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읽만+ 이비쿠스 만화관련


이비쿠스 (파스칼 라바테, 국서간행회)

  어느날, 파스칼 라바테는 벼룩 시장에서 톨스토이의 소설을 한 권 구입했다. 그는 그게 당연히 레프 톨스토이의 소설인 줄 알았는데 알고 봤더니 알렉시스 톨스토이라는 작가의 소설이었다. 김이 빠진 그는 그 소설을 읽지 않은 책 더미에 함께 쌓아 놓았는데, 우연히 다시 그 책을 읽고 삘 받았는지 그 소설을 원작으로 한 만화를 그리기로 했다. 그 소설의 제목은 '이비쿠스'였다.

  파스칼 라바테는 '이비쿠스'를 만화화한 이유에 대해 '평범한 사람이 끈질기게 살아남는 이야기라 마음에 들어서'라고 말했다. 이 만화는 격동의 러시아 혁명기를 배경으로  전직 회계사 네브조로프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그리고 있다. 파란만장한 인생이라지만 그가 혁명의 전면에 나서서 치열하게 투쟁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는 혼란스러운 시대에서 항상 잽싸고 약삭빠르게 도망치기만 한다. 돈을 훔치고, 도박장을 운영하고, 약과 여자에 탐닉하고, 첩보기관의 끄나풀이 되고, 터키로 망명하고, 포주가 되고...... 읽다 보면 실소가 나올 정도로 비열하게 살아간다. 네브조로프는 그가 터키의 한 여인숙에 묵었을 때, 그 방구석을 기어다니던 바퀴벌레와 하등 다를 바가 없게 느껴진다.

  주인공답지 않은 네브조로프의 화려한 활약상을 감상하고 있다 보면 경멸과 함께 측은함이 떠오른다. 그의 비열함은 단지 그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그의 비열함을 경멸할 수 있는 것은 내가 그와 같은 비참한 상황에 처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이렇게 경멸과 측은함이 한데 뒤섞여 있을 때 펼쳐지는 마지막 파트의 바퀴벌레 레이스(비유가 아니다!)는 우리가 실은 그토록 경멸하던 바퀴벌레와 별 다를 바가 없다는 일종의 냉소로 느껴진다. 파스칼 라바테의 흑백 표현주의 영화를 연상시키는 그림은 묘한 유머 감각을 포함하고 있어서 그 냉소를 더욱 싸늘하게 만든다.

  이 작품의 한국어판은 현실문화연구라는 출판사에서 총 네 권 중 두 권만이 나온 채로 간행이 중단되었다. 하지만 국서간행회라는 일본의 출판사가 BD컬렉션의 첫 작품으로 출간해준 덕분에 뒤늦게나마 뒷부분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국서간행회에서 낸 '이비쿠스'는 총 네 권으로 된 '이비쿠스'를 한 권으로 묶은 완전판으로, 번역자인 후루나가 신이치 씨의 상세한 해설이 포함되어 나처럼 일본어를 읽을 수 있는 BD독자라면 구입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 출판사에서 에마뉘엘 기베르와 크리스토프 샤부테의 작품도 낼 예정이라고 하니 기대해 봐도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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