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다 유미, 담배 같은. 만화관련

만화를 읽는 것을 의미하는 말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만화는 볼 수 있고, 즐길 수 있고, 감상할 수 있고, 하여튼 뭐 그렇다. 그럼 만화를 피운다는 어떨까? 정상적인 한국어 화자라면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할 거고, 사려 깊은 사람이라면 말이 헛나왔다거나 오타가 아닐까 생각할 거고, 계몽적인 사람이라면 오류를 고치려 들 것이며, 모든 것에 의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사전에서 "피운다"의 용례를 찾아볼 것이다. 하지만 난 타다 유미의 만화를 보면 그녀의 만화를 '피우는 만화'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내 한국어 능력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 모양이다.

타다 유미의 만화를 처음으로 읽었을 때, 난 레이먼드 카버를 떠올렸다. 작품의 길이는 짧고, 묘사는 건조하고, 무대는 미국이며, 분위기는 우울하고, 심지어 '클레어' 같은 작품에는 알콜 중독자도 나오지 않았던가. 스타일리시한 그림은 인상적이었지만 왠지 폼을 잡는 것 같기도 하고 해서 마음에 쏙 들진 않았지만 다른 작품들도 계속 읽기로 했다. 어차피 레이먼드 카버를 좋아하긴 하니까. 그런데 계속 읽다 보니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읽다 보면 괜시리 담배를 피우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당시의 나는 아직 담배를 끊지 않았기 때문에 '한 대 피울 때가 되었나 보다'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나가서 담배를 피웠다.

담배를 끊고 나서 며칠 지나고 별 생각없이 자기 전에 타다 유미 선집 4권인 '재가 될 때까지'를 읽었을 때에야 난 왜 그런 느낌을 받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건 만화를 가장한 담배였다. 작품집은 담배 한 갑이고, 단편들은 담배개비들이었다. 'Love me, please love me'와 '이중성'에서 등장하는 아이크와 흑발의 친구의 관계는 담배를 끊고 싶어 하지만 결국 끊지 못하는 가련한 흡연자와 담배의 관계였고, '재가 될 때까지'에서 카렌을 기다리는 존의 심정은 담배를 피울 수 없는 상황에서 담배를 피우고 싶어 참지 못하는 흡연자의 심정이었다. 또 미끈미끈하고 길쭉한 인물들은 또 어떤가. 그야말로 담배개비 같지 않나.

멍청한 금단증상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난 도저히 타다 유미의 만화와 담배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가 없다. 난 나처럼 뒤늦게 타다 유미의 만화를 접하는 사람에게 그 만화를 '피워보라'고 권하고 싶다. 우울하거나 외롭거나 고민이 많을 때 피운 담배처럼, 잠시 동안 씁쓸한 위안을 주는,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타다 유미의 만화는 그런 만화가 아닌가 싶다. 생각해 보니 레이먼드 카버도 골초였지. 내가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실은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

-아, 허세 쩌네요 ㅋㅋ. 담배랑 타다 유미 만화의 공통점을 적는 게 당초의 컨셉이었는데, 쓰다가 허세가 들어가게 되자 '아예 막 나가 봐?'란 심정이 되어서 싸지른 글이 이 모양입니다. 무슨 싸이월드 가식글 같네요. 그런 글을 적어본 적이 없어서 재미있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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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evax 2009/10/29 14:43 # 답글

    담배는 피우지 않지만 저도 한번 이 작품을 피워보겠습니다^^;

    마지막 컷 느낌이 아주 좋네요
  • 대산초어 2009/10/29 15:35 #

    네, 기본적으로 좋은 작품이니 한번 보세요^^.
  • 흑설공주 2009/10/29 14:49 # 삭제 답글

    읽다가 중간에 잠깐 홈페이지를 잘못 들어왔나 했어요 ㅎㅎ
  • 흑설공주 2009/10/29 14:51 # 삭제 답글

    이렇게 쓰고 제 닉네임 보니 민ㄴ망하네여 ㅋㅋ
  • 대산초어 2009/10/29 15:38 #

    ㅋㅋㅋ. 이런 글 한 번만 더 썼다간 블로그 망할 것 같습니다.
  • M 2009/10/29 15:09 # 삭제 답글

    진짜 조금 오그라들었지만 읽다보니'작정했군' 이라고 생각했네요
  • 대산초어 2009/10/29 15:38 #

    예리하시군요 ㅎㅎ. 의도를 알아채 주셔서 감사.
  • 흑설공주 2009/10/29 15:49 # 삭제 답글

    작정한 간지만화와 잘 맞는 거 같기도.........? 그림이 정말 예쁘잖아요.
  • 대산초어 2009/10/29 23:14 #

    예쁘기도 하고 나른한 매력이 있는 것도 같고... 어쨌든 마음에 들더군요.
  • 미본 2009/10/29 15:56 # 답글

    글 좋은데요 ^^ 배경이 없는 간결한 컷들인데도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이 좋네요.
    저도 조만간 이분의 만화를 좀 피워봐야 겠습니다. -ㅅ-
  • 대산초어 2009/10/29 23:16 #

    부끄럽습니다...
    시공사가 아닌 다른 곳에서라도 재판이 나와줬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요즘 환율로는 구입이 좀 부담스러워서...
  • 2009/10/29 17:26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대산초어 2009/10/29 23:18 #

    네, 재미있는 경험이니 기회가 되면 꼭 보세요.
  • 나름대로 2009/10/29 17:31 # 답글

    허세도 허세 나름...^^;
    저도 과도한 기교글은 꺼리는 편이지만 핵심만 제대로 짚는다면 괜찮더군요.
  • 대산초어 2009/10/29 23:19 #

    핵심을 제대로 짚은 것 같지 않아서 부끄러움이 증폭 중입니다...
  • MIYO 2009/10/29 18:24 # 답글

    저도 요즘 타다 유미를 읽고 있는데, 담배에 비유하시는 게 신기해서 굉장히 흥미롭게 읽었네요... ^^
    비흡연자이지만 '피운다'라는 표현이 참 적절한 것 같습니다. 이 작가의 스타일이랄까 일정한 패턴이 딱 그런 느낌이네요. ㅎㅎ
  • 대산초어 2009/10/29 23:21 #

    아, 읽고 계셨군요.
    근데 너무 담배에 끼워 맞춰서 읽다 보면 왠지 좀 코믹해져요.
    연애 실랑이도 그냥 다른 담배 피울까 고민하는 걸로 보이고...
  • 달리 2009/10/29 18:54 # 삭제 답글

    순간 허세쟁이 하*키가 떠올랐심...^^
    그런데 이 분 만화는 못 보고 일러스트만 봤는데 만화 느낌이 괜찮네요.^^
    만화를 구할 수 없는 게 아쉽네요...
  • 대산초어 2009/10/29 23:22 #

    그러고 보니 X루키 선생님이 레이먼드 카버 번역도 하신 적이 있지요.
    세상만사 다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ㅎㅎ.
  • Vicious 2009/10/29 19:36 # 답글

    전투요정 유키카제 애니메이션으로 역류해서 입문한 작가인데, 유미리 뺨때리는 인생역경과 정작 미국땅은 밟아본적도 없다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더군요.
  • 대산초어 2009/10/29 23:23 #

    이 선집이 나올 때엔 이미 아메리카를 정ㅋ벅ㅋ하셨다고 하더군요.
    선집 뒤에 작가 인터뷰가 있는데 진짜 재미있었습니다.
  • 123 2009/10/30 12:06 # 삭제 답글

    타다유미 좋아하시면 트루블루는 결코 바래지 않는다.도 꼭 보세요.
    집나온 미국 트럭운전수 이야기인데 왠지 좋아하실듯...

  • 대산초어 2009/10/31 18:22 #

    추천 감사합니다. 해외주문 해놓은 것도 밀려있어서 입수는 언제가 될지 모르겠네요...
  • 페코 2009/10/30 17:08 # 답글

    전 오노 나츠메의 낫심플을 보면서 타다 유미에게 영향을 받았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낫심플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읽다 중간에 덮어버렸지만...-_-;
    (타다 유미는 좋아하는데;;;)
  • 대산초어 2009/10/31 18:23 #

    아, 오노 나츠메 읽을 때는 의식을 못 했는데 생각해 보니 느낌이 비슷하군요.
  • 2009/11/01 21:07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대산초어 2009/11/03 22:44 #

    글 맺는 부분만 보셔도 손발이 오그라드시지 않습니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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