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쓰게 요시하루 인터뷰-4) 完 만화관련

드디어 마지막이네요. 마지막을 장식하듯이 사변적인 이야기가 쏟아져 나와서 옮기는 데 고전했습니다. 뉘앙스가 이상한 부분들은 나중에 또 고치고 그래야겠네요.



-이번엔 쓰게 선생님의 작품에 때때로 거론되는 '증발'에 관해서 여쭈어보고 싶습니다. '증발여행일기'에 리얼한 수기로 증발에 관해 쓰여져 있는데 증발이라는 건 언제부터 관심을 가지셨는지요?

언제부터라기는 좀 그렇고, 항상 세상에서 달아나고 싶은 기분이었습니다(웃음). 왜 그러냐고 자문할 여유도 사고력도 없었기 때문에 영문을 알 수 없는 채로 발작적으로 실행하고 말았다는 느낌이네요.

-1권에서 화제로 떠올랐던 여행을 떠난다는 것과 증발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하는데요.

완전히 다르죠. 여행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오지만 증발은 돌아오지 않으니 완전히 다르죠. 증발을 실행하는 데엔 커다란 고통이 함께 합니다...
그러니까 제 경우도 갑자기 큐슈에 가고 그랬던 게 아니라 도중에 몇 번이고 망설이다가 미에현 마츠자카시에서 하루 묵고, 그리고 나서 오사카에 가서도 결심이 서지 않아가지고 치바에 아는 여관에 '곧 가겠습니다'하고 엽서를 보내고 그랬습니다. 그러나 보내긴 보냈지만 모처럼 오사카까지 왔으니...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대로 큐슈에 가버렸지요.

-말씀하신 고통이란 건 어떤 것인가요?

증발은 행방불명이 되어서 다른 곳에서 다른 인생을 사는 것입니디만 행방을 감출 때 그때까지의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는 거라서, 죽는 것은 아닙니다만 자신을 지운다는 의미에서 자살행위와 마찬가지니까 미쳐버릴 정도로 고통스럽습니다. 마치 다른 차원에 돌입하는 것 같은 감각입니다.
실제 죽음이란 것은 육체와 함께 의식을 잃으니까 정신적 고통은 그리 크지 않다는 생각이 들지만 증발은 의식을 가진 채로 죽음을 체험한다는 느낌이랄까요.
증발하러 가는 동안의 공간이 팽창해서 무슨 질감을 가진 것 같은 느김이 들고 숨이 막혀서 공간을 손으로 잡아 늘여서 다른 차원으로 가는 것 같은 기묘한 상태입니다.
증발과는 상관없는 '밖의 부풀음'이라는 작품이 있는데 '밖'이 실체로서 집안에 침입해 오는 이야기입니다. 그 '밖'이라는 공간이 베일 같은, 막 같은 질감을 가지고 그것을 돌파하는 것이 괴로워서 주인공은 발버둥치는데 밖으로 나가 보니 평소와 다를 바가 없고... 그것과 비슷한 느낌으로 저도 외면은 평범한 모양을 유지하고 있지만 내면은 발버둥치며 괴로워했지요.
그렇게 큐슈에 도착하니 다른 차원이거나 그렇진 않고 평범한 현실공간과 다를 바가 없었어요. 하지만 공간을 돌파하는 감각이었습니다.
인간이 죽을 때의 감각은 상상할 수 없지만 육체가 죽음으로 이행함에 따라, 의식도 그에 끌려서 죽음에 도달하는 상태는 역시 다른 공간에 돌입하는 것 같은 감각이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무능한 사람'의 6화 '증발'에서는 하이쿠 시인 세이게츠가 죽기 직전에 임종의 시를 지으라는 소리를 듣고 '어디에선가 학의 울음 들리네 안개일려나'라고 시를 외는 장면이 있는데 그것은 사실입니다만 그 하이쿠는 실제론 이전에 지은 하이쿠입니다. 그것을 죽기 직전에 읊었다는 것은 '안개'가 뇌리에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저는 그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공간이 안개로 가득차 망망하게 넓어져 삶과 죽음의 경계의 막과 같은 것을 느끼고 그것을 세이게츠는 돌파해서 에치고에서 이나다니로 증발해 왔다. 그때의 감각에 따라서 만들어진 하이쿠가 아닐까 생각해요. 그러니까 증발은 죽음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어요.

-증발에 대해선 전에 자기자신의 속박에서 해방된 자유자재의 경지라고 말씀하셨던 적이 있는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심리는 어떤 것일까요?

네, 발버둥치며 괴로워한 뒤엔 엄청난 해방감이 느껴지지요.
그것에 관해 조금 더 설명해 보자면 증발 뒤에 다른 사람을 가장해 살아간다고 해도 증발 이전의 과거가 형성했던 마음까지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지요. 하지만 증발해서 도착한 곳에서 다른 사람을 연기하고 있으니까 과거의 마음은 붕 떠버리고 다른 사람으로서의 마음도 진짜 자기자신이 아니니까 어느 쪽에도 소속되지 않고 정처가 없다는 느낌으로 붕 떠버리는 겁니다.
그 부유(浮遊)한 감각이란 것은 자신은 어디의 누구도 아니다, 거기에 있으면서도 없다. 이 세상에서 빠져나온 것 같은 기묘한 느낌이지요.
자신이라는 것은 무의식적으로 사회에 물들고 소속되고, 규정되지 않습니까. 그런 관계로서의 존재라고 흔히들 합니다만 증발은 그 관계랑 유대를 끊어버린 상태지요. 그러니 무엇에 대해서도 집착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느낌으로, 잘 설명하기 어렵습니다만, 집착하던 마음이 이 세상에서 벗겨졌다고 할까, 이탈한 것 같은 묘한 감각입니다.
모든 것이 관계가 없고, 속박할 것도 없으니 해방감으로 편한 상태가 되지만 그것은 무책임하게 해방된 것은 아닙니다.

-과거의 마음도 증발한 뒤의 다른 사람의 마음도 떠버린다면 자기동일성이나 존재기반은 어떻게 되나요?

증발한 뒤를 '허'로서, 증발 전을 '실'로 삼는 식으로 상대적으로 바라보면 그 허실의 중간에 있는 정신영역도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중간이라 어디에도 닿지 않기에 애매한 것이 아니라 궁극의 중간이야말로 상대의 한가운데에 수렴한 제로점이며, 무가 아닐까 싶어요. 완전한 무까지는 아니더라도 바로 직전의 무에 가까운 위치이기에, 그런 영역을 상정하면 그것이 존재기반이 되는 것은 아닐까요. 증발의 정신상태는 그것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어요.
큐슈를 떠돌고 있는 사이엔 가벼웠지만 증발을 중지하고 도쿄로 돌아오니 그 정신상태는 사라지고 말아서 두 번 다시 깨어나지 않았습니다만(웃음).
그걸 꽤나 후년에 종교서적 같은 것을 일게 되고나서 생각해 보니 종교 중 하나의 경지랑 비슷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더군요.

-어떤 것이죠?

예를 들면 신란은 '비승비속'으로 살았지 않습니까. 중도 아니고 속인도 아닌 중간 입장이지요. 그것은 단순히 세속적인 신분이라는 의미가 아니고 역시 중립이나 중도라는 치우치지 않는 중간 그 자체를 존재기반으로 삼았던 것이 아닐까 싶어요. 그러니까 증발도 허실의 중간이니 비슷하지 않나 싶습니다.
신란 자신은 증발자가 아니지만 그 마음은 중용이니까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고, 얽매지 않는 자유로운 경지였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과 관련이 있는데 1권의 인터뷰에서 거지가 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까. 왜 거지인가에 대한 이야기인데 거지는 거지로서의 보람이나 경쟁심이 있을까요. 무슨 목적이나 꿈이나 희망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아요. 살아 있는 의미도 뭣도 없는 것이 아닐까요. 모든 인연이 끊어져 모든 것이 무관계인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는 상태이기에 자신을 규정할 것도 없지요. 그렇다는 것은 자신에게서도 해방되어서 무사(無私)라고 할까, 무아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종교도 무아에 대해서 이야기하니 그렇게 보면 거지는 굉장하구나 하고...(웃음)
하지만 거지는 자기를 속박할 것이 없으니까 자아가 통합되지 않아 자기상실하는 면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이 종교가와는 다른 점이고 종교가는 깨달음을 얻겠다는 목적이나 구도의 정신이 버팀목이 되어서 버티고 있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거지도 증발도 종교와 통하는 것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하지만 증발을 하든, 거지가 되든 대단한 결심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그 현실에 익숙해지지 못하고 어딘가로 가고 싶다는 생각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그렇게 쉽게 실행하지는 못하지요.
그러고 보니 쓰게 선생님은 소년시절에 뉴욕행 배에 밀항하셨던 적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것에도 그런 기분이 있었나요?

아뇨, 그때는 아직 증발이란 것을 생각할 나이가 아니었지요. 14살 정도였으니까요(웃음). 그건 내면적인 것이 아닌 현실생활이 힘들어서 집에서 달아난 겁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아이라고 해도 밀항이란 발상, 잘 떠올리기 힘든데요(웃음).

그러니까 제 경우엔 평소는 겁이 많고 벌벌 떠는 주제에 외곬로 생각하다보면 과격한 행동을 저지르는 바보 같은 면이 있어요. 대부분 도망치는 것에 정열을 쏟지요(웃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쓰게 선생님께서 만화를 그리시지 않는 것도 일종의 증발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웃음).

아뇨, 만화를 그리지 않는 것은 단지 그럴 생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쓰게 요시하루 만화술'에서 작가는 자기자신의 삶을 허구화시키고 만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를 들어 취미도 없는데 분재를 하게 만든다거나 엄동설한에 강에 낚싯줄을 드리우고 낚시를 하게 한다거나.
이것도 자신의 본심과 허구의 마음 사이를 떠돌고 있는 거란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거꾸로 말하면 굉장한 결심을 하고 대단한 창작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 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자기자신의 창작화라는 것은 궁극의 창조행위란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쓰게 선생님께선 표현자로서 굉장한 곳에 도달하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웃음).

예전에 그런 이상한 소리를 했었군요(웃음).
하지만 창작한다는 행위는 작자를 허구화시키는 면이 있지요. 특히 저처럼 사소설풍으로 그리다 보면 작자상이 오해를 받아 다른 사람인 것처럼 허구화된다고 할가... 그렇게 되면 실상쪽이 사라지고 그 누구도 아니게 되어버리죠. 그 '누구도 아닌 존재'가 되기 위해서 자신을 창작화시키고 있는 걸지도요. 복잡한 이야기지만 자신을 없애는 것이 창작의 목적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합니다. 으음, 역시 이상한 소리일까요(웃음).

-'무능한 사람'의 주인공을 보더라도 돌을 주워 진열해봤자 팔릴 리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 그러고 있지요. 하지만 그런 행위를 계속하고 있지요. 그런 점에서 쓰게 선생님의 기분과 겹쳐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합니다만. 만화와 작자를 동일시하지 말라고 혼날 것 같습니다만(웃음).

분명 '무능한 사람'의 주인공에게는 그런 면도 있지만 제 자신은 일상에 있어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여유는 없어요. 항상 무슨 일이든 진지하게 허둥지둥대고 있지요.
그 '무능한 사람' 시리즈는 완결되지 않았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지요.

-그 뒤에 주인공 스케가와 스케조와 가족은 어떻게 됩니까?

...뭐 일단 결말 비슷한 것은 생각하긴 했습니다만...

-스케가와가 여행을 떠난다거나

아뇨, 그냥 그대로입니다. 조금도 변함이 없지요. 그 셋은 계속 함께 있을 겁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요.
스케가와는 자각하고 있는 인물로 설정했습니다만 그저 지금까지의 이야기에선 그의 인텔리적인 부분은 억누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작품 속에서 '일부러 골동품점을 연다든가' 하는 대사를 아내의 입을 통해서 제시했지요. 일부러, 라는 면은 있어요. 
그렇게 되면 일부러 연기를 하고 있다는 것은 역시 자신을 허구화시킨다는 의미가 되지만 스케가와 씨는 어떨런지요(웃음). 그렇게까지 극단적이 되지 않도록 헌책방 야마이보다도 좀더 똑똑한 인물로서 구상했습니다만...
야마이도 세이게츠도 증발을 실행한 과격파지요(웃음). 그에 대해서 스케가와는 절대로 실행하지 않는 인물로 그리려고 생각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음, 어렵군요(웃음).
신란 스님 정도 되는 사람도 '약간만 아파도 죽지 않을까 하는 걱정'같은 걸 했지요. 살아있는 몸은 더워하기도, 추워하기도, 배를 고파하기도 하니, 그러니까 워프를 목표로 삼을 뿐만 아니라 현실사회가 있는 것도 잊지 않는 시선을 갖는 것도, 병을 걱정하거나 하는 이야기로 설명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스케가와 씨도 그런 느낌이랄까요.

-'무능한 사람' 시리즈는 쓰게 선생님의 작품 중에서도 특히 좋아하는 사람이 많으니 부디 지금 쓰게 선생님의 감각으로 속편을 그려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쓰게, 시선을 살짝 드리우고 묵묵히 미소를 짓는다)

-약간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야나기야 주인'이나 '겐센관주인'의 주인공들도 얼굴 생김새가 현실의 쓰게 선생님과 닮지 않았나요? 특히 '겐센관 주인'에 나오는 남자는 지금의 쓰게 선생님이랑 똑같습니다(웃음).

아뇨, 그건 저랑 닮게 그린 것도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하면 정말로 닮아버리게 되었다고 할까...

뭐, 그러니까 '야나기야 주인'이든 '겐센관 주인'이든 꽤나 감정이입해서 그린 결과겠지요.

-현실이 허구에 가까워진 걸까요(웃음). 그러고 보니 '겐센관 주인'에 대해서 허구와 현실의 상관관계, 허와 실의 만남이 드라마라는 식으로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요.

네, 전생과 현세에 대한 대화나, 결말에선 허와 실이라고 할 수 있는 두 인물의 만남 등, 상대적 관계를 암시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만. 당시 제가 불안정했기 때문에 뭔가를 찾으려고 해서... 그것은 상대가 아닌 절대를 희구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것을 이미지화시켰다고 할까요.
이 현상세계는 상반된 성질이 상대적인 관계로 성립하고 있다는 식으로 인식하는 시선이 있지요. 예를 들어 플러스와 마이너스, 음과 양, 허와 실, 생과 사, 유와 무라는 식으로 서로 반대되는 성질이 비교하면서 서로를 확인한다고 하는... 어느 한 쪽만으로는 그 성질을 증명할 수 없으니까 그렇게 파악할 수 밖에 없습니다만 둘로 나누어짐으로써 온갖 오해와 혼란이 생겨나지요.
유와 무를 보더라도 유를 증명하려면 대비할 무가 필요하지요. 하지마 무는 아무 것도 없으니까 무인 것으로, 무라는 것은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없는 상대와 유를 비교할 수 없으니 유만이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그렇게 되면 유도 무도 동시에 존재할 수 없게 되어 버립니다. 그렇다는 것은 반대의 성질을 잘라낼 수는 없으니까 유와 무는 동일한 것이 되지요. 생과 사도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허와 실도 나눌 수 없는 하나지요.

-아, 그래서 그 작품의 결말에선 주인공 남자, 이게 실상이라고 한다면 똑같이 생긴 다른 남자, 이쪽이 허구로군요. 그 둘이 만나기 직전에 끝났군요.

그렇지요. 만약 만나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반대의 성질이 합체하면 상쇄되어서 제로가 되겠지요...(웃음) 그래서 그 뒤는 그릴 수가 없었습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이원대립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짝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이야기군요.

그렇게 하면 본래의 실상이 보이지 않을까요. 모든 것을 제로라고 말한다면 모조리 사라지고 말겠지만 그렇지 않고 제로라고 "파악"한다고 할까, '공(空)'이라고 파악한다고 할까...

-'증발' 속에 나오는 대사 중에 "자신을 '있으면서 없다'고 파악한다"는 대사가 있는데 그런 뜻이군요.

아까 증발자의 심리를 '거기에 있으면서, 없다' 비슷한 감각으로 말한 것도 '있으면서 없다'와 마찬가지 의미로 그렇게 파악함으로서 실상이 현현하게 되죠. 
뭔가 어려워져서 머리가 돌아가지 않습니다만(웃음). 결국 말이죠. 상대적으로 보게 되어서  본래 '있는 그대로 있는' 세계를 흐릿하게 만들고 말았지요. 인간 이외의 생물은 '있는 그대로'에 융합해서 살아가는데 인간만 이 세계를 대상화시켜, 제멋대로 보고 판단하고 인위적으로 허구화시켜 버렸습니다. 일그러진 세계로 만들고 말았지요. 그래서 전 살기 힘들어 달아나려고 했지요(웃음).
이렇게 말하는 게 폼나지만 그렇게 말할 수 없겠지요. 제 왜곡이 투영되어 허구화된 것이기도 하니까요. 제 왜곡의 크기에 비례해서 세계가 일그러진다고 할까, 한심한 이야기지요(웃음). 그래서 '전생, 현생, 내세는 오직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라고들 하지요. 제 마음에 따라 '있는 그대로'를 왜곡시키고 말지요.

-'있는 그대로'를 올바르게 파악하려면 결국 무심, 무아가 되어야겠지요.

무아 상태가 되어 자기가 사라지면 필연적으로 다른 것도 사라지게 됩니다. 자타의 분별이 없는 상태가 되어서 이 세계를 대상화시키지 않고 허구화시키지도 않은 채 '있는 그대로'를 실감하고 체득화하는 것이 깨달음의 경지겠지요.
전에도 이야기했듯이 출가하는 것은 일반사회의 모든 것을 버리고 관계를 끊고 이름까지 계명으로 바꾸고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지요. 증발처럼(웃음). 하지만 행방불명이 되지 않고, 집단생활을 하고, 절이라는 공인된 세계에 소속되어 있어선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을 리가 없어요. 증발을 형식화한 것에 지나지 않지요.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은 단지 이름과 직업을 바꾼 다른 사람이 아니라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마음, 그것이 다른 사람이 된다는 의미니까 절에 취직하는 것 같은 출가론 안 됩니다.
그러니까 절에서도 증발해서 거지가 되는 것도 무모하다고만 할 수 없는 것이고 오히려 "비승비속"이라는 입장이야말로 깨달음의 지름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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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알음이무 2009/02/02 23:51 # 삭제 답글

    저도 종교서적을 꽤나 읽었다고 말할수 있지만 이번 쓰게 요시하루 작가의 인터뷰는 너무나 강렬하고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는군요. 나중에 다시 또 읽어 봐야 겠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 대산초어 2009/02/03 11:28 #

    옮기기 수준이 저질-일명 대산초어 퀄리티-인데 잘 보셨다니 다행입니다.
  • 효우도 2009/02/03 12:36 # 삭제 답글

    쓰게 요시하루도 독특한 세계관과 감수성을 지니신 작가분이네요.
  • 대산초어 2009/02/03 20:47 #

    작품만 봐도 그렇지요, 뭐...
  • 2009/02/04 06:46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대산초어 2009/02/04 17:11 #

    감사금지 조항은 영원불멸입니다 ㅎㅎ.
  • 뭉민 2009/02/04 16:12 # 삭제 답글

    제가 읽어본 것 중에 가장 이상한 예술론이었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 대산초어 2009/02/04 17:11 #

    자기세계가 너무도 확고하죠 ㅎㅎ.
  • scarab 2009/03/26 15:18 # 답글

    문뜩 생각나서 왔다 한방 먹고 갑니다....
  • 대산초어 2009/03/26 19:13 #

    참 인상적인 인터뷰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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