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보드 ㅣ가 안 먹어서(세 번 누르면 한 번 됨) 고생하느라 늦어졌습니다. 연휴가 끝나자마자 이 놈의 키보드를 갈아야겠네요.
4권도 입수했으니 4권의 인터뷰도 조만간 올리겠습니다.
-쓰게 선생님은 조후에 살고 계시는데 이제 몇 년 정도 되셨습니까?
미즈키 시게루 선생님의 어시스턴트를 하기 위해서 시타마치에서 이사왔으니까 벌써 36, 7년쯤 되었겠네요.
-그때와 비교하면 조후의 느낌도 많이 변했지요?
예전엔 코슈가도의 여관촌이었고, 제가 왔을 때만 해도 그런 흔적이 남아있었습니다만 이젠 완전히 변하고 말았어요. 역앞에는 파르코(백화점)이 생겨 다른 동네 사람들도 오게 되어서 다른 마을이 된 것 같아 샌들을 신고 마음 편히 돌아다닐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전엔 논이랑 밭이 많고 낡은 집도 여러 채 있어 사람과 풍경이 융합되는 장점이 있었는데 지금은 집도 도로도 사람마저도 새롭게 바뀐 것 같아서 낯설게 느껴집니다. 좋아하던 산책도 하지 않게 되고 현재는 틀어박혀 있습니다.
매일 반찬 거리를 사러 장을 보러 가도 아내랑 사별한 이후론 모조리 끝나버린 것 같은 느낌이라 붐비는 사람들 속에 있자면 다른 사람들이 행복해 보여서 고독해지지요......
-...'쿠로'는 어디에 있습니까?
'쿠로'? 아, '쿠로'요(웃음)? 그건 미즈키 선생님이 멋대로 붙인 이름이고 정식명칭은 없지 않았나 싶어요. 지금은 파르코 빌딩이 서있는데 예전엔 역앞 상점가에 숨어있듯이 있었지요. 밖에서 봐도 거기가 찻집일 거라고 누구도 생각 못할 것 같은 곳으로, 모든 게 지저분해 까매 보이기에 '쿠로(일본어로 검다는 뜻)'라고 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웃음).
분명 간판도 없고 유리문이 4개 늘어서 있을 뿐이라 안으로 들어가려고 유리문을 열려고 했는데 열리지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억지로 열려고 했더니 갑자기 유리문이 레일 위에서 빠져 버려서, 빠진 유리문을 잡고 비틀대다가 뒤로 넘어질 뻔한 적이 있는 그런 가게지요(웃음).
-미즈키 선생님이 '쿠로'에 대해 알려주신 건가요?
네. 미즈키 선생님이 항상 '쿠로'에서 커피콩을 사셨기에 찻집인 걸 알긴 했지만 생긴 걸 봐서 부동산이 아닌가 했어요.
가게 안은 울퉁불퉁한 봉당으로 찢어진 격자창이 있는 4조반 크기의 공간인데 나막신이나 조우리가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고 몸빼 차림의 아주머니가 커피를 타주었죠. 의자는 버스의 2인석 같은 걸 이용했었고 손님이 도시락 같은 걸 먹고 그랬는데 지금까지 남아있었으면 줄서서 먹는 가게가 되어 있었을 겁니다(웃음).
미즈키 선생님은 '조후엔 저런 가게밖에 없어요', '조후엔 미인이 없어요' 이러면서 탄식을 하시곤 했지만 전 지방 같은 분위기와 미인이 없다는 것이 거꾸로 마음이 편해서 오히려 마음에 들었습니다만.
그런 조후의 영향으로 '이씨 일가'와 '게'를 그렸습니다만 주인공 청년이 청빈한 생활을 즐기는 것은 당시 제 기분이 일부 반영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청빈을 추구하는 것은 일종의 사치라 재수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제 경우엔 오랫 동안의 적빈이 청빈으로 레벨업하고 싶은 기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론 청빈을 실행하는 데엔 미치지 못했네요(웃음).
-미즈키 선생님과 함께 조후에 살고 계신데요, 길에서 만나거나 하는 경우는 없습니까?
거의 없습니다. 1년에 한 두 번 정도랄까. 하지만 만나도 가볍게 인사나 하는 정도고 이야기는 거의 안 합니다.
요전번에 미즈키 선생님 80세 생일 파티에 초대받았을 때에도 거의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습니다. 미즈키 선생님이 불쑥 한마디 정도.
하지만 그 한마디가 나중에 생각해보니 꽤나 의미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요새 통 재미가 없죠?' 같은 말.
그래서 '재미없습니다'라고 대답했더니 미즈키 선생님이 '역시!'라고 하시더군요(웃음).
그리고 나서 '재미없다'는 말을 미즈키 선생님과 연관해 생각해보니 이게 깊은 의미가 나오더군요.
그런 식으로 제가 미즈키 선생님의 어시스턴트를 하고 있었을 때도 미즈키 선생님이 작업실에서 불쑥 뭔가를 말하고 제가 다시 한마디 대답하는 정도로 거의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습니다. 창작에 관한 이야기나 인생론 같은 것도 전혀 없었지요.
-미즈키 프로덕션에서 쓰게 선생님은 어떤 위치셨고, 주로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제가 미즈키 선생님의 제자인 것처럼 다들 오해하고 있는데요, 미즈키 선생님 이야기만 들어서 그렇습니다(웃음). 젊은 어시스턴트는 월급제인데 제 경우엔 일급으로 받는 일용직이었고 바쁠 때만 한 달 중에 1주일에서 10일 정도 어시스턴트를 했습니다. 이미 저도 만화가 경력이 10년이라 즉전력으로 의뢰를 받은 거였고 마찬가지로 저보다 나이가 많은 베테랑 만화가가 두 사람, 일당을 벌려고 가끔 왔었지요.
미즈키 선생님도 예전엔 납량특집 시즌인 여름에만 바쁘고, 한가해지기도 했기 때문에 한가해지면 반년 정도 부르지 않고 그랬습니다. 그렇게 되면 예상 수입을 밑돌게 되니까 제 만화도 병행해서 그렸지요.
그런 형편이라 실질적으로 미즈키 선생님 작품에 제 손이 들어간 부분은 의외로 적다고 생각합니다. 주로 주인공 이외의 조역 인물들을 그렸지요.
젊은 어시스턴트들은 배경이나 그 맹렬한 점묘화 등을 그렸지만 어이스턴트가 늘다 보면 그중에 자기 색깔이 강한 사람이 있어서 미즈키 선생님의 그림과 비슷하게 하지 않고 자기 화풍으로 그리거나 하는 제멋대로인 녀석도 있었지요. 하지만 미즈키 선생님은 한마디 불평없이 가만히 참고 계셨지요. 역시 도량이 크다고 할까, 굉장한 사람이라고 탄복했었습니다. 자기 멋대로 해서 폐를 끼쳐도 항상 부드럽게 대해 주셨으니까요. 그러고 보면 인격면에선 역시 전 제자 레벨이 아닐까 싶어요(웃음).

-미즈키 선생님 어시스턴트를 하시면서 쓰게 선생님이 뭔가 영향을 받고 그러셨나요?
미즈키 선생님은 그림을 잘 그리시니까요. 전 대본 만화를 오래 그렸는데도 그림이 지저분하고 거칠어서 지금도 차마 못보겠습니다만 미즈키 선생님 어시스턴트를 하게 되면서 꼼꼼하게 그리는 걸 자연스럽게 배워 어느샌가 '미즈키 터치'가 제게도 전염되고 말았지요(웃음).
그때까진 제 만화가 생활 같은 건 그리 오래 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적당히 날려 그리고 원고료만 받으면 아무래도 좋다는 그런 느낌이 있었지요.
그래서 화풍도 당시 인기가 있는 만화가를 따라하기만 했습니다.
영향과 흉내는 전 이렇게 나눠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림을 비슷하게 따라 그리는 것은 흉내라고 전 생각합니다. 처음엔 테즈카 오사무 선생님, 나가시마 신지 선생님, 그 뒤론 시라토 산페이 선생님이 인기를 얻을 때엔 그것에 영합해 보자고 꽤나 흉내를 내서 그렸지요.
영향이라고 하면 스토리 만드는 것에서 타츠미 요시히로 선생님. 타츠미 선생님의 작품은 어린애의 꿈이랑 공상이 적고, 일상적인 리얼리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림에 대해선 전 개성이 없이 화풍이 확고히 굳어지지 않고 흉내가 많았습니다만 그래도 화풍이 정해지니 스토리 만드는 게 화풍에 맞는 것으로 한정되고 마는 불편합이 있었지요.
-분명 쓰게 선생님처럼 화풍이 카멜레온처럼 계속 변해가는 만화가도 드물지요. 예를 들자면 피카소가 시기마다 화풍이 바뀌었던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요?
아뇨, 피카소는 예술적 선택 때문에 화풍이 변한 것이지만 제 경우는 그야말로 어디까지나 생활타개를 위한 수단이었을뿐이니까요......
-영향이라는 점에서 '미로'에 그리신 '귀신 굴뚝' 같은 답답한 이야기는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요?
네. 그건 흉내도 뭣도 아니라 제 성장환경이랑 생활환경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지요. 영세한 동네공장에 일하러 가고 생활고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기 때문에 꿈도 희망도 없는 '현실'에 영향을 받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출판사쪽에선 "이건 어린애들이 볼 게 아닌데"하고 불만스럽게 말했지만 단편지에 다른 작품들과 섞여서 실리게 되었습니다.
-처음 대본만화로 데뷔하시고 마침내 메이저 만화지에 그리시게 되었다가 다시 대본만화로 돌아오셨는데 그것도 아동만화의 센스와 맞지 않으셨기 때문인가요?
네. 아카츠카 후지오 씨나 마츠모토 레이지 씨 같은 사람은 대본 만화에서 데뷔해서 메이저 잡지로 가버렸습니다만 저만 원래 대본만화로 돌아와 버린 것은 아이들을 상대로 하는 오락 본위의 만화가 그리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오락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역시 "현실"에 지나치게 오염된 탓인지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발상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점에서 대본만화는 어느 정도 자유롭게 그릴 수 있기에 돌아오고 말았던 것입니다만 원고료는 큰 잡지보다 싸니까 생활은 힘들어 지고 그랬지요.
'미로'에 그린 것은 '귀신 굴뚝'말고도 다들 어두운 단편뿐이고 그런 경향밖에 그릴 수 없는 것과 오락성을 무시할 수 없는 것에 낑겨서 그 뒤로 계속 슬럼프를 겪었습니다.
이 네 권의 작품집에 실린 단편도 슬럼프에 빠진 채로 그렸던 것이 많아 부끄럽네요. 그림도 날려그려서 조잡한 것은 생활고 때문입니다만 4권에 실린 '요도 무라마사'는 궁한 나머지 고미 야스스케의 작품을 표절했습니다. 원작 제목도 잊었습니다만 또 3권의 '손가락'은 외국의 추리소설을 참고로 그린 것으로 작가 이름도 기억이 안납니다.(편집자 주: 코넬 울리치의 단편 '손톱')
대본만화 말기 무렵엔 방세를 2년 정도 체납할 정도로 쪼들렸고 어딘가에 취직하고 싶어도 월급이 나올 때까지 버틸 돈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도 어쨌거나 일자리를 찾으려고 했었지요.
미즈키 선생님의 어시스턴트를 할 생각을 했던 것은 당시 이치가야의 인쇄소에서 밤에 일할 직원을 모집했었거든요. 그래서 거기로 면접을 보러가는 도중에 진보쵸에 있던 세이린도에 들렸습니다. 그랬더니 미즈키 선생님이 주간 소년 매거진에 연재 때문에 바빠지셔서 어시스턴트를 모집하고 있다고 하길래 그쪽으로 가볼까 생각했을뿐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이야기가 없었다면 인쇄공장에서 일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운명적이군요.
그 뒤로는 잘 아시다시피 만화 한 우물만 팠습니다(웃음). 원래 만화에 전념할 생각은 별로 없었습니다만 결과적으로 '만화 외길'처럼 되어버렸으니 역시 운명이었을까요(웃음).
그런데 만화가가 된 것은 동경이 있어서가 아니라 도금공장 직원보다 나은 직업이라고 생각해서 먹고 살기 위해서 전직했다는 그런 느낌이에요. 동시에 선원으로 전직할까 했었으니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지요. 어디까지나 만화는 그냥 직종 중 하나였을뿐이고 특별한 거란 생각은 없었어요.
책을 만드는 것이 무슨 지적산업인 것 같지만 당시 대본출판의 현장이라는 것은 가내수공업으로 어린아이 장난감을 만드는 것과 비슷했지요. 원고에 식자를 붙여넣는 것도 출판사 근처의 아줌마가 부업으로 하고 그랬으니 종이연극 세계랑 비슷했지요. 그러니까 저도 좀 그림을 그릴 줄 알아서 전직했을 뿐이지요. 그 감각이 계속 이어져 만화가 안되면 헌책방이나 골동품점으로 전직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지요. 앞으로 운명이 어떻게 변할지 모릅니다(웃음).
-하지만 어떤 시기부터는 창조적인 기쁨을 가지고 만화를 그리던 시기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가로에 '늪'이랑 '치코' 등을 그리실 무렵 말입니다. 그 시기엔 쓰게 선생님께 어떤 일이 일어난 걸까요?
그건 가로에 아동 대상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그림으로써 오랜 기간의 슬럼프를 털어버릴 수 있었기에 그리는 것의 재미를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이었겠지요.
그리고 그때부터 문학을 읽게 되어서 시야가 넓어진 느낌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전엔 독서 같은 걸 제대로 하지 않았고 가끔 오락으로 추리소설, 시대소설을 읽었으니까요. 하지만 난해한 것을 그리게 된 것은 문학이랑 예술에 각성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아직도 예술의 의미가 뭔지 잘 모르니까요.
난해한 것은 제 마음 속의 불안정이 낳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 마음 속 갈 곳 없는 불안감이 쫄아들어서 그것을 표현하려고 하니까 난해해진 것이 아닐까 싶어요. 하지만 만화의 세계에선 전례가 없으니까 난해해 보일 뿐이고 다른 장르엔 많이 있지요. 그게 호의적인 평가를 받게 된 것은 무지하고 배운 것 없는 사람이 애들 장난 같은 만화를 그리다가 관념적인 만화를 그리게 된 것이 신기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요.

-60년대 후반부터는 매달 가로에 완성도 높은 작품을 그리셨는데요, 역시 가로가 그리기 편했습니까?
네, 자기주도적으로 그리게 되어서 편했지요. 그리는 내용이 어려워져도 예술의식에 각성해서 그린 것은 아니니까 딱히 고심하고 그러지도 않았어요. 전 만화라는 직업을 "장사"라고 부르는 버릇이 있는데 그러면 안 되지만 여전히 그런 감각으로 그렸습니다.
그래서 가로 초기엔 아직 대본소 소녀만화 같은 걸 그리고 말았고, '늪'에서도 소녀의 얼굴은 나가시마(신지) 선생님을 흉내냈던 것은 그게 그뒤로도 계속 남을 거라곤 전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지요.
가로는 대본 판형과는 다른 잡지형식이었지만 아직 대본티가 아슬아슬하게 남아있던 시기라 제게는 대본 만화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원고료도 똑같아서 생활도 그대로였죠. 사라지기 직전의 업계라 제 작품도 결국 사라지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전에 그렸던 태작이 다시 나온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어요.
그런 식이었으니 저도 초기작이랑 대본 시절에 그렸던 만화는 어떤 걸 그렸는지 내용도 기억이 안나고, 이번에 수록되게 된 것들은 모두 잊고 있던 작품들뿐입니다.
기억하고 있는 건 가로 이후지요. 그 이전 것들은 다 잊어버렸고 제 책도 가진 게 없습니다.
미즈키 선생님조차도 대본 시절의 원고는 남기지 않으셨고요, 당시 대본 만화를 그리던 사람들은 이런 시대가 오리라곤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겠지요. 악몽 같은 시절이었으니까요.
to be continued
이글루스 가든 - 쯔게 요시하루(つげ義春)를 읽자
4권도 입수했으니 4권의 인터뷰도 조만간 올리겠습니다.
-쓰게 선생님은 조후에 살고 계시는데 이제 몇 년 정도 되셨습니까?
미즈키 시게루 선생님의 어시스턴트를 하기 위해서 시타마치에서 이사왔으니까 벌써 36, 7년쯤 되었겠네요.
-그때와 비교하면 조후의 느낌도 많이 변했지요?
예전엔 코슈가도의 여관촌이었고, 제가 왔을 때만 해도 그런 흔적이 남아있었습니다만 이젠 완전히 변하고 말았어요. 역앞에는 파르코(백화점)이 생겨 다른 동네 사람들도 오게 되어서 다른 마을이 된 것 같아 샌들을 신고 마음 편히 돌아다닐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전엔 논이랑 밭이 많고 낡은 집도 여러 채 있어 사람과 풍경이 융합되는 장점이 있었는데 지금은 집도 도로도 사람마저도 새롭게 바뀐 것 같아서 낯설게 느껴집니다. 좋아하던 산책도 하지 않게 되고 현재는 틀어박혀 있습니다.
매일 반찬 거리를 사러 장을 보러 가도 아내랑 사별한 이후론 모조리 끝나버린 것 같은 느낌이라 붐비는 사람들 속에 있자면 다른 사람들이 행복해 보여서 고독해지지요......
-...'쿠로'는 어디에 있습니까?
'쿠로'? 아, '쿠로'요(웃음)? 그건 미즈키 선생님이 멋대로 붙인 이름이고 정식명칭은 없지 않았나 싶어요. 지금은 파르코 빌딩이 서있는데 예전엔 역앞 상점가에 숨어있듯이 있었지요. 밖에서 봐도 거기가 찻집일 거라고 누구도 생각 못할 것 같은 곳으로, 모든 게 지저분해 까매 보이기에 '쿠로(일본어로 검다는 뜻)'라고 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웃음).
분명 간판도 없고 유리문이 4개 늘어서 있을 뿐이라 안으로 들어가려고 유리문을 열려고 했는데 열리지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억지로 열려고 했더니 갑자기 유리문이 레일 위에서 빠져 버려서, 빠진 유리문을 잡고 비틀대다가 뒤로 넘어질 뻔한 적이 있는 그런 가게지요(웃음).
-미즈키 선생님이 '쿠로'에 대해 알려주신 건가요?
네. 미즈키 선생님이 항상 '쿠로'에서 커피콩을 사셨기에 찻집인 걸 알긴 했지만 생긴 걸 봐서 부동산이 아닌가 했어요.
가게 안은 울퉁불퉁한 봉당으로 찢어진 격자창이 있는 4조반 크기의 공간인데 나막신이나 조우리가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고 몸빼 차림의 아주머니가 커피를 타주었죠. 의자는 버스의 2인석 같은 걸 이용했었고 손님이 도시락 같은 걸 먹고 그랬는데 지금까지 남아있었으면 줄서서 먹는 가게가 되어 있었을 겁니다(웃음).
미즈키 선생님은 '조후엔 저런 가게밖에 없어요', '조후엔 미인이 없어요' 이러면서 탄식을 하시곤 했지만 전 지방 같은 분위기와 미인이 없다는 것이 거꾸로 마음이 편해서 오히려 마음에 들었습니다만.
그런 조후의 영향으로 '이씨 일가'와 '게'를 그렸습니다만 주인공 청년이 청빈한 생활을 즐기는 것은 당시 제 기분이 일부 반영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청빈을 추구하는 것은 일종의 사치라 재수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제 경우엔 오랫 동안의 적빈이 청빈으로 레벨업하고 싶은 기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론 청빈을 실행하는 데엔 미치지 못했네요(웃음).
-미즈키 선생님과 함께 조후에 살고 계신데요, 길에서 만나거나 하는 경우는 없습니까?
거의 없습니다. 1년에 한 두 번 정도랄까. 하지만 만나도 가볍게 인사나 하는 정도고 이야기는 거의 안 합니다.
요전번에 미즈키 선생님 80세 생일 파티에 초대받았을 때에도 거의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습니다. 미즈키 선생님이 불쑥 한마디 정도.
하지만 그 한마디가 나중에 생각해보니 꽤나 의미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요새 통 재미가 없죠?' 같은 말.
그래서 '재미없습니다'라고 대답했더니 미즈키 선생님이 '역시!'라고 하시더군요(웃음).
그리고 나서 '재미없다'는 말을 미즈키 선생님과 연관해 생각해보니 이게 깊은 의미가 나오더군요.
그런 식으로 제가 미즈키 선생님의 어시스턴트를 하고 있었을 때도 미즈키 선생님이 작업실에서 불쑥 뭔가를 말하고 제가 다시 한마디 대답하는 정도로 거의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습니다. 창작에 관한 이야기나 인생론 같은 것도 전혀 없었지요.
-미즈키 프로덕션에서 쓰게 선생님은 어떤 위치셨고, 주로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제가 미즈키 선생님의 제자인 것처럼 다들 오해하고 있는데요, 미즈키 선생님 이야기만 들어서 그렇습니다(웃음). 젊은 어시스턴트는 월급제인데 제 경우엔 일급으로 받는 일용직이었고 바쁠 때만 한 달 중에 1주일에서 10일 정도 어시스턴트를 했습니다. 이미 저도 만화가 경력이 10년이라 즉전력으로 의뢰를 받은 거였고 마찬가지로 저보다 나이가 많은 베테랑 만화가가 두 사람, 일당을 벌려고 가끔 왔었지요.
미즈키 선생님도 예전엔 납량특집 시즌인 여름에만 바쁘고, 한가해지기도 했기 때문에 한가해지면 반년 정도 부르지 않고 그랬습니다. 그렇게 되면 예상 수입을 밑돌게 되니까 제 만화도 병행해서 그렸지요.
그런 형편이라 실질적으로 미즈키 선생님 작품에 제 손이 들어간 부분은 의외로 적다고 생각합니다. 주로 주인공 이외의 조역 인물들을 그렸지요.
젊은 어시스턴트들은 배경이나 그 맹렬한 점묘화 등을 그렸지만 어이스턴트가 늘다 보면 그중에 자기 색깔이 강한 사람이 있어서 미즈키 선생님의 그림과 비슷하게 하지 않고 자기 화풍으로 그리거나 하는 제멋대로인 녀석도 있었지요. 하지만 미즈키 선생님은 한마디 불평없이 가만히 참고 계셨지요. 역시 도량이 크다고 할까, 굉장한 사람이라고 탄복했었습니다. 자기 멋대로 해서 폐를 끼쳐도 항상 부드럽게 대해 주셨으니까요. 그러고 보면 인격면에선 역시 전 제자 레벨이 아닐까 싶어요(웃음).

-미즈키 선생님 어시스턴트를 하시면서 쓰게 선생님이 뭔가 영향을 받고 그러셨나요?
미즈키 선생님은 그림을 잘 그리시니까요. 전 대본 만화를 오래 그렸는데도 그림이 지저분하고 거칠어서 지금도 차마 못보겠습니다만 미즈키 선생님 어시스턴트를 하게 되면서 꼼꼼하게 그리는 걸 자연스럽게 배워 어느샌가 '미즈키 터치'가 제게도 전염되고 말았지요(웃음).
그때까진 제 만화가 생활 같은 건 그리 오래 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적당히 날려 그리고 원고료만 받으면 아무래도 좋다는 그런 느낌이 있었지요.
그래서 화풍도 당시 인기가 있는 만화가를 따라하기만 했습니다.
영향과 흉내는 전 이렇게 나눠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림을 비슷하게 따라 그리는 것은 흉내라고 전 생각합니다. 처음엔 테즈카 오사무 선생님, 나가시마 신지 선생님, 그 뒤론 시라토 산페이 선생님이 인기를 얻을 때엔 그것에 영합해 보자고 꽤나 흉내를 내서 그렸지요.
영향이라고 하면 스토리 만드는 것에서 타츠미 요시히로 선생님. 타츠미 선생님의 작품은 어린애의 꿈이랑 공상이 적고, 일상적인 리얼리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림에 대해선 전 개성이 없이 화풍이 확고히 굳어지지 않고 흉내가 많았습니다만 그래도 화풍이 정해지니 스토리 만드는 게 화풍에 맞는 것으로 한정되고 마는 불편합이 있었지요.
-분명 쓰게 선생님처럼 화풍이 카멜레온처럼 계속 변해가는 만화가도 드물지요. 예를 들자면 피카소가 시기마다 화풍이 바뀌었던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요?
아뇨, 피카소는 예술적 선택 때문에 화풍이 변한 것이지만 제 경우는 그야말로 어디까지나 생활타개를 위한 수단이었을뿐이니까요......
-영향이라는 점에서 '미로'에 그리신 '귀신 굴뚝' 같은 답답한 이야기는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요?
네. 그건 흉내도 뭣도 아니라 제 성장환경이랑 생활환경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지요. 영세한 동네공장에 일하러 가고 생활고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기 때문에 꿈도 희망도 없는 '현실'에 영향을 받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출판사쪽에선 "이건 어린애들이 볼 게 아닌데"하고 불만스럽게 말했지만 단편지에 다른 작품들과 섞여서 실리게 되었습니다.
-처음 대본만화로 데뷔하시고 마침내 메이저 만화지에 그리시게 되었다가 다시 대본만화로 돌아오셨는데 그것도 아동만화의 센스와 맞지 않으셨기 때문인가요?
네. 아카츠카 후지오 씨나 마츠모토 레이지 씨 같은 사람은 대본 만화에서 데뷔해서 메이저 잡지로 가버렸습니다만 저만 원래 대본만화로 돌아와 버린 것은 아이들을 상대로 하는 오락 본위의 만화가 그리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오락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역시 "현실"에 지나치게 오염된 탓인지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발상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점에서 대본만화는 어느 정도 자유롭게 그릴 수 있기에 돌아오고 말았던 것입니다만 원고료는 큰 잡지보다 싸니까 생활은 힘들어 지고 그랬지요.
'미로'에 그린 것은 '귀신 굴뚝'말고도 다들 어두운 단편뿐이고 그런 경향밖에 그릴 수 없는 것과 오락성을 무시할 수 없는 것에 낑겨서 그 뒤로 계속 슬럼프를 겪었습니다.
이 네 권의 작품집에 실린 단편도 슬럼프에 빠진 채로 그렸던 것이 많아 부끄럽네요. 그림도 날려그려서 조잡한 것은 생활고 때문입니다만 4권에 실린 '요도 무라마사'는 궁한 나머지 고미 야스스케의 작품을 표절했습니다. 원작 제목도 잊었습니다만 또 3권의 '손가락'은 외국의 추리소설을 참고로 그린 것으로 작가 이름도 기억이 안납니다.(편집자 주: 코넬 울리치의 단편 '손톱')
대본만화 말기 무렵엔 방세를 2년 정도 체납할 정도로 쪼들렸고 어딘가에 취직하고 싶어도 월급이 나올 때까지 버틸 돈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도 어쨌거나 일자리를 찾으려고 했었지요.
미즈키 선생님의 어시스턴트를 할 생각을 했던 것은 당시 이치가야의 인쇄소에서 밤에 일할 직원을 모집했었거든요. 그래서 거기로 면접을 보러가는 도중에 진보쵸에 있던 세이린도에 들렸습니다. 그랬더니 미즈키 선생님이 주간 소년 매거진에 연재 때문에 바빠지셔서 어시스턴트를 모집하고 있다고 하길래 그쪽으로 가볼까 생각했을뿐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이야기가 없었다면 인쇄공장에서 일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운명적이군요.
그 뒤로는 잘 아시다시피 만화 한 우물만 팠습니다(웃음). 원래 만화에 전념할 생각은 별로 없었습니다만 결과적으로 '만화 외길'처럼 되어버렸으니 역시 운명이었을까요(웃음).
그런데 만화가가 된 것은 동경이 있어서가 아니라 도금공장 직원보다 나은 직업이라고 생각해서 먹고 살기 위해서 전직했다는 그런 느낌이에요. 동시에 선원으로 전직할까 했었으니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지요. 어디까지나 만화는 그냥 직종 중 하나였을뿐이고 특별한 거란 생각은 없었어요.
책을 만드는 것이 무슨 지적산업인 것 같지만 당시 대본출판의 현장이라는 것은 가내수공업으로 어린아이 장난감을 만드는 것과 비슷했지요. 원고에 식자를 붙여넣는 것도 출판사 근처의 아줌마가 부업으로 하고 그랬으니 종이연극 세계랑 비슷했지요. 그러니까 저도 좀 그림을 그릴 줄 알아서 전직했을 뿐이지요. 그 감각이 계속 이어져 만화가 안되면 헌책방이나 골동품점으로 전직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지요. 앞으로 운명이 어떻게 변할지 모릅니다(웃음).
-하지만 어떤 시기부터는 창조적인 기쁨을 가지고 만화를 그리던 시기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가로에 '늪'이랑 '치코' 등을 그리실 무렵 말입니다. 그 시기엔 쓰게 선생님께 어떤 일이 일어난 걸까요?
그건 가로에 아동 대상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그림으로써 오랜 기간의 슬럼프를 털어버릴 수 있었기에 그리는 것의 재미를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이었겠지요.
그리고 그때부터 문학을 읽게 되어서 시야가 넓어진 느낌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전엔 독서 같은 걸 제대로 하지 않았고 가끔 오락으로 추리소설, 시대소설을 읽었으니까요. 하지만 난해한 것을 그리게 된 것은 문학이랑 예술에 각성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아직도 예술의 의미가 뭔지 잘 모르니까요.
난해한 것은 제 마음 속의 불안정이 낳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 마음 속 갈 곳 없는 불안감이 쫄아들어서 그것을 표현하려고 하니까 난해해진 것이 아닐까 싶어요. 하지만 만화의 세계에선 전례가 없으니까 난해해 보일 뿐이고 다른 장르엔 많이 있지요. 그게 호의적인 평가를 받게 된 것은 무지하고 배운 것 없는 사람이 애들 장난 같은 만화를 그리다가 관념적인 만화를 그리게 된 것이 신기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요.

-60년대 후반부터는 매달 가로에 완성도 높은 작품을 그리셨는데요, 역시 가로가 그리기 편했습니까?
네, 자기주도적으로 그리게 되어서 편했지요. 그리는 내용이 어려워져도 예술의식에 각성해서 그린 것은 아니니까 딱히 고심하고 그러지도 않았어요. 전 만화라는 직업을 "장사"라고 부르는 버릇이 있는데 그러면 안 되지만 여전히 그런 감각으로 그렸습니다.
그래서 가로 초기엔 아직 대본소 소녀만화 같은 걸 그리고 말았고, '늪'에서도 소녀의 얼굴은 나가시마(신지) 선생님을 흉내냈던 것은 그게 그뒤로도 계속 남을 거라곤 전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지요.
가로는 대본 판형과는 다른 잡지형식이었지만 아직 대본티가 아슬아슬하게 남아있던 시기라 제게는 대본 만화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원고료도 똑같아서 생활도 그대로였죠. 사라지기 직전의 업계라 제 작품도 결국 사라지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전에 그렸던 태작이 다시 나온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어요.
그런 식이었으니 저도 초기작이랑 대본 시절에 그렸던 만화는 어떤 걸 그렸는지 내용도 기억이 안나고, 이번에 수록되게 된 것들은 모두 잊고 있던 작품들뿐입니다.
기억하고 있는 건 가로 이후지요. 그 이전 것들은 다 잊어버렸고 제 책도 가진 게 없습니다.
미즈키 선생님조차도 대본 시절의 원고는 남기지 않으셨고요, 당시 대본 만화를 그리던 사람들은 이런 시대가 오리라곤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겠지요. 악몽 같은 시절이었으니까요.
to be continued
이글루스 가든 - 쯔게 요시하루(つげ義春)를 읽자
태그 : 쓰게요시하루




덧글
2009/01/27 12:57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대산초어 2009/01/27 21:34 #
감사금지...라는 걸 아실만한 분께서 어흠.저런 악몽같은 시절을 겪었으니 예술에 대해 왈가왈부하시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이겠죠.
어째 예술 어쩌구...하는 건 배부른 소리같지 않습니까^^.
효우도 2009/01/27 15:22 # 삭제 답글
아내랑 사별했군요. 몰랐음대산초어 2009/01/27 21:35 #
현재는 아들과 단촐하게 살고 있다는 듯 합니다.블론디 2009/01/27 16:43 # 삭제 답글
사회적으로도 예술적으로도 참 독립된듯한 모습이군요..대산초어 2009/01/27 21:35 #
독립을 넘어 고립의 경지에 다다른 것 같기도 해요^^.알음이무 2009/01/29 19:02 # 삭제 답글
악몽같은 시절이라... 만화작가의 길만 생각하는 저에게는 참 와 닿는 글입니다.대산초어 2009/01/30 16:56 #
저런 악몽 같은 시절이 있었기에 나중에 좋은 작품을 낼 수 있었다...고 구경꾼 입장에서 무책임하게 말할 수 있겠지요.카펜터 2009/01/30 01:12 # 답글
쓰게 작품 정말 좋아요.이곳에서 작품을 제대로 접했구요.
근데 예전에 작품 많이 올려 놓았던것 같은데, 다시 올려주시면 안될까요?
대산초어 2009/01/30 16:50 #
네이버 검색하면 많이 나오니까 그쪽을 이용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yek 2009/03/25 17:52 # 삭제 답글
쓰게 작품은 지금 번역 중인 작품 있나요?대산초어 2009/03/25 20:57 #
저야 모르지요^^. 쓰게가 해외출판을 꺼린다고 하니 나올 확률은 좀 낮지 않나 싶습니다.yek 2009/03/30 10:20 # 삭제 답글
음... 그렇군요. 왜 해외출판을 꺼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