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것의 실체 '아돌프에게 고한다' 만화관련

"인간이란 존재는 몇 백 년 몇 천 년이 지나도 어딘가에서 늘 끔찍한 전쟁을 벌이죠. 도무지 끝이 없어요. 나도 말릴 도리가 없구요."
"끝이 없다구? 왜 그렇지?"
"종교니 신앙이니 모두 인간이 만든 것이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모두 다 옳죠. 그래서 옳은 것 끼리의 싸움은 막을 도리가 없는 거예요."
-불새 태양편-


어렸을 때부터 모든 생명이 모두 가치있다고 생각했던 데츠카 오사무는 2차세계대전의 참상을 겪으면서 모든 전쟁을 그리고 전쟁을 만들어 내는 모든 것들을 증오하게 되었다. 그는 왜 전쟁이 일어나게 되는가를 생각했으며 그것에 대한 나름의 답을 내놓게 되었다. 그가 생각했던 전쟁이 일어나는 이유는 정의였다. 결국 다 인간이 만들어낸 것에 지나지 않는데 자신들이 만들어낸 정의를 남에게 강요하기에 전쟁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2차 세계대전이나 냉전시대에 있어서는 이데올로기가 전쟁의 중요 요소였기에 수긍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 '아돌프에게 고한다'는 이 전쟁에 있어서 정의란 것의 역할을 강도높게 비판하고 있다. 이것은 3명의 아돌프에 관한 이야기다. 고베에 사는 일본인 혼혈인 독일 소년 아돌프 카우프만, 그의 친구인 유대인 아돌프 카밀, 그리고 악명높은 아돌프 히틀러 이 3 아돌프와 이 사건의 기록자인 도게 소헤이가 이야기의 중심이 된다.

도게는 베를린 올림픽의 취재차 독일에 왔다가 유학중인 동생 이사오에게서 연락을 받게 된다. 그러나 동생을 찾아갔을 때에 동생은 이미 싸늘하게 식은 몸이었다. 그는 동생이 자신에게 전하려고 했던 것이 어떤 서류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서류를 손에 넣게 된다. 그 서류는 히틀러가 1/4유대인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내용이었다. 이 서류덕에 그는 일본과 독일의 공작원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고 결국 이 서류를 아돌프 카밀에게 맡기게 된다.

아돌프 카우프만과 아돌프 카밀은 어렸을 때에는 좋은 친구였지만 카우프만이 독일로 불려가 아돌프 히틀러 슐레(학교)에 진학하게 되자 사이가 멀어진다. 광기의 시대속에서 카우프만은 점점 나치스가 되어가고 카밀의 아버지를 죽이게 된다. 히틀러의 눈에 들어 출세 가도를 달리지만 히틀러의 롬멜을 죽이라는 지시를 거부하여 한직으로 밀려나고 만다. 결국 그는 장교를 그만두고 게슈타포가 되는데 그의 첫 임무는 일본에 가서 예의 서류를 확보하라는 것이었다. 그는 필사적으로 그 서류를 확보하나 막상 그 서류가 확보되자 히틀러는 죽어있었다.

전쟁이 끝나고 유대인은 이스라엘을 건설한다. 그리고 팔레스타인인들을 무참히 학살한다. 아돌프 카우프만은 전락해서 팔레스타인 게릴라에 참가하게 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아돌프 카밀은 이스라엘 군의 장교가 되어 팔레스타인인들을 학살하며 그 와중에 카우프만의 아랍인 아내와 아이도 말려들어 죽게 된다. 이에 분노한 카우프만은 '아돌프에게 고한다'라는 대자보를 붙여 아돌프와 일대일로 결판을 내기로 한다. 그리고 카밀의 손에 의해 죽는다. 시간이 지나 도게는 이 이야기를 책으로 쓸 결심을 하고 그 책의 이름을 '아돌프에게 고한다'라 붙이고 카밀의 묘를 참배한다.

이야기를 너무 간추려버려 전달이 잘 안되리라 생각하지만 이 작품은 정말 보지 않으면 설명이 안 될 그런 작품이다. 모든 허구는 사실과 교묘히 혼합이 되어있으며 인물들의 관계는 복잡하기 그지 없다. 오기선생, 라무제이, 카우프만영사, 유키에, 로자 베버, 램프, 엘리자 등등 수많은 캐릭터들이 플롯에 의하여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간추리기가 내 능력으로는 매우 벅차다.

가장 큰 축을 이루는 것은 아돌프 히틀러의 사상이다. 이 사상은 미쳐있다. 어찌 인간에게 열등과 우등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히틀러가 미쳐있기에 이런 사상을 만들었을까? 아니다. 미쳐서 이런 사상을 만든게 아니라 이런 사상을 믿고 있기에 미친 것이다. 이것은 아돌프 카우프만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는 카밀을 미워하게 될까바 독일에 돌아가지 않으려하는 마음 상냥한 소년이었다. 그러나 막상 그에게 그 사상이 주입되자 그는 광기에 휩쓸리고 만다.

이것은 카우프만이 카밀의 아버지를 처형하는 장면에서 극명히 드러난다. 그는 나치스 간부로서의 자질을 시험당하게 되는데 이 시험은 자신의 손으로 유대인을 처형하는 것이었다. 그는 카밀의 아버지를 죽이고 토한다. 그러자 입회인이 이렇게 말한다. '괜찮아. 익숙해지면' 그리고 그는 나머지를 아무렇지도 않게 죽인다. 이 장면에서 데츠카 오사무가 말하려했던 것은 아마 부자연스럽고 광기에 찬 사상이라고 해도 익숙해지면 당연한 것이 된다는 것이었으리라.

이 '정의'에 익숙해져버린 카우프만은 브레이크를 잃어버린다. 이제 그에게 아리아인이 가장 우월한 존재라는 명제는 의심의 여지없이 참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스꽝스런 일이 발생한다. 그는 순수한 아리아인이 아니다. 그러기에 그는 고통을 겪기 시작한다. 히틀러도 마찬가지다. 그 미친 사상을 만들어낸것은 자신이지만 자신의 1/4은 그 '열등한 쓰레기' 유대인이지 않은가? 그 둘은 똑같이 딜레마에 허덕이게 된다. 그리고 함께 미쳐간다.

히틀러는 결국 파멸하고 카우프만은 전락한다. 이제부터가 정말 이 만화의 진면목이라 할 수 있겠는데 이번엔 유대인이 가해자가 되버리고 마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게 된다. 심지어 나치스보다 더욱 잔혹하다는 보너스가 붙어서 말이다. 결국 카밀의 손에 카우프만의 처자가 살해된다. 하지만 이것을 자업자득이라 부를 수 있겠는가. 없다. 모든것은 비극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비극을 낳는 것은 무엇인가?

카우프만의 아내는 그의 과거 이야기에서 히틀러의 사상을 듣고 이렇게 반응한다. "그거 참 좋네. 그런 사상은 아이들에게 교육시켜서 유대인을 향한 적대감을 고취시켜야 해."하고 말이다. 정의란 것의 실체를 폭로하는 장면이라 할 수 있겠다. 결국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사상이 익숙해 짐으로써 정의가 된다는 정의의 부당성을 그리고 그 정의가 전쟁의 도구가 된다는 점을 데츠카 오사무는 고발하고 있다.

마지막에 도게가 '아돌프에게 고한다'란 제목의 책을 들고 와서 카밀의 유족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정의란 것의 정체에 대하여 아돌프의 자손들이 조금이라도 생각해주었으면 해서" 책을 쓰게 되었다고 말이다. 정의란 것이 존재하는 한 인간의 역사에서 전쟁이 사라지는 일은 없겠지만 새로운 세대에서는 가능했으면 하는 희망 혹은 바람과 함께 기나긴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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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돌프에게 고한다' 한국어판 발매정보 2009/10/10 10:35 #

    ★기본 정보★ 테즈카 오사무 지음, 장성주 옮김, 세미콜론 펴냄 2009년 10월 14일 발매 / 각권 250쪽 내외, 반양장 / 각권 9,000원(300개 한정생산 박스세트 45,000원) -제1권 / 264쪽 / ISBN-10 : 8983719877 / ISBN-13 : 9788983719874 -제2권 / 256쪽 / ISBN-10 : 8983719885 / ISBN-13 : 9788983719881 -제3권 / 276쪽 ...... more

덧글

  • 글로리ㅡ3ㅢv 2005/02/19 09:02 # 답글

    이 만화 저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블랙잭님의 글을 읽다보니 꼭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자신에게 지나친 관대함을 가진 일본인의 눈으로 본 다른 이의 역사에 대한 비판이라 보는 내내 무언가 새로운 감상이 무럭무럭 피어오를지도...
  • 블랙잭 2005/02/19 11:37 # 답글

    '자신에게 지나친 관대함'은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만화입니다.
    글에서는 쓰다가 삭제했지만 일본도 그의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일본작가 작품에서 중국인을 참수하는 일본군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습니다만
    초반에 바로 등장하더군요.
    그리고 게슈타포보다 일본의 특별고등경찰의
    고문이 배는 더 잔혹합니다.
    이런 식으로 나름대로 균형을 잡고 있습니다.
  • selpen 2005/02/20 01:47 # 답글

    오랜만에 들립니다^^ 계속 정력적으로 장문을 토해내시는군요..
    신기해라.. 앞으로도 기대만땅~
  • 블랙잭 2005/02/20 12:03 # 답글

    selpen님// 정력젹인게 아니고 단지 할 일이 없는 겁니다-.-...
  • 잠본이 2005/02/21 23:52 # 답글

    옛날에 스콜피온이란 괴이한 회사에서 해적판이 나왔었는데 그때 제목이 무려 '제3제국 비밀경찰 게쉬타포'였습니다. 번역이 개판이라 결국 다른 사람에게 넘기긴 했지만 끝까지 나왔다는 게 참으로 놀라웠지요.

    파란의 운명을 겪는 주인공들보다 더 엄했던 건 일본과 독일 양쪽의 비밀경찰로 나와서 180도 다른 결말을 맞는 햄에그와 램프의 처지랄까...(햄에그는 거지꼴이 되어 미쳐버리지만 램프는 무려 자기 손으로 히틀러를 처단하는 멋진 역할을 맡아버리는;;;)

  • 잠본이 2005/02/22 00:06 # 답글

    아무래도 전체 줄거리는 독일인과 유대인 사이의 문제에 집약되어 있어서 일본은 '관대하게' 묘사되지는 않지만 비중이 좀 작게 나온다는 느낌이었죠. (도우게도 동생을 잃고 고생을 많이 하지만 뒤로 갈수록 해설자 내지 조역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좀 애매하고.) 물론 도우게 동생의 은사가 특고에 글려가서 모진 고문을 받는다던가, 나라에 충성하는 장교 아버지와 전쟁을 끝내기 위해 적국 스파이 노릇을 했던 그 아들의 갈등을 그린다던가 하는 식으로 일본 내부의 문제에 대해서도 예리하게 파헤치고 있습니다.

    별 상관없지만 ova판 <마그마대사>에서 도우게가 일본 정보국 국장이라는 역할로 특별출연한 거 보고 두바퀴 반 굴렀던 기억이... (공권력 때문에 물먹은 캐릭터를 공권력의 대표로 출연시키다니;;;)

    그나저나 도우게가 잠시 들렀던 그 바닷가 마을의 술집 여주인이 그를 쫓아서 올라가려다 다시 고향으로 발길을 돌릴 때 택시를 타는데... 운전수 얼굴이 아무리 봐도 나이든 테즈카 오사무 본인 같더군요. ;)
  • 블랙잭 2005/02/22 01:22 # 답글

    그렇죠. 혼다가의 비극. 혼다 대령의 동생이 게이샤에 공산주의자였고 아들은 그 숙모의 사상을 이어받아 러시아 스파이 람제이에게 정보를 흘리죠. 나중에 이것이 들통나자 아버지 혼다 대령이 아들을 쏘아 죽이는데 비극중에서도 상비극입니다. 하긴 이 작품에서 행복해진 사람은 아무도 없군요.
  • 블랙잭 2005/02/22 01:23 # 답글

    그리고 원래 히틀러 타살설이 있어서리 그 역할을 램프에게 절묘하게 떠넘겨버린 데츠카 선생의 센스엔 두 손을 들었습니다.
  • 잠본이 2005/03/18 22:58 # 답글

    어찌보면 작가가 램프의 손을 빌려 히틀러를 단죄한 걸지도 모르겠군요. ;>
  • 블랙잭 2005/03/18 23:06 # 답글

    음, 그렇게도 볼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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