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4월 29일
슈르와 리얼 사이에-에비스 요시카즈
일본어에 슈르(シュール)란 말이 있다. 이 말은 말을 짧게 만드는 것에 영특한 감각을 지닌 일본인들이 쉬르리얼리즘(초현실주의)에서 앞의 쉬르만을 따와서 자기식대로 읽어 만든 말이다. 원래는 원뜻 그대로 '초현실적'이란 의미였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외연이 확장되어 '부조리' '넌센스'의 의미도 함께 지니게 되었다. 난 이 '슈르'란 말을 들을 때마다 에비스 요시카즈의 만화를 떠올린다. 에비스 요시카즈의 만화는 초현실적이고, 부조리하며, 넌센스 같으니 그야말로 슈르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이렇게 슈르한 에비스 요시카즈의 만화를 실제로 읽다보면 너무나도 익숙하고 현실적으로 느껴진다는 것에 새삼스럽게 놀라게 된다. 왜 이렇게 초현실적이고 부조리하며 넌센스 같은 만화가 때론 현실보다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걸까. 그리고 대체 이런 만화를 그리는 에비스 요시카즈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에비스 요시카즈(蛭子能収)는 1947년 나가사키에서 태어났다. 학생 때의 장래 희망은 디자이너였으나 그 꿈을 이루지는 못하고 고교 졸업후에 간판점에서 일하게 되었다-샐러리맨 교실 제 1강을 떠올려보자-. 그러던 도중에 일에 회의를 느끼고 1970년에 오사카에서 열리던 만국박람회를 보고 오겠다고 거짓말을 하고 무작정 상경했다. 이 에피소드에 대해서 나중에 "그만두고 싶었는데 도저히 사장에게 말할 수가 없었다."고 술회했다-제 2강의 자살한 간판점 직원은 실은 떠나지 못한 그였을지도 모른다-. 도쿄에 도착한 그는 영화감독을 하고 싶었으나 역시 현실의 벽에 부딪쳐 좌절하고 폐지교환, 세일즈맨 등을 하면서 근근히 생활해 나갔다.

그러던 그가 만화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은 스스로 인정하다시피 쓰게 요시하루 때문이었다. 쓰게의 작품을 읽고 그는 쓰게 같은 만화를 그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가 잡지 '가로'에 자신의 만화를 들고 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가 데뷔하던 1973년 당시의 가로는 그때까지 '가로'를 견인했던 시라토 산페이의 '카무이전'의 1부가 완결되고 그에 따라 새로운 재능을 발굴하는 데 혈안이 되어있던 시기였다. 에비스의 데뷔 전후로 하나와 카즈이치. 히사우치 미치오, 안자이 미즈마루 등이 차례차례로 가로 지상에 작품을 발표했다. 이 작가군들의 주요한 특징은 전에 비해 극화적 성격이 줄어있었고 그림면에선 좀 더 일러스트적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에비스는 1973년에 '가로'에 '파칭코'란 단편을 발표하면서 모습을 드러냈는데 이 작품은 현실과 비현실이 기묘하게 얽혀있다는 점에서 후의 에비스의 갈 길을 암시하고 있었던 작품이라고 봐도 좋겠다. '파칭코'는 비루한 현실을 잊고자 파칭코에 가려는 사람이 도중에 백화점의 탈을 쓴 초현실적 미로에서 길을 잃는다는 내용의 단편이었는데 초현실적인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묘한 기시감과 현실감이 느껴진다. 이것이 다른 초현실적 만화가들과 그를 구별짓는 특징이다.
데뷔하고 나서 평탄하게 작가생활을 유지한 것은 아니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70년대 중반에 휴필하면서 샐러리맨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79년에 복귀했는데 80년대 초에 주목을 받으며 '가로'를 이끄는 인기 작가 중 한 사람이 되었다. 인기를 얻게 되면서 '가로'뿐만 아니라 다른 상업지에도 작품을 발표하게 되었고 '가로'를 발행하는 세이린도를 통해 꽤 많은 양의 작품집을 출간하게 되었다. 또한 독특하고 시니컬한 그 자신의 캐릭터가 인기를 얻게 되면서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등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다방면으로 활동영역을 넓히게 되었다. 그 결과로 일러스트레이터, 에세이스트, 배우, 영화감독(!자신의 꿈이었던)이 그의 프로필에 붙게 되었다. 현재도 끊임없이 자신의 다재다능함을 과시하고 있다.

에비스 요시카즈는 작품 속에서 샐러리맨, 도박, 섹스, 폭력 등을 주로 다루고 있는데 그는 이런 매우 현실적인 소재를 유머러스하게 녹여내는 데 탁월한 재주를 가지고 있다. 그가 소재를 유머러스하게 가공하는 데 특히 자주 쓰는 수법은 그것을 초현실적으로 변조하는 것이다. 그는 소재들을 가지고 위악스러운 지옥과 광기어린 악몽을 만들어 낸다. 그런데 놀라우면서도 슬픈 것은 이 변조된 지옥과 악몽이 우리가 사는 현실과 그다지 동떨어있지 않다는 사실에 있다. '샐러리맨 위기일발'의 마지막에 곤도가 뛰어내리는 장면은 그 자체로는 어처구니 없고 우스꽝스럽지만 실제 현실 사회, 조직이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얼마나 가혹한지를 떠올린다면 마냥 웃기지만은 않는다. 이런 블랙 유머가 가능한 것은 아마도 그가 변조 과정에서 경험을 통해 얻은 팔팔한 통찰을 끼워넣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만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다나카들은 그의 자화상임과 동시에 우리들의 초상화다.
에비스 요시카즈는 그의 작품을 통해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계가 실은 슈르한 지옥이라고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그의 이야기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그의 작품은 적어도 그 재미 때문에라도 한 번 정도는 읽을 가치가 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지옥 구경만큼 재미나는 게 그리 흔하겠는가.
죄송합니다. 3주 동안 임시저장 해 놓으면서 살금살금 썼는데 그러다보니 글의 통일성이 아작났네요.
그냥 정보만 봐주세요. 굽신굽신.
에비스 요시카즈 특집도 거의 막바지네요.
대산초어의 에비스 요시카즈 컬렉션 소개를 마지막으로 에비스 요시카즈 특집을 마무리 지으려고 합니다.
4월 안에 끝내고 5월 한 달 동안만 유지한 뒤에 카테고리를 폭파시킬 예정입니다.
단편 졸역한 것도 그 때쯤엔 비공개로 돌릴 생각이에요.
그런데 이렇게 슈르한 에비스 요시카즈의 만화를 실제로 읽다보면 너무나도 익숙하고 현실적으로 느껴진다는 것에 새삼스럽게 놀라게 된다. 왜 이렇게 초현실적이고 부조리하며 넌센스 같은 만화가 때론 현실보다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걸까. 그리고 대체 이런 만화를 그리는 에비스 요시카즈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에비스 요시카즈(蛭子能収)는 1947년 나가사키에서 태어났다. 학생 때의 장래 희망은 디자이너였으나 그 꿈을 이루지는 못하고 고교 졸업후에 간판점에서 일하게 되었다-샐러리맨 교실 제 1강을 떠올려보자-. 그러던 도중에 일에 회의를 느끼고 1970년에 오사카에서 열리던 만국박람회를 보고 오겠다고 거짓말을 하고 무작정 상경했다. 이 에피소드에 대해서 나중에 "그만두고 싶었는데 도저히 사장에게 말할 수가 없었다."고 술회했다-제 2강의 자살한 간판점 직원은 실은 떠나지 못한 그였을지도 모른다-. 도쿄에 도착한 그는 영화감독을 하고 싶었으나 역시 현실의 벽에 부딪쳐 좌절하고 폐지교환, 세일즈맨 등을 하면서 근근히 생활해 나갔다.

그러던 그가 만화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은 스스로 인정하다시피 쓰게 요시하루 때문이었다. 쓰게의 작품을 읽고 그는 쓰게 같은 만화를 그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가 잡지 '가로'에 자신의 만화를 들고 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가 데뷔하던 1973년 당시의 가로는 그때까지 '가로'를 견인했던 시라토 산페이의 '카무이전'의 1부가 완결되고 그에 따라 새로운 재능을 발굴하는 데 혈안이 되어있던 시기였다. 에비스의 데뷔 전후로 하나와 카즈이치. 히사우치 미치오, 안자이 미즈마루 등이 차례차례로 가로 지상에 작품을 발표했다. 이 작가군들의 주요한 특징은 전에 비해 극화적 성격이 줄어있었고 그림면에선 좀 더 일러스트적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에비스는 1973년에 '가로'에 '파칭코'란 단편을 발표하면서 모습을 드러냈는데 이 작품은 현실과 비현실이 기묘하게 얽혀있다는 점에서 후의 에비스의 갈 길을 암시하고 있었던 작품이라고 봐도 좋겠다. '파칭코'는 비루한 현실을 잊고자 파칭코에 가려는 사람이 도중에 백화점의 탈을 쓴 초현실적 미로에서 길을 잃는다는 내용의 단편이었는데 초현실적인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묘한 기시감과 현실감이 느껴진다. 이것이 다른 초현실적 만화가들과 그를 구별짓는 특징이다.
데뷔하고 나서 평탄하게 작가생활을 유지한 것은 아니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70년대 중반에 휴필하면서 샐러리맨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79년에 복귀했는데 80년대 초에 주목을 받으며 '가로'를 이끄는 인기 작가 중 한 사람이 되었다. 인기를 얻게 되면서 '가로'뿐만 아니라 다른 상업지에도 작품을 발표하게 되었고 '가로'를 발행하는 세이린도를 통해 꽤 많은 양의 작품집을 출간하게 되었다. 또한 독특하고 시니컬한 그 자신의 캐릭터가 인기를 얻게 되면서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등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다방면으로 활동영역을 넓히게 되었다. 그 결과로 일러스트레이터, 에세이스트, 배우, 영화감독(!자신의 꿈이었던)이 그의 프로필에 붙게 되었다. 현재도 끊임없이 자신의 다재다능함을 과시하고 있다.

에비스 요시카즈는 작품 속에서 샐러리맨, 도박, 섹스, 폭력 등을 주로 다루고 있는데 그는 이런 매우 현실적인 소재를 유머러스하게 녹여내는 데 탁월한 재주를 가지고 있다. 그가 소재를 유머러스하게 가공하는 데 특히 자주 쓰는 수법은 그것을 초현실적으로 변조하는 것이다. 그는 소재들을 가지고 위악스러운 지옥과 광기어린 악몽을 만들어 낸다. 그런데 놀라우면서도 슬픈 것은 이 변조된 지옥과 악몽이 우리가 사는 현실과 그다지 동떨어있지 않다는 사실에 있다. '샐러리맨 위기일발'의 마지막에 곤도가 뛰어내리는 장면은 그 자체로는 어처구니 없고 우스꽝스럽지만 실제 현실 사회, 조직이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얼마나 가혹한지를 떠올린다면 마냥 웃기지만은 않는다. 이런 블랙 유머가 가능한 것은 아마도 그가 변조 과정에서 경험을 통해 얻은 팔팔한 통찰을 끼워넣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만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다나카들은 그의 자화상임과 동시에 우리들의 초상화다.
에비스 요시카즈는 그의 작품을 통해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계가 실은 슈르한 지옥이라고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그의 이야기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그의 작품은 적어도 그 재미 때문에라도 한 번 정도는 읽을 가치가 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지옥 구경만큼 재미나는 게 그리 흔하겠는가.
죄송합니다. 3주 동안 임시저장 해 놓으면서 살금살금 썼는데 그러다보니 글의 통일성이 아작났네요.
그냥 정보만 봐주세요. 굽신굽신.
에비스 요시카즈 특집도 거의 막바지네요.
대산초어의 에비스 요시카즈 컬렉션 소개를 마지막으로 에비스 요시카즈 특집을 마무리 지으려고 합니다.
4월 안에 끝내고 5월 한 달 동안만 유지한 뒤에 카테고리를 폭파시킬 예정입니다.
단편 졸역한 것도 그 때쯤엔 비공개로 돌릴 생각이에요.
# by | 2008/04/29 01:35 | 만화관련 | 트랙백 | 덧글(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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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 대체 어떤 모습을 상상하셨길래...
샤르// 그럴 리 있겠습니까^^...
과객// 다 경험에서 나온 것이죠.
M// 저도 예전에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등장한 에비스를 보고 놀랐던 적이 있습니다. 이상한 장치 잔뜩 달고 노인체험을 하고 있었죠.
스근스근// 노래 가사에도 자주 나오죠^^.
절정영롱// 대단한 사람이죠.
시바우치// 사모님 얼굴은 본 적이 없네요. 시바우치 님이 그러시니까 급궁금해지네요.
눈의엘프// 기재죠, 기재.
효우도// 제 설명보단 네이버 검색이 더 나을 듯 합니다.
삶이 약간 저하고 비슷한 점(?)도 있는 것 같아 더 친근감이 느껴지네요.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하나 꿈을 이뤄나간 점이 존경스럽군요.
최근 내한한 폴포츠도 그렇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