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읽은 만화들 37 만화관련

KISS XXXX 4~5/ 쿠스모토 마키/ 이메일

"연애에 대한 환상을 부풀리는 만화" 'KISS XXXX'를 결국 다 읽었습니다. 연애둔감증에 걸리신 분들께는 좋은 치유제가 될 만화인 것 같습니다. 지금 나오고 있는 '쿠스모토 마키 선집'의 3, 4권이 'KISS XXXX'라니 아무래도 선집을 다 모으게 될 것 같네요. 중간에 나오는 '루리도'를 보고 열라 웃었습니다. 루 리드겠지... 해적판이 뭐 다 그렇지... 하하하하

쿠스모토 마키 선집 2/ 쿠스모토 마키/ 시공사

'TV eye'연작과 '말라버린 태아'를 수록하고 있는데 'KISS XXXX'보다 'K의 장례행렬'에 더 가까운 분위기네요. 즉, 난해하고 어둡고 독특하다는 이야기... 개인적으로는 스타일이 적당히 마음에 들어요. 쿠스모토 마키의 빠가 되기는 어려울 것 같지만 그래도 앞으로도 계속 관심을 가지게 될 듯.

이무리 2/ 미야케 란죠/ 중앙북스

'이무리' 2권을 보는데 작가의 목소리가 들리더군요. "이제 대충 세계관이랑 설정은 이해되지? 그럼 간다." 아무래도 지금까지는 워밍업이었던 것 같고, 후반부에 지금까지 근질근질했다는 듯이 스토리가 급전개... 세계가 매력적인지는 솔직히 좀 모르겠지만 흡인력은 있는 편이라 계속 보게 될 것 같습니다. 왠지 앞으로 엄청 재미있어질 것 같은 느낌인데, 이런 느낌이 또 삑사리가 나는 경우가 많아서 단정은 못 짓겠네요.

블랙 아웃/ 이세형, 하오/ 중앙북스

이것도 야후 연재 웹툰인데, 과학수사대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작가들이 자료조사 같은 데 공을 많이 들였다는 티는 역력한데 아쉽게도 스토리 자체는 노력에 비해 재미있지는 않네요. 추리소설이나 영화를 거의 보지 않은 저도 범인이 빨리 눈에 띠어서 그리 긴장감있게 보지 못했습니다. hansang 님 같은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어지네요.

sitting in the balcony/ 타다 유미/ 하이북스

일단 이것으로 제가 접할 수 있는 타다 유미의 작품은 전부 접한 셈이네요. 다른 작품집과 마찬가지로 재미있게 봤고, 지금까지 읽은 것들을 정리해서 뻘글이나 하나 싸려고 합니다. 하지만 난 글을 못 쓰잖아? 안 될 거야, 아마...

러프 6/ 아다치 미츠루/ 대원

애장판의 완결편입니다. 많은 분들이 아다치 미츠루 만화 최고의 엔딩으로 꼽는(전 아닙니다 ㅎㅎ.) 마지막 장면은 다시 봐도 인상적이네요. 작품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니 만큼 덧붙일 말은 없고, 애장판의 전체적인 퀄리티에는 만족한다는 말씀만 드립니다.

대결! 궁극의 맛 1~2/ 츠치야마 시게루/ 중앙북스

하하하, 이 만화 재미있네요. 표지랑 타이틀만 보면 망한 괴작의 포스가 풍기지만 실제로 읽어보면 괴상함과 재미를 동시에 갖춘 요상한 음식만화입니다. 음식과 그것을 가지고 다투는 배틀, 그 안에서 발생하는 휴먼드라마라는 음식만화의 클리셰적 요소들을 아주 기분 좋게 비틀고 있습니다. 재소자들이 설날에 나오는 음식을 걸고 망상 음식 배틀을 벌인다는 것이 이 만화의 기본 줄거리인데 아무래도 음식을 먹는다는 것이 그야말로 인간적인 행위이니만큼 재소자들의 인간적인 면모가 부각되기도 합니다. 다른 음식만화에 질리신 분이라면 한번 시험 삼아 읽어보시길.

31. 트로이메라이 (시마다 토라노스케, 2007) 죽기전에꼭읽어야할1001편의만화

우리는 수많은 이야기와 함께 살아간다. 이야기들은 태고적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생겨났으며, 그 이야기들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목소리이고, 우리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가 들을 수 있는 건 매우 한정된 이야기들뿐이고,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우리가 그 이야기의 존재를 망각해서 듣는 것을 멈추는 순간, 그 수명을 다한다.

시마다 토라노스케의 '트로이메라이'는 이 수명이 다한 이야기에 대한 만화다. 여기 망가져서 소리가 나지 않는 발파르트 피아노가 한 대 있는데 초라한 외관만 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가 이 피아노에 담겨 있다. 이 피아노에는 독일인에게 짓밟힌 아프리카 사람들의 저주가, 독재정권 치하에서 고통받은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눈물이 서려 있다. 이 망가진 피아노를 이란-이라크 전쟁을 겪고 난 후에 일본에 온 이란인 아부 자하니, 피아노에게도 생명이 있다고 여기는 조율사 토다 나츠코, 카메룬의 기운 넘치는 소년 만베만베가 고치려고 한다는 것이 이 작품의 주된 내용이다.

잊혀져서 우리가 듣지 못하는 이야기의 이미지는 고스란히 망가진 발파르트 피아노에 덧씌워진다. 하지만 잊혀졌다고 해서 그 이야기들이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그 가치를 성실하게 찾아내는 순간에 그 이야기들은 소생한다. 마치 엉망으로 망가진 발파르트 피아노가 마침내 그 소리를 되찾듯이. 우리가 그런 노력을 포기한다면, 결국엔 우리 자신의 이야기도 그 누구에게도 닿지 못하고 사라지고 말 것이다.

작품의 종반부에 이르러서 인도네시아의 왕녀가 고쳐진 발파르트 피아노의 건반을 누르고 그 소리가 등장인물들에게 전달되는 장면은 특히 인상적이다. 작품의 모든 에너지가 한꺼번에 폭발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장면은 잊혀진 이야기들에게 던지는 지극히 사려깊은 위로처럼 보인다. 우리들은 결코 잊지 않았고, 앞으로도 잊지 않을 것이라는.

-정발판이 나왔길래 진도를 앞당겨 포스팅했습니다. 정발판은 인쇄나 디자인은 만족스럽지만 원작의 섬세함을 잘 살리지 못한 번역이 많이 아쉬웠습니다. 만약 중쇄를 찍는다면 수정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김성근 감독 자서전 '꼴찌를 일등으로' 야구관련


장면 1
SK의 중간계투 윤길현은 경기 중에 욕을 했는데 SK와 김성근 감독에게 온갖 비난이 다 쏟아졌다. 김성근 감독은 공식 기자회견을 열어서 사죄하고 자진 결장했다.

장면 2
기아의 선발투수 서재응은 정근우의 투수 땅볼을 처리할 때 정근우가 자신을 쳐다본단 이유로 '뭐라고 ㅅㅂㄻ'라는 욕을 전국으로 생방송되는 가운데에 시전했다. 서재응은 까였지만 조범현 감독에게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 비슷한 두 사건에 확연히 다르게 적용되고 있는 이중잣대는 어떤 흥미로운 시사점을 제시한다. 어떤 선수가 망나니짓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감독이 비난을 받는 케이스는 김성근 감독을 제외하고는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는 이 두 사건을 통해 김성근 감독의 대중적인 이미지를 엿볼 수 있다. 즉, 김성근 감독은 유일하게 구단=감독 공식이 성립하는 감독이라는 점이다. SK 와이번스는 누가 뭐래도 대중들에게 있어선 김성근 감독의 팀이고, 그 말고 다른 어떤 감독도 팀 그 자체와 맞먹는 존재감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김성근 감독의 자서전 '꼴찌를 일등으로'는 이런 착시현상이 왜 일어나는가에 대한 단초를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은 김성근 감독의 인생역정을 감독 스스로의 입으로 풀어내고 있는 책인데 책의 성격상 어느 정도 자화자찬이 들어가 있기도 하지만 심하게 거슬릴 정도는 아니며 감독의 야구 철학이나 인생관 등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서 흥미롭다. 이 책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끊임없이 선수단의 전권을 장악하고 프런트의 입김을 배제하려고 하는 시도와 선수들의 아버지가 되는 것을 기꺼이 수용하는 자세에 대한 언급이다.

사실 장면 1에서 특히 이상한 것은 김성근 감독이 실제로 사과를 했다는 점이다. 대중들의 비난도 이상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였다는 것은 정말 이상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상술했듯이 그는 선수들의 아버지가 되는 것을 거리끼지 않는 사람이다. 아이가 잘못하면 원래 부모가 사과하는 법 아니던가. 그에게 있어 자신이 감독을 맡고 있는 선수단은 자신의 가족(정확하게는 아들들)과 마찬가지다. 그가 경기에서 지고 난 후에 선수 탓을 좀처럼 하지 않는 것도 이런 관점에서 보면 납득이 된다. 그리고 프런트와 끊임없이 충돌이 일어나고 SK팬들의 원성이 나올 정도로 프런트가 감독을 감싸주지 않는 자세로 일관하는 것도 이런 관점에서 어느 정도까지 이해할 수 있다. 그는 SK선수단의 가장이므로 타인이 자신의 가정에 왈가왈부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며, 따라서 프런트와의 관계도 근본적으로 원만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자세는 시대의 흐름과는 잘 맞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타팀 팬이나 야구기자 중 김성근 감독을 옹호하는 사람들도 '그의 야구를 좋아하진 않지만...'이라는 수식을 붙이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은 김성근 감독의 자세가 '올드스쿨'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는 느낌이다. 시대의 흐름 상 프런트의 위상은 높아질 수밖에 없고, 또 '야구의 신'이라는 희대의 카리스마 감독이 있어야 원활하게 돌아가는 시스템이라면 그 시스템은 낙제라고 할 수 있다. MLB에선 이미 감독은 매니저의 위치에 있으며 선수 구성이나 선수단 관리는 단장의 역할로 넘어갔다. 한국 프로야구에서도 재정관리 등 경영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런 흐름이 시대의 요구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아쉬운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올드스쿨' 감독이 지휘하는 팀이 가장 창의적이고 수준 높은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달리 말해 김성근 감독의 야구는 아직 프로의식이 많이 부족하고, 인재의 풀이 좁은 한국야구에 최적화된 야구란 의미도 된다. 따라서 김성근 감독의 야구를 폄훼하거나 욕할 것이 아니라 이것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 된다. '야신'이 없더라도 '2007~2009 SK 와이번스'를 능가할 수 있는 팀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 말이다. 이 고민을 해결하려면 야구 인프라, 팬들의 의식, 선수들의 자세 등 많은 것이 바뀌어야 할 것이고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느낌이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김성근 감독 개인을 들여다 보는 데에도 도움이 될뿐만 아니라 한국야구의 현재위치나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도 생각할 거리를 풍성하게 던져주는 책이다. 김성근 감독을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한국야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일독의 가치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김성근 감독이 자서전뿐만 아니라 더 전문적인 야구관련 저술을 많이 남겨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덧, 난 쥐빠지만 2002년 기적의 시리즈에선 군ㅋ대ㅋ에 있었다. 그것도 토나오는 이등병... 따라서 김성근 감독에 대해서 불필요한 환상이나 마음의 빚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름 객관적으로 적으려고 노력했다능. 스포츠 밸리로 보내긴 뭐해서 도서 밸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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