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안 꿉니다(쓰게 요시하루 인터뷰-2) 만화관련

밖에서 작성하다가 보니 사진을 업로드 못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문맥이 이상한 부분을 고치면서 사진도 같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고치면서 가든에도 올리려고 하니 이 글에 비공개 덧글은 달아주시지 않았으면 합니다. 가든으로 옮기면 비공개 덧글이 그대로 드러나더군요... 이번 분량에선 꿈을 소재로 다룬 만화들-이른바 '꿈 物'-에 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쓰게 선생님께 꿈 이야기를 여쭈어 보려고 합니다. 요즘 꾸셨던 꿈 중에서 인상적인 건 없던가요?

요즘엔 전혀 꿈을 꾸지 않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전부터요?

한 10년 됐나 봅니다.

-꿈을 안 꾼다니 그럴 수가 있나요?

꽤 옛날 '꿈 일기'를 쓰던 때엔 꽤나 기묘한 꿈을 많이 꿨었습니다만. 지금은 그런 꿈을 꾸지 않습니다.
작가 시마오 토시오 씨도 꿈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계신데요, 나이를 먹으면 대체로 일상적인 꿈이 많아진다고 하시더군요. 그건 제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제로 연령과 함께 꾸는 꿈이 변하나요?

그렇죠. 역시 꿈이 잠재의식에서 나오는 거라고 한다면 잠재의식 그 자체가 나이와 함께 변해간다는 느낌은 들어요.

-'태엽식'에서 꿈 그 자체를 만화를 그리셨는데 왜 꿈을 그리셨나요? 만화 전편이 꿈 그 자체를 그린 만화는 아마도 '태엽식'이 최초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당시 라면집 2층에 하숙을 하고 있었는데 그 창문 밑으로 1층 지붕이 겹쳐지듯이 있었어요.
그 창문으로 이불을 밖으로 던져서 지붕에 이불을 말리곤 했지요. 그 이불 위에서 꾼 꿈이 '태엽식'의 근간을 이룬 꿈이었습니다. 그야말로 한낮에 꾼 꿈, 백일몽이었죠.

-원래 (그 꿈의) 스토리는 그런 흐름이었나요?

네, 그렇습니다. 풍경이나 배경은 만화를 그릴 때 만든 거였고 꿈속의 풍경이란 건 거의 기억에 없었어요.

-그럼 꿈같은 느낌을 주는 것들을 콜라주하신 거로군요.

네, 그래서 상당히 제 연출이 들어갔다는 것이지요. 실제로 꾼 꿈에선 기관차 같은 건 나오지도 않았고요.
나중에 '태엽식'에 대해서 정신분석적으로 설명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그거 실은 꽤나 자각하고 그렸습니다.
그 당시에 제가 꾼 꿈을 소재로 만화를 그린 것은 리얼리티에 대한 고집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에 관해선 곤도 스스무 씨가 낸 '쓰게 요시하루 만화술' 책 속에서 설명했습니다만 제가 지향하는 리얼리티를 파고 들다 보니 나온 것이 '태엽식'이었던 것 같아요.

-쓰게 선생님의 작품은 꿈 그 자체를 그리지 않더라도 꿈 같은 기분이 떠도는 작품이 많네요. 예를 들어 '늪'도 전개 어딘가에서 꿈에서 일어난 일 같습니다.

네, 하지만 '늪'에는 아직 스토리라는 것이 있어요. 이 무렵엔 아직 스토리 작성을 고집하던 것 같습니다.

-결말은 별로 설명적이지 않네요.

네, 제 마음엔 쏙 드는 결말이었습니다만 작품으로선 그다지 평판이 좋지 않았어요. 그래서 실망했습니다.

-스토리 작성에서 벗어난 것은 '꿈의 산책'부터였다고 말씀하셨는데요.

네. 스토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벗어남으로써) 편해진 것은 있죠. 그거, 그림 터치도 일부러 바꿔봤어요.

-그 작품도 꿈을 그리신 겁니까?

조금은 꿈에서 힌트를 얻었습니다만 거의 창작입니다. 꿈 이야기를 그린 건 아니지요.

-제목이 '꿈의 산책'인데요?(웃음). 터치를 바꾸셨다고 하니 '꿈이 붙잡는다'에서 시작된 '코마츠 곶의 생활' '필살 오징어 굳히기' '요시보의 범죄' 등 일련의 '꿈 물(物)'의 터치도 요상한 분위기를 내고 있네요.

그것들은 상당히 어려웠지요.

-꿈을 어떻게 그림으로 그릴 것인지 궁리 많이 하셨겠어요.

네, 일부러 시공이 일그러진 느낌으로 표현하거나 선을 일그러지게 그리거나 했지요. 그런데 꽤나 만족할만한 결과가 나오진 않더군요.
'창가의 손' 같은 건 리얼한 그림으로 그려 보거나, '필살 오징어 굳히기' 같은 작품을 보면 촌스럽고 기묘한 그림으로 그려 보거나 하는 식으로 꿈의 내용에 따라서 터치를 바꿔보았지요.

-'필살 오징어 굳히기'나 '요시보의 범죄' '코마츠 곶의 생활' 같은 작품은 그 원형이 쓰게 선생님의 '꿈 일기'에 거의 그대로 나와있네요.

네. 그래서 꿈을 꾼 그대로 그리려고 했는데 그림을 그리는 데에 고심을 하게 되니까 결국 '꿈 물'은 그만둬 버렸습니다.

-'꿈 물'이나 '태엽식'은 리얼리티를 고집한 결과 탄생한 작품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 주세요.

스토리라는 것은 뭔가 사건이 있고 그것에 얽힌 인물의 반응에 따라서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사건이라는 것은 단순히 '일'이 일어나는 것만으론 아무 의미가 없지요. 거기에 의미가 생기는 것은 그 '일'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에 따른 것인데 각자의 주관에 따라 반응은 천차만별이죠.
예를 들어 인간의 죽음이라는 큰 사건이라고 해도 그것에 대한 인물들의 반응에 따라 슬프다는 의미가 생기고, 이야기도 생겨나는 것인데 아무 감정 없이 직시하면 죽음은 죽음이라는 '일'로서 거기에 있을 뿐이라는 소리가 됩니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앞에 돌이 굴러다니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기란 대단히 어렵지요. 어떤 감정도, 반응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억지로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면 사실을 곡해하게 되니까 거짓이 되고 리얼리티(진실)가 손상되지요.
짧게 설명하긴 어렵지만 '일'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다면 그게 진정한 리얼리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식으로 생각해 봤습니다.
꿈을 그리는 것을 시험해 봤던 것은 꿈에 리얼리티의 힌트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꿈의 세계라는 것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꿈을 꾸는 사람이 꿈속의 '일'에 의미를 부여할 여유가 없기 때문에 '일'만의 세상이지요. 의미부여가 불가능하면 시간의 추이도 없어지니 시공을 초월해 버리고 줄거리가 있는 이야기도 성립하지 않습니다만 그러면서도 엄청나게 리얼하단 말이지요.
아무 의미도 없는 '일' 그 자체에는 거짓이나 꾸밈이 없으니까 리얼리티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해서 그런 식으로 꿈을 작품화시켜 봤던 겁니다. 하지만 '일'을 표현하기 위해서 화풍을 이상하게 만든다거나 그런 건 좋지 않은 방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일련의 '꿈 물'은 개인적인 잠재의식이나 내면적인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리얼리티를 추구해 온 쓰게 식(式) 스토리론의 실험이었던 것이군요.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요. 잘 설명하진 못하겠지만 말입니다. 당시의 전 제 존재의 근거 같은 것과 함께 이런 것들로 머리가 꽉 차 있었습니다.

-쓰게 선생님은 '겐센관 주인' 속에서 등장인물 노파에 전생에 관해서 말하게 했습니다만 쓰게 선생님 본인은 전생이라는 걸 믿으시는지요?

반쯤은 믿습니다. 아니, 7할 정도일까요? 물론 제 전생이 어땠는지 이런 건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만 전생에서 받은 영향, 그것으로 현재의 자신이 굳어지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곤 합니다.
그렇다는 것은 숙업(宿業. 불교에서 말하는 전생의 업. 역주)같은 것으로 전생에 따라 현재의 자신이 결정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전생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윤회전생이라는 것이 당연 떠오르지만요.
그러니까 그런 것을 생각하지 않으면 종교는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종교는 그 지점을 문제시하고 있으니까요. 종교는 철학과 겹치는 부분이 있지만 철학과는 달리 전생이나 윤회라는 문제를 다루니까 종교 쪽이 더 심오하구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철학에서도 초기의 그리스 철학자, 예를 들어 피타고라스, 소크라테스 등도 영혼을 문제로 삼고 있지요. 철학은 영혼을 돌보는 것이라고요. 멋지지 않습니까, 영혼을 돌본다니(웃음).
현대철학은 영혼의 문제를 비과학적으로 취급하는 모양인데 시시하지요. 종교 쪽도 점점 비합리적인 면을 잘라내는 경향으로 흐르고 있는데 싸구려 같아져서 싫습니다.

-60년대 후반의 쓰게 선생님 작품에는 명확히 드러난 것은 아닙니다만 그런 분위기는 있었지요.

네. 그것이 '겐센관 주인'으로 연결되었지요.

-'붉은 꽃'도 거기에 등장하는 소년과 소년들은 왠지 모르게 이 세상이 아닌 이상한 유토피아에서 사는 사람들 같은 느낌이 들어요.

네, 그때는 아직 시골 쪽으로 가면 그런 소박한 느낌이 나는 아이들이 비교적 많이 있었지요.

-기쿠치 사요코랑 신사의 마사지 같은 소년이나 소녀에 모델이 있었나요?

아뇨, 그 작품은 여행의 기분이 그런 것을 그리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마지막으로 쓰게 선생님은 자신의 전생이 있다고 한다면 뭐였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역시 거지가 아니었을까요(웃음).

to be continued
이글루스 가든 - 쯔게 요시하루(つげ義春)를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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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09/01/09 22:56 # 답글

    역시 거지가 아니었을까요
  • 대산초어 2009/01/10 23:15 #

    글쎄요^^...
  • 에테르 2009/01/10 12:07 # 삭제 답글

    나이를 먹으면 일상적인 꿈이 많아지는것일까요, 그건 그것대로 나쁘지 않겠지만
    그래도 왠지 아까운 기분이 듭니다..
  • 대산초어 2009/01/10 23:15 #

    전 벌써 일상적인 꿈만 꿉니다. 역시 나이를 먹으니...
  • 2009/01/11 06:26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대산초어 2009/01/11 23:30 #

    개인적으로 이 인터뷰를 통해서 몰랐던 점을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특히 꿈 만화 창작 동기는 꽤나 충격적이었습니다. 과연 저런 이유로...!
  • 충키 2009/01/11 15:51 # 답글

    이번 인터뷰는 작품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어서 더 좋아요.
    첫번째 사진은 마치 '늪' 마지막 장면같네요. 작품 속으로 들어가신 느낌.
    그나저나 거지에 대한 집착!! ^^
  • 대산초어 2009/01/11 23:32 #

    거지 너무 좋아하시죠 ㅎㅎ.
  • zoddd 2009/01/12 13:01 # 삭제 답글

    분명히 냉정한 인식 위에 그려진 작품들일 거라고 짐작은 했습니다만,
    짧게 언급되는 스토리론 이나 리얼리티에 대한 태도 등에서
    엄청나게 치열했을 당시의 모습이 연상되는군요.

    수리술술 저런 작품들을 그려낼 수는 없었겠지 하는 생각이 다시 한 번 듭니다.

    그나저나 2편이되니, 간지도 2배군요...
  • 대산초어 2009/01/14 00:39 #

    예술가 간지가 아주 폭풍치죠 ㅎㅎ.
  • DOSKHARAAS 2009/01/12 17:52 # 답글

    한 '도'한 사람의 풍모군요. 역시.
  • 대산초어 2009/01/14 00:39 #

    신선이죠^^.
  • 호호아줌마 2009/01/13 12:11 # 삭제 답글

    훌륭한 작품들은 그냥 나오는게 아니였네요
    그런데 저는 꿈을 하루에 한번씩 꿔서 내용이 기억도 안나요 ㅠㅠ
    오늘 참으로 희한한 꿈을 꿧는데.....참 ..ㅜㅜ
  • 대산초어 2009/01/14 00:39 #

    어떤 꿈을 꾸셨는지 궁금합니다^^.
  • 다음엇지 2009/01/13 14:56 # 답글

    차분히 다시 읽어 봤네요.
    역시 쓰게 요시하루 같은 사람도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건 소위 '자뻑' 이 있었기 때문이네요.
    그게 없으면 작가가 될 수 없죠. ^^
  • 대산초어 2009/01/14 00:41 #

    대본소 만화를 그리던 시절에도 자기 만화는 '만화문학'이고 다른 만화완 다르다고 작품 속에서 장난삼아 말한 적이 있었는데 그게 내심 진심이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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