네모나게 파고 화로를 묻은 것-를 그려도 되겠다 싶었어요.
오토모 그러고 보니 우리 집에도 호리고타츠가 있었어.
타카노 조개탄, 연탄 같은 걸로 땠죠. 불이나 물은 시대를 뛰어넘어도 똑 같은 감각으로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어요. 비, 눈, 진눈깨비 이런 것도 마구 그렸죠.

오토모 이 만종 컷은 어떻게 된 거야? 갑자기 이런 컷을 그려도 괜찮은 거야? 이런 적도 있었어(웃음)?
타카노 있었어요. 그건 유럽을 동경하는 마음이 만든 (망상) 테크닉이지요.
오토모 노동자가 아니라?
타카노 네. 어느 쪽이냐면 유럽에 가고 싶은, 하기오 모토의 세계를 동경하는 기분이랄까요(웃음).
to be continued
이번 분량은 거의 '노란 책'의 해설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61인가 74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오토모 ‘노란 책’은 양 페이지, 혹은 3-4 페이지를 원 신 느낌으로 에피소드를 만든 뒤에 그걸 이어서 만든 것 같은 느낌인데, 실제론 어때?
타카노 페이지 끝에서 딱 구별을 짓고, 그 다음에 다른 이야기를 그리는 식으로 했지요. 특히 전반에 그렇게 했어요. 왼 페이지 맨 왼쪽 컷에 칸이 겹치게 그려놓았는데요, 이건 소설책의 단락 같은 느낌을 내고 싶어서 그랬지요. 소설은 3 줄 정도마다 여백이 있잖아요. 그런 느낌.
오토모 예전에 ‘양철북’이란 영화를 봤을 때, 단락이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고, 이렇게 찍을 수도 있구나 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나네.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는 게 아니라 예를 들어 어머니가 뱀장어를 먹는 신 같은 짧은 신을 이어붙여서 하나의 시퀀스를 만들고 그걸 쌓아가면서 만들어가는 느낌. 직선적인 흐름이 아니라 여러 방향에서 찍은 것들을 병렬적으로 놓아가며 전체적인 주위의 상황을 그려가는 거지. 주인공을 찍고 있나 싶으면 그걸 보고 있는 다른 소년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고, 그걸 보면서 언젠가는 나도 저렇게 찍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그거랑 비슷한 느낌이 들어.
타카노 아하, 그렇군요. 저도 봤어요, ‘양철북’. 확실히, 독자들이 이 분위기에 익숙해지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해서 스토리 진행이 느려도 상관없다, 기승전결이라고 치면 기가 참 길구나하고 생각했지요.
오토모 그거랑 갑자기 자신의 공상세계가 난입해 들어오는 부분이 있잖아? 그래서 구성이 상당히 복잡하지. 익숙해지는 데 어떤 독자든 시간이 조금 걸릴 거라고 생각해.
타카노 그 공상에 들어가는 부분을 잘 그릴 수 있다면 성공이겠다 싶었지요(웃음). 어쨌든 수수한 생활이 수수한 채로 이어지고 있다는 걸 20 페이지 그리고 나서가 아니면 티보가의 자크를 등장시킬 수 없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렸어요. 까딱했다간 호러물이 되겠구나 하면서.
오토모 이건 정말 대단히 스펙터클해. 이런 수수한 이야긴데(웃음).
타카노 그래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기쁘네요.
오토모 그렇고 말고(웃음). 읽는 사람에게 어느 정도 보는 법을 강요한다고 할까, “이런 식으로 봐줘요!”하는 식으로 그려져 있으니.

타카노 그리고 또 고생했던 게, 눈길 신이었어요. 눈 속을 혼자 행진하는 장면인데 눈보라를 제대로 그릴 수 있을지 없을지, 그걸 제대로 그릴 수 없다면 몽땅 꽝인데 하고 생각했지요. 하늘을 먹으로 검게 칠할까 스크린 톤 74번을 쓸까 고민해서, 그게 걱정거리였죠.
오토모 그 눈길 신은 참 신기한 좋은 신이었어.
타카노 센다이엔 눈이 내리나요?
오토모 내리지.
타카노 눈이 내리면 밤이 환하잖아요. 그래서 그 2 페이지는 일찍 완성시켰어요. 이 페이지의 명암을 기준으로 다른 페이지의 명암을 결정하면 되는 거지요. 거기와 비교해서 집안의 밝기도 61번으로 할까, 74번으로 할까 결정했어요. 항상 61이랑 74밖에 생각 안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웃음).
오토모 난 요즘 스크린 톤을 안 쓰니까 74번이 뭔지 모르겠어(웃음). 이 44 페이지 대단한데?

타카노 그 신은 좀 치사했죠. 대놓고 칭찬해달라고 그린 것 같아서(웃음).
오토모 이런 시선 전환이 정말 스펙타클해. 잘 생각해서 보지 않으면 이해가 잘 안가고(웃음). 오른쪽 아래 컷의 주인공이 확 다가온 다음에 창문에 반사된 구도로 이어가고 있잖아? 정말 눈속임 같은 움직임이 많다니까.
타카노 이걸 그린 뒤에 쿠로다 이오의 만화를 읽었는데, 한 컷을 보면 잘 이해가 안 가는데 세 컷을 이어서 보면 의미를 알 수 있게 되어 있어서 이렇게 그릴 수도 있구나 하고 생각했지요. 어떤 컷이든 솔로 먹칠한 것처럼 보이는데, 더해서 보면 “아, 까마귀가 날고 있구나” 하고 알게 되어있어요. 잡지 사이즈란 게 있잖아요? 가로 18 센티. 그거 의미가 있는 거예요. 인간의 눈은 폭 18 센티, 만화 3컷 분을 한꺼번에 시계에 넣고 읽어가는 거예요, 분명.
오토모 항상 생각하는데 앵글이 참신해(웃음). 엄청 심하게 변화하지. 오즈 야스지로는 로우 앵글 하나인데 말이야. 타카노의 앵글은 카메라가 이쪽저쪽 왔다갔다하니. 대체 어떻게 그런 신기한 앵글이 나오는지 한 번 물어보려고 했었는데, 예를 들어 32페이지는 어떻게 이렇게 된 거야?

타카노 네? 평범하잖아요(웃음).
오토모 신기해(웃음). 5컷째의 아무 얼굴도 잡지 않은 앵글 같은 거.
타카노 딱히 놀랄만한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거기 그릴 때엔 별로 고생하지도 않아서 기억도 안나요.
오토모 아냐, 역시 얼굴이 없고, 표정을 알 수 없는데 대사만 있어서 뭔가가 움직인다는 것은 신기한 거야.
타카노 이 컷은 다다미를 그리고 싶어서 그린 컷이에요. 볕에 그을린 다다미요. 이번 작품에선 인물보다 정물을 그리고 싶었는지도 몰라요. 지린내가 나는 요 같은 거.
오토모 그리고 38 페이지도 대단해.

타카노 그건 좀 어색하죠. 잠옷에 가려서 어머니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컷 말이죠? 이 컷에선 잠옷의 화려한 꽃무늬를 봐줬으면 했어요.
오토모 그래서 면적을 차지하고 있었군(웃음).
타카노 그렇게 신기한가요(웃음)? 이번 작품에선 처음부터 끝까지 의식적으로 인물의 얼굴은 가능한한 명확하게 그리지 않으려고 했어요. 얼굴을 귀엽게 그리면 독자는 거기에 정신이 팔려서 다른 곳을 보지 않게 되니까, 눈이랑 코만 달렸으면 됐지, 심하게 말하면 뒤통수에 톤만 붙여도 되겠다 싶을 정도였어요. 그렇게 해야 독자가 팔다리의 움직임을 의식하게 될 거라 생각했거든요.
오토모 그것도 이상한 게, 원래 만화는 귀여운 여자랑 멋진 남자의 얼굴을 그릴 수 있으면 그것만으로 페이지를 때울 수가 있거든. 그런 걸 전혀 그리지 않고 오히려 거꾸로 가려고 하고 있는데 그건 정말 보통 일이 아니지(웃음). 읽다 보면 어느 곳도 대충 그리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어.
타카노 요즘엔 다 얼굴을 예쁘게 그리니까요.
오토모 나도 그게 재미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타카노 그리고 검정과 하양이 있으면 사람은 검정 쪽에 주의를 기울이잖아요. 스스로 해설하는 꼴인데(웃음), 30 페이지 상단 3컷은 꽤 공을 들였어요. 자크가 나와서 현실에서 멀어지는 신이지요. 우선 첫 번째 컷에서 시선이 가는 곳은 앞치마 사과무늬 검은 부분이지요. 다음 두 번째 컷에선 식당 입구의 검은 천에 시선이 가고, 세 번째도 마찬가지예요. 그러니까 두 번째 컷에서 천에 눈이 들어왔을 때, 좀 있다 이게 움직입니다, 여기로 누군가가 들어올 겁니다, 하고 신호가 가는 것이죠. 거기다 인물의 높이를 바꿔줌으로써 둥실 지면이 뜨는 어지러운 느낌이 나죠.
오토모 계산해서 시선을 유도하고 있는 거군(웃음). 그렇군.
타카노 한 가지만 더 말하자면 첫 번째 컷에선 원근법을 일그러뜨렸어요. 왼쪽 자크가 앉아있는 책상하고 오른쪽 안쪽의 다다미 방, 초점이 두 군데 있지요.
오토모 다른 세계를 암시하는 거군.
타카노 그래요. 한 가운데의 미치코가 서있는 곳을 경계로 왼쪽과 오른쪽이 다른 세계인 거죠.
오토모 그렇군…… 역시 어려워(웃음). 분명 나도 만화를 그리면서 자기 안에서 납득시키기 위해서 자기 나름대로 뭔가를 정하고 그러긴 하지만. 이 신은 주인공이 얼른 저쪽으로 가고 싶어서 그것이 저쪽에서 부르러 온 것처럼 느껴지는 걸 그린 거로군. 이 ‘루미’는, 원래 이런 아이가 있었어?
타카노 없었어요. 동생은 있었지만. 터틀넥도 없었지요(웃음).-역주 ‘노란 책’의 4장에 나오는 터틀넥을 한 남자를 말함-
오토모 터틀넥은 좀 붕 뜬 느낌이었지(웃음).
타카노 역시 그랬나요? 스스론 잘 그렸다고 생각했는데(웃음). 역시 남자는 못 그리겠어요. 이건 관찰을 많이 한다고 될 게 아니라니까요. 뭐랄까, 근육이 가르쳐 주지 않는다고 할까요? 예전에 오토모 씨가 자신이 사인한 책에 자기 뒷모습을 그리는 걸 보고 제가 ‘잘 그리시네요’라고 했더니 ‘응, 본 적 없는데도 알 수 있다니까’ 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죠. 그림이란 건 오른팔로 그리는 게 아니지요. 눈으로 그리는 것도 아니지요. 전신의 근육으로 그리는 것이겠죠.
오토모 이 조끼 무늬 같은 건 잘도 기억하고 있군. 이런 건 실제로 입었기 때문에?
타카노 입었죠.
오토모 분명 예전에는 수편기로 뭔가를 짜고 그랬지.
타카노 하루카와 마스미가 수편기를 다루는 영화가 있었지요?
오토모 ‘붉은 살의’(이마무라 쇼헤이).
타카노 이번 작품에서 수편기를 그리기에 그 영화를 다시 한 번 봤어요. 디테일을 까먹었거든요.
오토모 타카노는 수편기로 뭘 짜고 그러지 않았어?
타카노 전 안 했지만 어머니가 했고, 숙모가 열심히 일감을 날라주고 그랬어요. 그리고 이 만화를 그리기 위해서 봤던 게 가와시마 유조의 ‘난렴’이었어요.
오토모 그건 또 왜(웃음)?
타카노 스토리랑 별 상관없는 정말 사소한 신인데 15살 정도 되는 소년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 램프를 닦는 에피소드가 있어요. 저도 램프를 닦아본 적은 없지만 왠지 모르게 그 느낌을 알 것 같더라구요. 램프의 기름 냄새, 불의 냄새, 그런 걸 한 적도 없는데 알겠는 거예요. 그래서 호리고타츠-역주: 방바닥을 네모나게 파고 화로를 묻은 것-를 그려도 되겠다 싶었어요.
오토모 그러고 보니 우리 집에도 호리고타츠가 있었어.
타카노 조개탄, 연탄 같은 걸로 땠죠. 불이나 물은 시대를 뛰어넘어도 똑 같은 감각으로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어요. 비, 눈, 진눈깨비 이런 것도 마구 그렸죠.

오토모 이 만종 컷은 어떻게 된 거야? 갑자기 이런 컷을 그려도 괜찮은 거야? 이런 적도 있었어(웃음)?
타카노 있었어요. 그건 유럽을 동경하는 마음이 만든 (망상) 테크닉이지요.
오토모 노동자가 아니라?
타카노 네. 어느 쪽이냐면 유럽에 가고 싶은, 하기오 모토의 세계를 동경하는 기분이랄까요(웃음).
to be continued




덧글
milln 2008/01/16 01:47 # 답글
으와.영롱 2008/01/16 03:25 # 답글
으와.....타카노씨너무좋아요..샤르 2008/01/16 10:58 # 답글
정말 비범하네요.. 잘 봤습니다.(마지막 줄 웬지 공감.;)
시바우치 2008/01/16 11:08 # 삭제 답글
까딱하면 공포...눈코입만 달려도 되요...라 역시 강하심;그런데 캐릭터의 미형도에 대한 두 분의 의견은 좀 공감가는 데가 있습니다. 절대 제가 미형을 못 그려서가 아니라(...)
mirage 2008/01/16 11:14 # 답글
아... 노란책 사놓고 힘들게 보고 있었는데 훌륭한 가이드 라인이 될 것 같네요. 역시 타카노씨 존경하게 됩니다. 너무 멋져요.뎡야핑 2008/01/16 12:43 # 삭제 답글
아...진짜 반성 ㅜㅜ 저 티보가 연재할 때 안 봤는데ㅜㅜㅜㅜㅜㅜㅜ만화를 읽는 자세에 대해 많이 배우네요ㅜㅜ 항상 그리는 사람의 반의 반만큼의 정성으로라도 읽자...고 생각은 하는데...;ㅅ; 근데 원근법이 일그러진 건 모르겠따-_-
솔 2008/01/16 19:30 # 삭제 답글
(저런 못보셨다니 뎡야핑님...보내달라고 졸라보세요)역시 작품은 첨엔 내 맘대로 해석하면서 천천히 읽고, 그담에 작가의 말을 들으면 감상의 폭이 달라지네요.
<봄 부두에서...>는 아직 끝까진 본건 아니지만 정말 예쁜 작품임에도, 굳이 <노란책>에 비하자면 이야기도 그림도 대단히 평면적이라서, 새삼 타카노씨는 시간과 함께 많이 변화하는 정말 노력하는 작가라고 감탄하게 됐어요.
알음이무 2008/01/16 22:33 # 삭제 답글
정말 굉장하군요... 역시 대단한 작품엔 대단한 정신이... 하아...머리핀 2008/01/16 23:37 # 삭제 답글
괴물이시네요..;; 이렇게 읽어 달라- 라고 단호하게 그려낼수 있다는 점이;;또 그렇게 읽힌다는게 더더욱;
시선유도는 깜짝 놀랏습니다; 만화를그리는 사람으로서 배울점이 참 많네요 ㅎ
J군 2008/01/17 00:06 # 삭제 답글
크으.. 노란책.타카노 씨 작품 중 가장 좋았었어요.
작품.. 그러고보니 죄다 여기에서 본 거네요.
전 사실 안자이 마즈미루를 검색해보다 여기 오게 되었는데,
타카노 후미코 라는 작가를 알게되어 정말 기뻐요. 헤헤.
구아바 2008/01/17 03:10 # 답글
와아... 카메라 및 연출 쪽으로 직종으로 가려고 하는중인데 덕분에 시각 연출 연구에 대한 자극을 받았네요,대산초어 2008/01/17 10:49 # 답글
milln// 급하게 옮기느라 이상한 부분이 많습니다만 너그럽게 봐주시길...영롱// 정말 멋진 작가지요^^.
샤르// 저도 유럽에 가고 싶어요.
시바우치// 잘 그리시지 않습니까^^. 만화에서 파워 인플레이션도 심각하지만 외모 인플레이션도 그에 못지 않은 것 같습니다.
mirage// 저도 이 대담을 보고 '만화 읽는 법'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뎡야핑// 저런... 정말 멋진 작품인데요^^.
솔// 그래서 만화에도 영화처럼 작가 해설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알음이무// 대단한 분이지요...
머리핀// 처음 이 대담을 읽었을 때엔 그 시선 유도 대목에서 무릎을 탁 쳤어요. 정말 괴물...
J군// 그런가요^^?
구아바// 잘 되시길 빕니다.
딩 2008/01/17 13:08 # 삭제 답글
재밌어요!재밌어요! 정말 대단해요. 아아 그런 것이로구나 하는... 설명을 듣고 보니 후미코씨가 더 대단하게 느껴지네요..정말로 그냥 그린 것이 없네요.. 모든 것이 의도되어 있었어요.. 많이 배우고 갑니다.. 아으 좋아요! 헤헤헤
백삼 2008/01/18 23:40 # 삭제 답글
계속 할 힘과 흥미, 용기를 함께 주시는 타카노 후미코 선생님.대산초어 2008/01/19 18:31 # 답글
딩// 참 재미있는 대담이긴 한데 분량이 후덜덜...이라 잘 손이 안 가네요. 뒷분량도 꽤 재미있어요.백삼// 역시 대단한 분!
과객 2008/01/20 05:47 # 삭제 답글
아아, 타카노 후미코의 만화를 처음 봤을 때의 당혹감이 떠오르네요.'이...익숙치 않지만 아름다워!' 같은.^^
대산초어 2008/01/20 22:10 # 답글
과객// 제가 처음 읽은 작품이 요 '노란 책'이었는데 정말 안 읽혀서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습니다. 끝까지 읽으니 정말 새로운 세상이 보이더군요.초록망아지 2008/01/23 22:46 # 삭제 답글
역시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인가요. 둔해서 죄송합니다~ 후미코 여사님ㅠㅠ후미코 님의 작품을 다시 읽으면서 무딘 눈을 갈고 단련하렵니다 +ㅂ+
대산초어 2008/01/24 22:01 # 답글
초록망아지// 단련 성공하시면 제게도 비법을 좀...bang 2008/01/26 04:00 # 삭제 답글
한컷한컷 유심히 본다고 보았지만 저 흔들리는 검은천을 못보았는걸요.만들어진 시간만큼 더더 만지고 보아야 제대로 볼수있을까요.대산초어 2008/01/26 11:27 # 답글
bang// 덕분에 읽을 때마다 새로운 발견이 있으니 즐겁죠.무한 2008/02/18 09:05 # 삭제 답글
푸하하하하!!! 만종의 재해석 ㅋㅋ 당황했습니다 ㅋㅋ 재치있군요!!대산초어 2008/02/19 10:30 # 답글
무한// 재치가 넘치시는 분이죠^^. 본격적으로 4컷을 그려도 재미있는 만화가 나왔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