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가 되고 싶어요(쓰게 요시하루 인터뷰-1) 만화관련

현재 코단샤에서 '쓰게 요시하루 초기걸작선' 문고판이 전 4권으로 간행 중인데 각각의 권마다 쓰게 요시하루의 인터뷰가 실려있기에 한 번 옮겨 봤습니다. 일단 1권에 실린 부분만 옮기고 나머지는 차차 올리겠습니다.

-쓰게 선생님은 1987년에 '별리'라는 작품을 발표하신 이래 계속 휴필하고 계신데요, 그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이 15년간의 휴필은 심각한 가정사정에 휘둘리고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제 자신도 몸이 안 좋아졌습니다만 그 이야기는 지금은 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 15년 동안 창작은 하고 있지 않았지만 여러 일을 하고 있었어요. 예를 들어 치쿠마쇼보에서 전집이 나오거나, 와이즈출판에서 곤도 스스무 씨(타카노 신조)와 '쓰게 요시하루 만화술'을 내거나 제 작품이 영화화되거나 해서 그것과 관련된 잡일이 이것저것 있었고 신쵸샤에서 문고판도 나왔고 말이죠. 그때마다 이야기를 하거나 원고를 갖추거나 해야만 했기에 그런 일은 지금도 계속하고 있으니까요, 그렇게 한가한 건 아니었습니다.

-일을 하시지 않을 때엔 어떻게 지내시나요?

현재는 가사를 돌보는 것만으로 쉴 틈이 없고, 자율신경 때문에 몸도 안 좋고 해서 딱히 일이 없을 때엔 누워서 쉬고 있습니다. TV나 신문은 별로 보지 않고, 영화도 안 봐요. 제 원작이 영화화, TV화된 것도 각각 한 번씩밖에 보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마음에도 시간에도 여유가 없어요.

-만화를 그리시지 않는데 생활 면에서 염려가 되시진 않으셨는지요?

네, 만화를 그리는 것 말고 다른 타개책은 생각해 놨지요. 현실적인 부분으로 중고 카메라, 골동품점, 만화 헌책방. 30년 정도 전의 일입니다만 아내의 제안으로 작은 찻집을 내려고도 했었구요. 하지만 딱히 내키지가 않더군요. 자리를 빌려서 2달 정도 살아봤는데 결국 개점은 하지 않았죠.

-그것 말고 아이디어는 있지만 실행은 하지 않은 것들이 있었나요?

글쎄요, 거룻배 사공이라든가, 묘지기라든가...(웃음). 이상한 것들뿐이었죠. 그리고 출가해서 절에 들어가볼까 하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그러니까 불단을 가진 스님이 아니라 사람 없는 빈 절이 꽤나 많단 말이에요. 그 지방 사람들 입장에선 절을 비워두면 계속 황폐해지니까 누구라도 좋으니 사람이 살아서 거기를 관리하는 쪽이 낫지요. 그래서 그런 곳에 살면서 밭을 만들어서 살아볼까 생각했었죠.
......뭐, 찻집을 낸다 이런 건 힘든 일이지만 이런 일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지고 말이에요. 저는 여행을 좋아해서 여기저기 떠돌았는데 그런 곳에 가면 빈 절에서 거길 지키면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걸 보고 그렇게 살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곤 하지요.

-쓰게 선생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그대로군요. 쓰게 선생님은 항상 그런 생각을 하시나요?

네, 그렇게 함으로써 불안정한 제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상승지향이 있다면 그런 비참한 생활을 생각할래야 할 수 없겠지만 그보다도 더 하강해가는 쪽이 정신적으로 편해진다고 하는 느낌이 직관적으로 있어요.
종교서적 같은 것을 읽어봐도 일체를 버리는 사상이 나오죠. 예수 크리스트만 해도 "나를 따라오려면 모든 것을 버려라"란 말을 했으니까요.

-쓰게 선생님의 만화경력 가운데에서 궤도에 오르기 시작했을 무렵에 갑자기 휙 창작을 그만두신 적이 몇 번 있었죠.

네, 항상 그렇지요(웃음). 제겐 상승하는 것에 대한 공포 같은 것이 있습니다. 제가 상승해서 행복하게 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어울리지 않는다는 그런 느낌이 있어서 행복을 바라면서도 행복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젊은 시절부터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보통 사람에게 있어 예기치 못한 행운으로 '복권에 당첨되었다' '집을 새로 지었다' 같은 것이 있다고 한다면 왠지 모르게 불행의 전조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것이 다른 사람보다 강합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마음 어딘가에서 행복을 바라고 있지요. 그 행복이라는 것도 정말 평범한 사람처럼 지위나 재산을 남기는 그런 방향으로 가지가 않아요.

-지금 생각하시는 '행복'이란 어떤 건가요?

그건 제 마음이 안정되는 겁니다. 어디까지나 그것뿐이에요. 명성이랑 돈은 방해가 될 뿐이니까 노력해서 인기 만화가가 되자 그런 생각도 없어요.

-쓰게 선생님은 만화를 그린다는 것에 대한 애착 같은 걸 지금은 가지고 계시지 않은 건가요?

지금은 이제 뭔가를 그리고 싶다는 마음이 전혀 없어요.
그리고 저는 아무래도 너무 사색적이 되어서 만화 한 우물만 팔 수가 없어요. 때때로 휴필을 하거나 하는 것도 그런 문제 때문인 것 같아요.
최종적으로 전 거지가 되어도 좋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거지가 왠지 마음이 제일 편할 것 같거든요.

-'증발'(역주: '무능한 사람'의 6부)이라는 작품에 세이게츠라는 거지 하이쿠 시인을 그리셨죠.

증발이랑, 거지가 되는 것에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자기부정의 극이라고 하는 점이에요. 자기부정을 함으로써 '무'에 도달할 수 있을까. 저는 무에 도달함으로써 온갖 번뇌와 마음의 동요도 가라앉아서 안정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종교적인 이야기가 되겠는데 자신을 번뇌와 속세에서 단절시켜 불문에 들어가는 것을 출가라고 합니다만 이런 이야기도 있어요. 현실사회에 적응 못하고 출가한다고 합시다. 출가의 세계는 일반세계와 다르지요. 하지만 출가한 곳이 큰 교단이라고 한다면 교단이라는 (다른) 속세가 생기고 말았으니 거기에서 또 도망치는 스님이 꽤나 있었어요. 그러니까 스님이 증발했다 이 말이지요.
증발한 스님은 일반사회에서 빠져 나와 절에 들어가 그 절에서도 빠져 나오는 형태가 되었죠. 그러니까 조직을 부정해서 출가한 사람들이 거기서 또 조직을 만들어 버린다는 모순이 발생하고 만다는 소립니다. 말하자면 그것이 속세와 별로 다르지 않다는 거지요.
전 그런 곳에서도 증발해버린 스님에게 흥미가 솟습니다.
그래서 제 경우도 종교에 관심은 있어도 어디 특정교단에 들어갈 생각은 없어요. 결국엔 어쨌거나 저 개인이니까요.
다시 세이게츠의 이야기를 해보자면 세이게츠에 흥미를 가지게 된 것은 하이쿠 책을 읽고 있는데 '버드나무 집의 세이게츠'라는 거지 하이쿠 시인이 막말에서 메이지 시대에 걸쳐 살았었다는 이야기를 알게 되어서 거지라고 하는 것에 일단 흥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마침 헌책방에 세이게츠에 관한 책이 있었기에 사서 읽기 시작했지요.
그랬더니 우연인데 세이게츠를 알기 전에 그가 살았던 이나다니를 여행했던 적이 있었거든요. 이나다니는 참 외졌다는 느낌을 주는 곳인데 이런 곳에 세이게츠가 거지같은 생활을 하고 있었으니 참 힘들었겠다 그런 상상을 했었습니다만.
그래도 저는 역시 그런 삶의 방식에 동경 같은 걸 느끼거나 합니다.
비슷하게 산 사람으로 료칸에게도 흥미가 있습니다. 료칸도 훌륭한 사무라이였고 그냥 가만히 있으면 우수한 간부후보생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것을 버리고 말았지요. 료칸도 세이게츠도 진정한 의미로 세상을 등진 사람이지요. 그러니까 전 철저하게 세상을 등진 사람에게 흥미를 가지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요즘 쓰게 선생님의 심경은 그런 사람들과 겹치는 부분이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아니면 그러고 싶다는 말씀이던지.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가정을 가지고 말았고 자식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감정 면에서 그런 것에 대한 동경이 계속 있어요. 그러니까 혼자라면 수도원에 들어가 버리고 싶다는 마음도 있지만 아까도 이야기했듯이 그곳도 또 하나의 세상과 다를 바 없으니 어려운 이야기지요. 기독교엔 수도사가 많이 있습니다만 집단으로 사는 수도사도 있지만 혼자 산이나 동굴에 틀어박히는 수도사도 또한 많지요. 전 그런 사람들에게 끌립니다.
초기의 수도사는 원래 그런 형태였습니다. 그것은 예수 크리스트의 고통을 개인적으로 따라서 체험한다는 의미도 있었는데 어느 새 기독교단에 편입되었지요.

-쓰게 선생님은 젊은시절에 여행을 자주 하셨습니다만 그것도 그 세상을 등지는 것에 대한 동경의 일환이었나요?

그럴지도 모릅니다. 젊은 시절에 여행과 온천에 끌렸던 것도 그 초라한 분위기에 빠져 있었던 거지요.
지금은 변했지만 당시(1960년대에 후반에서 70년대 초)는 아직 초라한 움막 같은 여관이 있고 그랬는데 그런 곳에 묵고 있으면 세상에서 낙오해서 비참하게 된 기분을 유사체험 했습니다만 그것을 찾아서 온천에 간 면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즐기는 것이 아니라 그런 기분에 빠지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리고 하나 더 1류 여관에 묵거나 하면 긴장해서 아무 것도 못하겠는데 그런 초라한 여관에 묵으면 마음이 개방됩니다. 그래서 그런 여관을 찾아 돌아다녔지요.
그리고 상인여관에 끌려서 자주 묵었습니다. 그건 세상을 등지는 것과는 조금 다릅니다만.
상인여관이라는 건 행상이 묵는 여관인데 거기에 묵어가는 사람은 놀러 온 사람들이 아닙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그러니까 일상 그 자체라 여관 사람의 응대도 그야말로 일상적인 태도지요. 생활을 그대로 드러낸 분위기인데 그곳에 있으면 일상 속에 제가 확실히 녹아 든 느낌이 들어서 안심이 돼요. 토호쿠 쪽 상인여관에 묵었을 때 다른 사람이 제가 버섯장수인 줄 알았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기뻤지요(웃음).

-이 15년은 정말 긴 휴필기간입니다만 쓰게 선생님은 정말 더 이상 만화를 그릴 생각은 없으신가요?

네. 10년 정도 전까지는 다소 있었습니다만 이제는 그릴 생각이 없습니다. 구상한 것으로 꽤나 종교적인 느낌이 드는 것이 있었습니다만 그리려고 하면 너무나도 어려워지더군요.
우선 더 이상 그릴 도구가 없어요. 전에 편지에 그림을 넣어서 보내려고 펜을 찾아보니 어디에 뒀는지 찾을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펜과 잉크를 사러 갔었다니까요(웃음).
제 스스로는 이제 이대로 은퇴하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말씀 마시고 부디 그 종교적인 새로운 경지의 작품을 보여주셨으면 합니다만.

아뇨, 그런 건 그리든 그리지 않든 상관없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걸로도 충분합니다.

to be continued
이글루스 가든 - 쯔게 요시하루(つげ義春)를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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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간독서인] 쓰게 요시하루, 지금도 (2008.10.24) 2009/01/06 14:44 #

    【주간독서인(週刊読書人)】쓰게 요시하루, 지금도 (つげ義春、いまも) (2008年10月24日号) 「쓰게 요시하루 콜렉션」(전9권, 지쿠마 서점(筑摩書房)) 간행을 기념하며 쓰게요시하루 지금도 (つげ義春、いまも。) 글 : 하타나카 쥰 畑中純 (1면) 쓰게식 행복론 (つげ式幸福論) 만화가 쓰게요시하루가 다다른 경지 하타나카 쥰 (畑中 純) 독특한 작풍으로 지금도 인기가 식을 줄 모르는 쓰게 요시하루의 만화. 마지막 작품을 발표하고 ...... more

덧글

  • 2009/01/05 01:11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대산초어 2009/01/06 00:47 #

    이젠 해탈해서 다른 경지에 간듯한 느낌이죠. 지금 경지에서 어떤 만화가 나올지 궁금하긴 하지만 그리실 생각이 전혀 없으시다니 뭐...

    감사금지는 어디에든 적용됩니다. 죄송. 블랙리스트에 올리겠습니다 ㅎㅎ.
  • 알음이무 2009/01/05 13:29 # 삭제 답글

    독특한 작품처럼 사상도 아주 독특한 분이시네요. 그나저나 휴필이라니 안타깝습니다.
  • 대산초어 2009/01/06 00:49 #

    컴백의 여지를 전혀 남기지 않는 인터뷰라 읽으면서 좀 슬펐습니다.
  • 2009/01/05 13:38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대산초어 2009/01/06 00:53 #

    가능하면 주말 이전에 다음편을 올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꽤 재미있는 인터뷰니 기대하셔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 다음엇지 2009/01/05 14:56 # 답글

    아... 올해로 72세가 되셨네요. 초기 작품집이 나왔던 것이 2003년이었죠. 작년에 다시 문고로 나왔는데도 아직 책을 못구했네요. (복사본이 있기는 하지만..) 쓰게 작품을 안본 지도 꽤 되었네요. 한참이나 그만 두었던 가든의 연보 정리라도 다시 해볼까요...
  • 대산초어 2009/01/06 01:03 #

    앗, 가든을 잊고 있었습니다. 가든을 활성화시켜 쓰게 팬을 늘려야 되는데...
  • zoddd 2009/01/05 16:43 # 삭제 답글

    어리석고도 불경한 말이지만,
    한마디로 '간지납니다.' ;;;
  • 대산초어 2009/01/06 01:05 #

    예술가 간지가 좔좔이죠(죄송합니다, 쓰게 선생님).
  • 2009/01/05 23:12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대산초어 2009/01/06 01:05 #

    아, 그 페이지에 있는 글은 번역판 '티보 가의 사람들'의 텍스트를 작품에 인용했음을 알리는 글이에요. 제가 말씀드렸던 건 그게 아니라 http://bjkun.egloos.com/3578597 <-오토모 카츠히로와의 대담 중에 나온 이 해설을 말씀드린 거였어요.
  • 시바우치 2009/01/06 01:06 # 삭제 답글

    도인이시군요...정말 작품 이미지 그대로.
  • 대산초어 2009/01/08 15:03 #

    작품 이미지랑 너무 똑같아서 초큼 웃었습니다 ㅎㅎ.
  • 달리 2009/01/06 22:59 # 삭제 답글

    저분 심정은 어쩐지 공감이 되네요...
    절필하는 그 심정...ㅜㅜ
  • 대산초어 2009/01/08 15:09 #

    공감은 되는데 거지가 되고 싶지는 않아요 ㅎㅎ.
  • 효우도 2009/01/08 01:10 # 삭제 답글

    뭐랄까.. 너무 세상을 등진 노인 같달까..
    그나저나 오랜만에 와서 리플을 답니다
  • 대산초어 2009/01/08 15:09 #

    네, 오랜만입니다.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충키 2009/01/11 14:31 # 답글

    '무소유'를 넘어서 '무'로 가고 싶으시다니..참.
    보통 사람은 생각을 품고 있어도 행동으로 옮기기 쉽지 않은데
    이 분은 진짜로 한다면 할 것 같아요.
    이제 만화에 대한 애정도 없고 귀찮게 까지 생각하시는 것 같네요.
    후속작은 물론이고 국내정발도 어려울 것 같아서 슬퍼요.ㅠ.ㅜ
  • 대산초어 2009/01/11 22:58 #

    신작은 아니더라도 꾸준히 예전 작품들이 발굴되어 나오기 때문에 목마름이 심하진 않지만 역시 신작에 대한 아쉬움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ㅠ.ㅠ
  • 2009/12/14 02:03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대산초어 2009/12/14 21:45 #

    이건 위에 쓰여있다시피 쓰게 요시하루 초기 걸작선 문고판에 실린 인터뷰입니다.
    저도 자료가 그리 많은 편은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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