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 감독 자서전 '꼴찌를 일등으로' 야구관련


장면 1
SK의 중간계투 윤길현은 경기 중에 욕을 했는데 SK와 김성근 감독에게 온갖 비난이 다 쏟아졌다. 김성근 감독은 공식 기자회견을 열어서 사죄하고 자진 결장했다.

장면 2
기아의 선발투수 서재응은 정근우의 투수 땅볼을 처리할 때 정근우가 자신을 쳐다본단 이유로 '뭐라고 ㅅㅂㄻ'라는 욕을 전국으로 생방송되는 가운데에 시전했다. 서재응은 까였지만 조범현 감독에게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 비슷한 두 사건에 확연히 다르게 적용되고 있는 이중잣대는 어떤 흥미로운 시사점을 제시한다. 어떤 선수가 망나니짓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감독이 비난을 받는 케이스는 김성근 감독을 제외하고는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는 이 두 사건을 통해 김성근 감독의 대중적인 이미지를 엿볼 수 있다. 즉, 김성근 감독은 유일하게 구단=감독 공식이 성립하는 감독이라는 점이다. SK 와이번스는 누가 뭐래도 대중들에게 있어선 김성근 감독의 팀이고, 그 말고 다른 어떤 감독도 팀 그 자체와 맞먹는 존재감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김성근 감독의 자서전 '꼴찌를 일등으로'는 이런 착시현상이 왜 일어나는가에 대한 단초를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은 김성근 감독의 인생역정을 감독 스스로의 입으로 풀어내고 있는 책인데 책의 성격상 어느 정도 자화자찬이 들어가 있기도 하지만 심하게 거슬릴 정도는 아니며 감독의 야구 철학이나 인생관 등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서 흥미롭다. 이 책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끊임없이 선수단의 전권을 장악하고 프런트의 입김을 배제하려고 하는 시도와 선수들의 아버지가 되는 것을 기꺼이 수용하는 자세에 대한 언급이다.

사실 장면 1에서 특히 이상한 것은 김성근 감독이 실제로 사과를 했다는 점이다. 대중들의 비난도 이상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였다는 것은 정말 이상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상술했듯이 그는 선수들의 아버지가 되는 것을 거리끼지 않는 사람이다. 아이가 잘못하면 원래 부모가 사과하는 법 아니던가. 그에게 있어 자신이 감독을 맡고 있는 선수단은 자신의 가족(정확하게는 아들들)과 마찬가지다. 그가 경기에서 지고 난 후에 선수 탓을 좀처럼 하지 않는 것도 이런 관점에서 보면 납득이 된다. 그리고 프런트와 끊임없이 충돌이 일어나고 SK팬들의 원성이 나올 정도로 프런트가 감독을 감싸주지 않는 자세로 일관하는 것도 이런 관점에서 어느 정도까지 이해할 수 있다. 그는 SK선수단의 가장이므로 타인이 자신의 가정에 왈가왈부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며, 따라서 프런트와의 관계도 근본적으로 원만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자세는 시대의 흐름과는 잘 맞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타팀 팬이나 야구기자 중 김성근 감독을 옹호하는 사람들도 '그의 야구를 좋아하진 않지만...'이라는 수식을 붙이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은 김성근 감독의 자세가 '올드스쿨'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는 느낌이다. 시대의 흐름 상 프런트의 위상은 높아질 수밖에 없고, 또 '야구의 신'이라는 희대의 카리스마 감독이 있어야 원활하게 돌아가는 시스템이라면 그 시스템은 낙제라고 할 수 있다. MLB에선 이미 감독은 매니저의 위치에 있으며 선수 구성이나 선수단 관리는 단장의 역할로 넘어갔다. 한국 프로야구에서도 재정관리 등 경영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런 흐름이 시대의 요구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아쉬운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올드스쿨' 감독이 지휘하는 팀이 가장 창의적이고 수준 높은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달리 말해 김성근 감독의 야구는 아직 프로의식이 많이 부족하고, 인재의 풀이 좁은 한국야구에 최적화된 야구란 의미도 된다. 따라서 김성근 감독의 야구를 폄훼하거나 욕할 것이 아니라 이것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 된다. '야신'이 없더라도 '2007~2009 SK 와이번스'를 능가할 수 있는 팀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 말이다. 이 고민을 해결하려면 야구 인프라, 팬들의 의식, 선수들의 자세 등 많은 것이 바뀌어야 할 것이고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느낌이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김성근 감독 개인을 들여다 보는 데에도 도움이 될뿐만 아니라 한국야구의 현재위치나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도 생각할 거리를 풍성하게 던져주는 책이다. 김성근 감독을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한국야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일독의 가치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김성근 감독이 자서전뿐만 아니라 더 전문적인 야구관련 저술을 많이 남겨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덧, 난 쥐빠지만 2002년 기적의 시리즈에선 군ㅋ대ㅋ에 있었다. 그것도 토나오는 이등병... 따라서 김성근 감독에 대해서 불필요한 환상이나 마음의 빚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름 객관적으로 적으려고 노력했다능. 스포츠 밸리로 보내긴 뭐해서 도서 밸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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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Grard 2009/10/24 02:03 # 답글

    ..."다리도 길고 잘 생긴 내가 왜 이렇게 험상궂은 노인이 됐을꼬..." 에서 완전 뿜었지요...
  • 대산초어 2009/10/24 17:05 #

    하하, 사진 보니까 훤칠하시긴 하더군요.
  • 나름대로 2009/10/24 04:40 # 답글

    삼성이 우승할때 전 전라도 고참의 심기를 살피면서 좋아했던 기억이 나네요...^^;

    단장이 주도하는 야구단이 되려면 먼저 재정자립도가 우선되어야 할텐데 역시 아직은 요원한거 같습니다.
    (일단 재량껏 돈을 굴릴수가 있어야 머니볼이든 뭐든 할테니...)
  • 대산초어 2009/10/24 17:07 #

    네, 그렇죠. 일단 구단 수입만으로 운영을 할 수 있어야...
  • hansang 2009/10/24 17:00 # 답글

    장면 1은 사실 국내만의 특이한 선후배관계탓에 사건이 커진거죠. 윤길현이 너무 대선배에게 행한 행위라 더 문제가 된 것이거든요.
  • 대산초어 2009/10/24 17:04 #

    근데 아무리 그래도 감독이 사과하는 건 좀 이상하죠.
  • skeptics 2009/11/23 16:38 # 삭제 답글

    위의 두 장면과 비슷한 장면들이 지난 세시즌의 SK에게는 다반사 여서. 모.. ㅎㅎㅎㅎ
    모. 일단 윤길현선수의 사건에는 그 전에 있었던.. 장면들이 많이 삭제되어 회자되는게 오히려 좀 아쉽지요. 그 삼연전에서.. 빈볼성몸쪽공과 몸에 맞는 볼. 거기에 이어진 캐넌에의 헤드샷이 대미를 장식함으로써.. 그 당시 SK의 팀 분위기는 정말 독이 바짝 올라있었다고 봐야 할듯.. 오히려 타자들이.. 그렇게 맞아 나가는데. 투수들의 빈볼이 없었다는 것에 대해서.. 그 당시.. SK가 가지고 있던 여론에의 트라우마가 좀 무서운 순간이었습니다.

    제가 오히려 화가 났던 부분은 모 기아와의.. 마지막 7게임은 논외로 하고요.. (오심이 반복되면 편파판정이라고 이름을 달리불려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 게임을 보면서. 미묘하게.. 어 이상하다.. 특히 이용규선수의 개구리번트는.. 모 이걸 화인플레이 어드벤테이지.. 라구 해야하나.. 푸하하하 ). 두산과의 게임에서 나주환선수의.. 행동에 이은.. 용덕환포수의 .. 패대기질을 보면서.. 좀 많이 억울했습니다. 그 이전의.. 두산 투수들의.. 어이없는 몸쪽공 씨리즈.. 사건후 용덕환선수의.. 공패대기질은 간데 없고.. 나주환선수에게의 열폭이라.. 푸하하.. 심지어는 고관전부상이라는 기사가 달렸는데도.. 악풀이 줄을 이어주시더군요.

    제가 생각하는 공정한 세상은.. "기회는 균등하게 평가는 공정하게".. 인지라.. SK를 보면서. 전 기분이 참 좋습니다... 그 당시 두산 선수들의.. 심정이 이해는 가지만.. 그 후에.. 그 일에 대한 전혀 아무런 언급이 없는 것을 보면서. 하하하하하.. "사고친 새끼는 시침뚝이라는".. DD의 랩이 생각나더군요
  • 대산초어 2009/11/24 19:02 #

    원래 이미지(라고 쓰고 색안경이라고 읽는다)라는 게 제일 무서운 거 아니겠습니까. 용덕환은 패대기친 후에 사과라도 했는지 궁금하군요. 코치에 맞을 뻔했다고 들었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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