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터치 (아다치 미츠루, 1981) 1001만화

1970년대에 소녀만화가 재평가를 받게 되자 명민한 작가들은 소녀만화의 요소들을 소년만화에 어떻게 끌어들일 수 없을까 궁리하게 된다. 이러한 모색은 1970년대 후반에 새로운 장르를 낳았는데 이른바 러브코미디 만화의 탄생이다. 이 러브코미디 만화의 주된 특징은 소년만화의 틀(주로 코미디)을 유지하면서도 연애를 강조하거나, 소녀만화식 캐릭터와 코드를 빌려오거나 하는 식이었다. 소년 선데이를 주무대로 활동하던 다카하시 루미코와 아다치 미츠루는 이 러브코미디 만화를 대표하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아다치는 여기에 야구, 수영, 권투 등 소년만화에서 특히 주류라고 할 수 있는 스포츠 만화의 외피를 씌움으로써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터치'는 이런 아다치 미츠루 만화의 완성형이다. 우에스기 타츠야와 카즈야는 쌍둥이 형제지만 얼굴만 비슷하다. 동생 카즈야는 야구면 야구, 공부면 공부 가릴 것 없이 만능으로 주위의 동경의 대상이지만 형인 타츠야는 평범의 극을 달리며 동생과 항상 비교된다. 이 형제는 둘 다 소꿉친구인 아사쿠라 미나미를 좋아한다. 카즈야는 고시엔에 가고 싶다는 그녀의 소원을 이뤄주기 위해서 야구로 지독하게 노력하지만 타츠야는 그런 동생을 응원하면서 경쟁에서 한 발 물러나서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카즈야는 갑작스럽게 죽게 되고 타츠야는 바톤 터치를 하듯 카즈야의 뒤를 이어 야구를 하게 된다.

'터치'에는 연애를 중심으로 한 스토리, 섬세한 심리묘사, 선남선녀 캐릭터 같은 소녀만화의 특성과 스포츠 소재, 평범한 주인공 소년의 성장 같은 소년만화의 특성이 성공적으로 혼합되어 있다. 이 만화처럼 스포츠 만화의 박진감, 연애 만화의 설렘, 성장 만화의 성취감을 동시에 줄 수 있는 만화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아다치 미츠루의 역량 덕분이다. 아다치는 심리묘사를 중시하면서도 소녀만화의 내적독백을 제거함으로써 템포가 늘어지는 것을 막았고, 스포츠를 통해 이야기를 전개해 가면서도 근성을 제거함으로써 애써 표현한 섬세한 심리가 망가지지 않도록 배려했다. 

이 만화엔 명장면이라고 불릴만한 곳이 두 군데 있는데 하나는 스미 공고와의 지역예선 결승전 시합이고, 다른 하나는 우에스기 타츠야가 아사쿠라 미나미에게 고백하는 신이다. 이 두 장면은 이 작품의 하이브리드 성(性)을,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훌륭한지를 보여준다. 

덧) 뉴웨이브가 그렇듯, 러브코미디 만화란 장르도 딱히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는다. 여기에선 소녀만화랑 소년만화의 하이브리드 특성을 가지고 1970년대 후반에 탄생한 장르란 논의를 빌려왔지만 이에 찬성하지 않는 논의도 많으며, 사실 러브코미디 만화란 용어가 적절한지에 대해서도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니까 그냥 참고삼아 보셈, OK?


덧글

  • 샤르 2008/09/17 10:54 # 답글

    제가 처음으로 샀던 원판 만화가 터치였어요. 아직도 매년 다시 보고는 합니다.
    그럴 때마다 아다치는 이 때 이미 정점을 찍었다고 생각하게 되더군요.
    (그 뒤로도 괜찮은 작품을 여럿 내긴 했지만)
  • 대산초어 2008/09/17 12:15 #

    너무 빨리 완성된 것 같습니다. 더 이상 나아갈 여지가 없죠. 아예 갈아버리고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는 한...
  • M 2008/09/17 13:19 # 삭제 답글

    지금까지 네작품이 인디음악같았다면 메인스트림쪽의 첫 작품이네요
    아직 안봤는데 꼭 봐야겠어요
  • 대산초어 2008/09/17 13:53 #

    '토마의 심장'도 나름 메인스트림 아닌가요^^?
  • 가고일 2008/09/17 13:21 # 답글

    사실 아다치의 극초기작들은 거의 순정만화풍 필체를 가지고 있지요.
    연출 기법 자체도 순정만화 스타일을 많이 보이고 있었습니다.
  • 대산초어 2008/09/17 13:45 #

    데뷔작인 '사라진 폭음'은 또 극화 스타일이라고 들었습니다.
    자신에게 맞는 스타일을 찾기 위해서 정말 이것저것 많이 모색한 모양이네요.
  • Geese 2008/09/17 17:58 # 삭제 답글

    개인적으로 터치가 아다치 만화의 정점이라면 러프를 완성이라고 보고싶습니다.
    완숙미라고나 할까, 내용과 컷의 구성에서 터치보다 러프에 한 표 더 주고싶네요. ^^
    러프 애장본을 가지고 있어서 하는 얘기는 절대 아닙니다.
    -_-;;
  • 대산초어 2008/09/17 18:15 #

    오오, 러프 애장본, 오오... 갑자기 지름신이 손짓합니다.
  • 달리 2008/09/18 13:05 # 삭제 답글

    터치...고등학생때 진짜 재미있게 봤던 만화인데 또 보고 싶어지네요.
    말씀하신 명장면 저도 참 인상깊었어요.^^
  • 대산초어 2008/09/19 00:59 #

    대원 구판으로 소장 중인데 원판 완전판으로 갈아치울까 고민중입니다.
    자꾸 봐도 재미있어요.
  • Grard 2008/09/20 12:03 # 답글

    오오...저 아직 안 봤다능...ㅠㅠ 죽기 전에 꼭 봐야...
  • 대산초어 2008/09/21 11:08 #

    아직도 안 보셨다니 실망입니다! 고시엔도 나오는데 말입니다.
  • 야규 2009/02/17 17:23 # 삭제 답글

    저는 삼촌을 통해서 4권을 접하게 됬는데요 전편이랑 후속편을
    보고싶어 죽겠습니다 구할수 있는곳 없을까요?
  • 대산초어 2009/02/19 22:12 #

    요새 애장판도 나왔을걸요. 구하기 엄청 쉽습니다.
  • hansang 2009/03/08 22:37 # 답글

    터치에서 손꼽는 개인적인 명장면은 카즈야가 죽은 뒤 타츠야와 미나미가 각자 슬픔을 표현하던 장면이었습니다. 소리가 들리지 않지만 그 소리를 "보여줄 수 있는" 만화 연출의 모범 답안이라 생각합니다.
  • 대산초어 2009/03/10 08:54 #

    그 장면도 좋았지요^^.
  • fanta 2009/08/26 16:29 # 삭제 답글

    아다치 미츠루의 세계를 간결하지만 명확하게 짚어주셨네요. 정말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아다치 미츠루의 작품들은 어느 시기 이후로는 웬지 모두 한 가지 작품의 변주곡 같다는 느낌이...
  • 대산초어 2009/08/27 23:09 #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키약 2011/01/13 22:36 # 삭제 답글

    정말 아다치 미츠루 작품은 보면 또 보고 싶다는
    매번 결말을 두루뭉실하게 끝내고
    터치, H2, 러프, 카츠, 미유키, 미소라, 일곱 빛갈무지개, 크로스게임 등 넘 잼있다는
    유일하게 좋아하는 작가
  • 대산초어 2011/01/14 11:01 #

    저도 정말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터치' 완전판도 언젠가는 구입하려고 벼르고 있다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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